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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청원군청 근처에 있던 청주목 소속의 객관(客官)을 중수한 내력을 이정구(李廷龜)가 기술한 중수기. 청주읍에 부임한 한백겸(韓百謙)이 객관을 중수하였는데, 그 시말을 이정구가 기술해놓는 글이다. 목판(木版)으로 간행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奎章閣本)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인했다. 이정구의 『월사집(月沙集)』 37권, 5~7장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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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이나 고을에 과거 부임하였던 전임관, 수령 등 벼슬아치의 명단.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기관과 관아에서 전임 관원의 성명·관직명·생년·본적·취임 및 이임시기(移任時期)·치적(治績) 등을 적어놓은 책으로 일명 『안책(案冊)』이라 하기도 하고 흔히 지방에는 「수령안(守令案)」이라고 하여 명단이 전하고 있다. 작성 시기를 기준해 볼 때 등재 인물이 현임자의 전임자(前任者)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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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이후 영조(英祖) 시기에 저술한 것으로 보이는 『청주읍지(淸州邑誌)』. 조선 후기 영조(英祖)[재위1724~1776] 때 청주의 역사·인문(人文)·지리적 내용을 총괄하여 기술한 『청주읍지(淸州邑誌)』로 필사본(筆寫本)이다. 표지 제목을『낭성지(琅城誌)』라 했으며, 제1장 첫째 줄에 읍지(邑誌)라 기록했다. ‘낭성(琅城)’은 청주를 일컫는 이름중의 하나이다. 내용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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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 있었던 서원. 1479년(성종 10)에 청원군 옥산면 금계리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최초 창건당시에는 서원이 아닌 사당의 성격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곡수리에 건립되어 이름을 곡수서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유서와 연혁이 매우 애매한 서원으로, 서원관련 여러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고 오직 헌종대 편찬된 『청주읍지(淸州邑誌)』에 ‘곡수성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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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봉명사거리 북서쪽 부근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수리시설. 과상이란 주변에 과일 상점이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봉명사거리 북서쪽 부근에 있었던 수리시설로 영조 때 만들어져 최근까지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지명만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주치(州治)에서 서(西)로 1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주위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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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의 열녀. 열녀 전씨(全氏)는 선비 김당(金唐)의 부인이다. 열행이 뚜렷하였기에 장계를 올려 정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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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목사. 김의순은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지냈다. 읍인(邑人)이 사우를 세우고 초상을 봉안했다고 『청주읍지(淸州邑誌)』(헌종대 편찬)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사우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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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에 이르렀다. 적가청(籍賈廳)을 신설하여 민폐를 덜어주었다. 이러한 선정으로 인하여 비를 세웠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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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강원도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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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다.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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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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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청주 목사. 남행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청주목사 재임시에 보역청(補役廳)과 해원청(解寃廳)을 신설하여 군민(軍民)·승도(僧徒)의 폐를 제거하였다. 현재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구암리 가대울에 영세불망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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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 출신의 무관. 1725년(영조 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 무신란에 역적을 토벌하여, 그 공으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벼슬이 병사(兵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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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조선 성종 때 여진족의 침입을 막다 전사하여 충신으로 추앙된 인물이다.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광원(光遠), 호는 퇴수헌(退修軒)이다. 시조(始祖) 안천부원군(安川府院君) 나천서(羅天瑞)의 6세손이며 나유선(羅裕善)의 셋째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학행과 무술이 뛰어났으며, 특히 궁마에 능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그릇된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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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武臣)으로 무신란(戊申亂) 때 순절한 충신. 1728년 무신란 당시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군(叛軍)의 회유를 물리치고 순절하여 충절로 이름났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수백(壽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남홍달(南弘達), 할아버지는 증사복시첨정(贈司僕寺僉正) 남유경(南有慶),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된 남두명(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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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붙이와 돌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며 선조들의 삶과 사건의 생생한 증거 금석문은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나누어진다. 금문은 금속류의 용기·악기·무기·화폐·인장·경감·조상·범종·도량형 등에 주출되었거나 새겨진 문자이며, 석문은 석재의 비·묘지·조상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금문의 대표적인 경우는 「칠지도명」·「환두대도명」·「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문」·「상원사종명」·「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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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었던 절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목암(牧菴)’ 또는 ‘목우암(牧牛菴)’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창건시기에 대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출토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에 창건되어 조선 말기까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막새기와, 해무리굽 청자, 토기편 등이 다량으로 수습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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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이후의 문신과 무신의 총칭. 고려 4대 왕 광종(光宗)[946~975]은 후주(後周) 사람인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도를 처음 실시하였다. 이후부터 문무의 관리를 별도의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였는데, 5대 왕 경종(景宗) 때 부터는 문관을 동반(東班), 무관을 서반(西班)이라 하여 구별하였고, 이들 문반과 무반을 합하여 양반이라고 하였다. 양반은 곧 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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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과 합격자,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백희(伯喜)이다. 대사헌 와촌(瓦村) 박문고(朴文古)의 5대손이며, 교관(敎官)에 증직된 박재근(朴在謹)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1816년(순조 16)에 무과에 등과하여 여러 번 선전관의 명망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병으로 손가락을 잘라 효를 행했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행정(杏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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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의병장.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과 진천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왜군 토벌에 공을 세웠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경원(慶元)이다.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박난봉(朴蘭鳳)의 후손이며 이조판서(吏曹判書) 박중림(朴仲林)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박기정(朴箕精)으로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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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청주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서백(恕伯)이며, 호는 선재(扇齋)이다. 아버지는 박몽신(朴夢信)이고, 동생 박효열(朴孝悅), 박신열(朴信悅)이 있다. 청주에서 거주했는데, 1568년(선조 1)에 증광 진사에 합격하였다. 학행(學行)이 널리 드러났고,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냈다. 흥덕구 강서동의 송곡평(松谷坪) 선영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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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사빈(士彬)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린(朴廷麟)[1607~1655], 할아버지는 박세대(朴世大), 아버지는 박수의(朴守義)이다. 어머니는 유시관(柳時觀)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고, 아내는 김옥(金沃)의 딸 안동김씨이다. 1723년(경종 3)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17명 중으로 하나로 합격하였다. 영조(英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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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중관(仲觀)이며, 휘숙(輝叔)이다. 아버지는 박천구(朴天龜)로 제릉(齊陵)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형 박태헌(朴泰獻)과 동생은 박태영(朴泰榮), 박태업(朴泰業)이 있다. 1666년(현종 7)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의하면 박태장(朴泰章)의 묘는 서강외이면 신원(薪院)에 있다고 한다. 현재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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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노론의 대표적 인물. 본관(本貫)은 밀양(密陽), 자(字)는 계심(季心), 호(號)는 일휴(逸休)로 강수(江叟) 박훈(朴薰)[1484~1540]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참봉 박세증(朴世拯)의 아들로 외할아버지는 이여절(李汝晢)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6인으로 합격하였다. 1711년 가주서(假注書)를 시작으로, 부사정(副司正), 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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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예보(禮甫)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의 동생인 변시익(卞時益)이다. 벼슬이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변단(卞摶)으로 조봉대부경릉참봉(朝奉大夫敬陵參奉)을 지냈다.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吏曹參判兼同知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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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효행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병자호란에는 의병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표경(表卿), 호(號)는 공암(公巖)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충남(卞忠男), 할아버지는 변경복(卞景福), 아버지는 변유인(卞惟寅)[1566~1641년]이다. 부인은 이득윤(李得胤)의 딸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와 숙인 신평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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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관료. 무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이괄(李适)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벼슬이 가자되었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字는) 사눌(士訥)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장사랑(將仕郞), 군공(軍功)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장례원(掌隷院判決事)에 증직된 변충남(卞忠男)이고, 할아버지는 청주에 낙향한 변경수(卞景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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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상당산성에 주재하였던 종3품의 무관. 병마절도사를 보좌하고 상당산성에 주재하면서 산성의 운영을 관리, 책임졌던 무관직이다.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의 제도가 정립되면서 그 막료로서 도진무(都鎭撫)가 임명되었는데, 이것이 1466년(세조 12)에 병마우후(兵馬虞候)로 개칭되었다. 1651년(효종 2)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海美)에 있던 병영(兵營)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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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나 유골을 처리하는 장소 즉, 무덤. 분묘란 흔히 묘 또는 무덤이라도 하고 사체나 유골을 처리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장소나 시설로 역사적으로 오래된 무덤을 고분이라 한다. 분묘는 각 사회의 장제(葬制)나 또는 내세관과 깊이 관련되어있다. 또 자연환경이나 생업형태, 피매장자의 연령과 성별,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이르기까지 분묘의 형태와 습속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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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과 사창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저장미를 보관하던 창고 조선시대 지방관청 소속의 저장미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던 곳으로,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청주목 소속의 창고는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이 읍성 안에 있었으며, 서쪽으로 미호천(美湖川) 연변에 신원창과 금성창이, 북쪽에 오근창, 동쪽 멀리 청천창, 남쪽 멀리 주안창이 있었다. 이들은 세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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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시대 충청병마절도영에 세워졌던 건물이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베풀어주라’는 뜻으로 건물의 명칭을 삼석당(三錫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英祖)년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公廨), ‘삼석당, 십이간(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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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봉명동 799~801번지 부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수리시설. 현재의 봉명동 799~801번지 부근에 있었던 수리시설로 『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주치(州治)에서 서(西)로 5리 떨어진 곳에 있고, 주위가 552척이며 수심이 2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봉명동 사거리 남동쪽 기슭의 봉명파크장 주변에 있었으며, ‘소댕이방죽’이라 불FL다가 1983년 주변이 택지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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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창고인 석빙고가 있었던 자리. 석빙고는 조선시대 고을마다 있었던 공용의 얼음 창고로, 겨울철에 얼음을 떠서 저장하였다가 여름 더위 때 사용하기 때문에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하에 설치하였다. 냉매(冷媒)는 주로 소금과 겨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는 일은 신라 때부터 있었으나 당시에 축조된 빙고는 현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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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 오랜 생활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과 지혜를 간결하고도 비유적으로 형상적인 언어 형식으로 표현한 구비단문의 한 형태. 속담은 표현과 기능에 따라 격언(格言)과 이언(俚諺)으로 나눌 수 있다. 격언은 사회·역사적인 경험이 정식화된 것으로서 실천적인 규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격언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문장을 이루고 있으며 대개 교훈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격언은 서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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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청주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환복(宋煥復), 할아버지는 송헌규(宋憲圭), 아버지는 송흠시(宋欽時)이며, 외할아버지는 이헌명(李憲明)이다. 1845년(헌종 11)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6인(人)으로 합격하였다. 1845년 대과 합격 후 가주서(假注書), 1848년 정언(正言), 1850년(철종 1) 교리(校理)·수찬(修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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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청주 출신으로 충렬공(忠烈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손자(孫子)이며, 청주지역 여산송씨(礪山宋氏) 입향조인 송인급(宋仁及)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아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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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성백(誠伯), 호는 문도재(聞道齋)이다. 청주 출신으로 청주 입향조(入鄕祖)인 참봉(參奉) 송세량(宋世良)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찬성(贈贊成) 송응기(宋應期)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송방조(宋邦祚)로 송시열(宋時烈)의 부친인 송갑조(宋甲祚)와 형제이며, 아버지는 송시염(宋時琰)이다. 1659년(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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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철종 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병마우후를 지낸 무관이다. 신태희(申泰羲)의 선정을 기려 1859년(철종 10)에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9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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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 율봉역에 속한 역.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의하면 율봉역에 속한 역으로 청주에서 남쪽 16리에 있고, 역로는 청주율봉역-쌍수역-율치(栗峙)-문의 덕류(德留)역-형강(荊江)역, 주안(周岸)역-옥천 증약(增若)역으로 이어진다. 쌍수역에는 역리(驛吏) 40명, 역노(驛奴) 10명, 역비(驛婢) 7명이 있고, 상등마(上等馬) 4마리, 중등마(中等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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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열녀 김씨(金氏)는 여이현의 부인으로 열행이 있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현재 정려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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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에 청주 상당산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한 의병장.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문거(文擧)이다. 아버지는 1693년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을 상소하여, 심한 국문을 받아 옥사한 감찰 연최적(延最績)이다. 1728년(영조 4)에 영조(英祖) 무신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조지성(趙持誠), 조완담(趙完澹)의 부자를 시켜 의병 40여 인을 모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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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숙박시설인 오근원이 있었던 자리. 상당구 오동동에 해당하는 곳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본래 오근부곡의 옛터를 오근원이라 한다 하였다. 오근부곡은 청주의 북쪽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청안현과 사십리 거리이고, 북쪽으로는 진천현과 삼십리, 서쪽으로는 목천현과 오십리, 남쪽으로는 청주와 삼십리 거리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에 오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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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저장미를 보관하던 창고.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청주목 소속의 지방관청 소속의 창고로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이 읍성 안에 있었으며, 서쪽으로 미호천(美湖川) 연변에 신원창(薪院倉)과 금성창(金城倉)이, 북쪽에 북창인 오근창, 동쪽 멀리 청천창(靑川倉), 남쪽 멀리 주안창(周岸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청주목에서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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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한림(翰林)을 지낸 오윤(吳潤)의 아들이다. 지금의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 살았다. 1521년(중종 16)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으로 진출하였다.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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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지금의 청원군 낭성면 출신이다. 무과출신으로 벼슬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다. 수로(水路)로 중국에 사신으로 가다가 바다에서 죽었다. 이에 의관(衣冠)으로 장사지냈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후에 판서(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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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字)는 회백(晦伯), 호(號)는 금암(琴巖)이다. 보성부원군(寶城府院君) 오천복(吳天福)의 9세손이며 생원(生員) 오행원(吳行遠)의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1639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성균관의 정6품 또는 종8품 벼슬)·감찰(監察:사헌부의 정6품 벼슬)·예조좌랑(禮曹佐郞: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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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오효원(吳孝元), 할아버지는 오인헌(吳仁憲), 증조할아버지는 오숙동(吳叔仝), 장인는 신경장(申景章)이며, 손자로는 오행건(吳行健)이 있다. 지금의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 살았다. 진사시를 거쳐 1511년(중종 6) 별시 문과에 을과 3등으로 급제하였다. 벼슬이 한림(翰林), 학록(學錄)에 이르렀으며 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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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관.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근보(謹甫), 호는 추봉(楸峰)이다. 증호조판서(贈戶曹判書) 오도명(吳道明)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의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가 되고, 1762년 숭릉 별검, 1764년 성균관 전적을 거쳐 이듬해 예조좌랑에 오르고, 1774년에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사헌부 장령이 되어 돈령부의 잘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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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여경(汝敬)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오태좌(吳台佐)의 아들로 지금의 흥덕구 송절동에 살았다. 형으로 오행건(吳行健), 오행민(吳行敏), 오행간(吳行簡)이 있다. 1610년(광해군 2)에 사마시를 거쳐 진사가 되고, 그 해에 이어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조정랑, 춘추관 기주관을 역임하고 송도소윤, 종묘서령을 역임하는 등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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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여강(汝强)이다. 지금의 흥덕구 송절동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오태좌(吳台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윤(吳潤)이다. 동생으로는 오행민(吳行敏)과 오행간(吳行簡)이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2년에 식년시 문과에 등제하여 강원도사를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상(喪)을 당했을 때에도 예의와 정성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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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었던 용두사에서 사용하였던 금구.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보살사(菩薩寺) 금구(錦口)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옛 경신(庚申) 8월에 고을 사람이 땅을 파다가 옛 종을 습득하였는데 ‘대안육년용두사금구(大安六年龍頭寺錦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그 형태가 기이하고 소리가 몇 리 밖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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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 용두사의 터. 청주시내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용두사지(龍頭寺址)는 국보 제41호인 철당간이 남아 있는 관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두사의 창건과 폐사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단지 1천년 이상을 제자리에 서있는 철당간의 당간기가 있어 절 이름뿐만 아니라 고려 초기의 상황을 어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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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유흥원(柳興源)의 아들로, 할아버지는 유응명(柳應溟), 증조할아버지는 유운거(柳雲擧), 외할아버지는 노건흠(盧健欽)이다. 청주에 거주하였으며 유학(幼學)으로 1819년(순조 19)에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참의(參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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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덕초, 호는 청매당이다. 사인(舍人) 유자빈(柳自濱)의 증손이며, 상의원 별제 유임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지조가 고결하였다. 선조 때 영릉참봉이 되었다. 광해군 때에 참봉(參奉)에 음제(蔭除)되었다가 폐모론(廢母論)이 일자 벼슬을 버리고 충청북도 청원군으로 내려와 살았다. 효행이 뛰어났었다. 인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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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때 청주의 선비. 본관은 서산(瑞山)으로 대제학 저정(樗亭) 유백유(柳伯濡)의 아들이다. 부인은 보령현감의 딸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뒤 단종이 폐위되자 세상일을 버리고 청주 무동에 은거하여 도학연마에 진력하였다. 세조(世祖)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광해군(光海君) 때에 관원을 보내어 그가 살던 청주의 무동에 찾았다. 그곳에 무과나무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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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일숙(一叔),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고려 때 상장군 진강부원군 유정의 후손이고, 청매당 유명원(柳命元)의 아들이다. 나이 일곱 살에 어머니의 병으로 의약을 알기위하여 힘써 노력하여 마침내 의리를 스스로 터득하여 그 신기함을 세상에 알리었다. 그의 의술이 널리 알려져 사족(士族)으로 어의(御醫)가 되었다. 인조대에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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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이다. 직장 윤영(尹瑛)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역임하고, 정언, 지평, 병조좌랑, 교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공양이 남달랐다. 1634년 인조가 그의 친어버이를 숭봉하려 하자 양사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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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坪)이고, 자는 정춘(靜春)이며, 호는 장주(長洲)·천상(川上)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아들이다. 1589(선조 22)에 진사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문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가 1596년 병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병조정랑이 되고 이어 사서·장령·필선·사간 등을 거쳐, 전라도와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治積)을 올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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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조선시대의 교통·통신기관인 역참(驛站)을 관장하던 관리. 역참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경의 중요한 군사정보, 그리고 사신왕래에 따른 영송과 접대를 위하여 마련된 교통·통신기관의 하나로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참은 군사·외교 외에 중앙집권을 유지하기위한 행정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역참의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역로의 조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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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교통기관. 역의 기능은 지방통치를 위한 공문서의 전달, 관품 세공의 수송 및 관원사행에 대한 마필의 공급과 숙식제공, 변방군정의 보고 등을 담당하였다. 율량도는 조선시대 41개의 역도의 하나로 조선시대의 역로에서 보면 주요간선의 중간에 해당하는 분로(分路)였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경상도 성주에 이르는 길을 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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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 중기 무렵 충청병마절도영의 중영(中營)에 세워졌던 건물로 목사(牧使) 최상정(崔尙鼎)이 개축하였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청렴결백하게 업무를 집행해야한다는 뜻을 담아 건물의 명칭을 읍청당(挹淸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형(尹東衡)[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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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신으로 등과하여 벼슬이 관찰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본도(本道), 즉 충청도의 도중군(道中軍)으로 군사를 이끌고 검천(險川)싸움에서 고군분투하였는데 전세가 불리하게 됨에 따라 노비를 보내어 부모에게 고하고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전사한 뒤 1637년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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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1570년(선조 3)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여 의병장에 특명되고, 충주목사에 제수되었다. 품계는 가선대부(종2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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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직부(直夫)이며,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목사 이수록(李綏祿)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에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11년 검열, 1617년에는 충원현감을 지냈다. 광해군(光海君)의 실정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취임하고,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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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휘(子輝), 호는 희암(希菴)이다. 지금의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지낸 이홍연(李弘淵)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이덕수(李德洙), 증조할아버지 이준(李浚), 외할아버지 김상(金尙), 장인은 김광찬(金光燦)이다. 형으로 이흥직(李興稷), 이기직(李基稷)이 있다. 1650년(효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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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해(靑海)이며, 자는 창여(暢如)이다. 아버지는 이유민(李裕民)이다. 1721년(경종 1) 식년시 문과에 합격하여 도사를 거쳐 승지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도가 지극하였고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다. 영조 때에는 지평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연일현감 때에 어사가 그의 직분을 다하는 것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어버이을 효성스럽게 섬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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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남편은 이대윤(李大潤)이다. 진사 이대윤의 처 현풍곽씨(玄風郭氏)는 8세 때에 손가락을 자른 피로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한 일이 있었다. 출가하여 효도로서 시부모를 섬기고 공경으로 남편을 받들었다. 갑자기 남편이 몸져 눕자 정성껏 간호하였으나 세상을 버리자 청상으로 보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시외가로 피난하여 외조부모 묘소를 성묘하던 도중 왜병을 만났다. 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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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역학자(易學者), 악인(樂人).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에 진사가 되고 1597년 학행으로 추천되어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독서에 전념하다가 왕자(師父)가 되고 이어서 형조좌랑·의성현령을 지냈다. 광해군(光海君) 때 혼란한 정계를 피하여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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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춘장(春長)이며, 호는 설해(雪海)이다.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으로 이견철(李堅鐵)의 아들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을 거쳐 감찰이 되어 1636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4년 사헌부 장령이 되어 기성군(杞成君) 유백(兪伯)의 비행을 공격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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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청주목사와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이며, 어머니는 목천상씨(木川尙氏)로 상붕남(尙鵬南)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1603년에 문과정시(文科庭試)에서 장원으로 급제,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으며, 160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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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이중(頤仲)으로 아버지는 이창수(李昌壽)이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66년에 문과 정시(庭試)에 병과 8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1731년에 청주목이 서원현으로 강등되고 서원현감으로 도임하여 근민헌(近民軒)을 창건하였는데, 이 근민헌은 후일 철종 말에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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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1633~1709]의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자는 윤보(潤甫)이며, 호는 송곡(松谷)이다. 이경항(李慶恒)의 아들이다. 1651년(효종 2) 생원시를 거쳐 1660년(현종 1)에 성균관 유생으로 과제(課製)에 1등하여 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고, 그해의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에 문장에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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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중원(仲遠)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으로 생원 이덕유(李德游)의 아들이다. 광해군(光海君)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등 인륜을 문란하게 하는 난정(亂政)이 벌어지자,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그 뒤 외숙 김류(金瑬)가 도모하는 인조반정에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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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선비 이지동(李之董)의 부인이자, 효행으로 복호된 김정삼(金鼎三)의 손녀이다. 효부 안동김씨는 남편이 일찍 죽자 함께 죽을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두 눈이 먼 시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어 차마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6년동안 간호하였다. 안동김씨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시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머리의 이가 자기 머리로 옮겨오게 하고,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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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나운걸(羅云傑)의 딸이자, 진사(進士)를 지낸 경주이씨(慶州李氏) 이혼(李渾)의 부인이다. 나씨는 어렸을때부터 성품이 정숙하였는데, 나이 22세가 되자 경주이씨 문중의 이혼과 혼인하였다.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따랐는데, 남편의 등에 등창이 나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이에 나씨가 칼로 그 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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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인제원은 청주성 남쪽 6리에 있다.’라고 되어있고, 『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고을남쪽 6리에 있다. 16개의 원(院)이 옛날에 있었다. 옛터의 옆에 창(倉)을 세우고 객사를 두었다. 지금은 모두 폐하고 다만 신원(薪阮), 오근(吳根)이 사성(使星)을 보내고 맞는 장소이다.’고 한다. 현재 흥덕구 분평동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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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을 지켜 정려된 무녀(巫女). 남편은 재인(才人)인 강선재(姜善才)이고,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정상명(鄭尙命)이다. 거주지는 청주(淸州)이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출가하기 전 아버지가 피부병에 걸려 종기가 나서 앓을 때 입으로 아버지의 고름을 빨아 고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재인인 강선재에게 출가하였는데, 남편이 죽자 항상 몸에 칼을 지니고 불의의 일을 막으려 하였으므로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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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인동(仁同)이며, 자(字)는 의중(儀仲)이고, 거주지는 청주 가산리(駕山里)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장우신(張禹臣)이며, 동생으로는 장윤(張輪), 장량(張車量), 장복(張輻), 장원(張轅)이 있었다. 청주 가산리(駕山里)에 세거하기 시작한 문충공(文忠公) 장덕생(張德生)의 5세손이다. 1546년(명종 1)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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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우경(虞卿), 호는 우헌(愚軒)이다. 거주지는 청주 남일면 가산리(駕山里)였으며, 아버지는 장회(張淮), 동생으로 참봉(參奉)을 지낸 장우신(張禹臣)이 있다. 청주 가산리에 세거하기 시작한 문충공(文忠公) 장덕생(張德生)의 4세손이다. 성종조에 사마시(司馬試) 및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관직은 교서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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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字)는 덕부(德夫)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의 어모장군(禦侮將軍)·부사직(副司直)·장예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한 장근(張瑾)이고, 동생은 장언붕(張彦朋), 할아버지는 지평(持平)을 지낸 장공손(張恭孫)이다. 1546년(명종 1) 소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훈도(訓導)를 지냈다. 1562년에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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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아버지는 장령(掌令)을 지낸 지전(池筌)이고, 남편은 통정대부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된 충의위(忠義衛) 정검(鄭儉)이다. 부인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효성스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하동정씨(河東鄭氏) 정검에게 시집을 가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피해 딸과 함께 마을 뒤 응봉산(鷹峯山)으로 피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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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자견(子堅)이고, 거주지는 청주(淸州)이다. 아버지는 중훈대부로 개령현감을 지낸 정인형(鄭仁亨)이고, 할아버지는 정호(鄭浩)이며, 아들로는 지평(持平)을 지낸 정사현(鄭思顯)이 있다. 1507년(중종 2)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였다. 성균관에 있을 때 유생들을 이끌고 요망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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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는 1657년(효종 8)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을 지낸 정재해(鄭載海)이고, 할아버지는 정만화(鄭萬和), 증조할아버지는 정광성(鄭廣成)이며, 외할아버지는 김일(金逸)이다. 아들은 정석조(鄭錫祚), 정석범(鄭錫範), 정석년(鄭錫年)이 있다. 음관(蔭官)으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1696년(숙종 22) 전국적으로 큰 흉년이 들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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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효자. 판서 정사호(鄭賜湖)의 증손으로,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아들인데 그의 모친 채씨는 효부로 정려(旌閭)되었다. 정성과 공경으로 부모를 섬기고 부친 병환에 손가락을 잘랐으며, 상고(喪故)에 죽은 이를 슬퍼하고 그리워함이 도를 넘고 여막(廬幕) 삼년간 주야로 울며 조밥과 맨소금으로 집상(執喪)하더니 복상(服喪)이 끝나고 쓰러졌다. 모자 양대의 효행이 조정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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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청주지역을 지날 때 왜장을 사살하여 그 목을 용만(龍灣) 행재소(行在所)에 바쳤는데, 이것이 왜장을 목 베인 처음 일이라 선조(宣祖)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후 종군하여 순국하니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으며, 선조대에 오근촌(梧根村)에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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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정진원(情盡院)이 있던 터 원(院)이란 전국 각 역(驛)에 둔 숙박시설로 정진원(情盡院)이 이에 해당한다. 원의 설치목적은 공무연락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공적임무를 띤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었다. 정진원은 청주에서 회인-보은- 문의-부강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숙박시설이었다. 정진원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남쪽 남석교 건너에 있었다.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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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일명 公權]의 아들이며, 조선개국공신 정탁(鄭擢)[1363~1423]의 형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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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능(聖能)이며, 호는 기주(棋洲)이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5대손으로 형조판서 정광성(鄭廣成)의 아들로, 어머니는 황근중(黃謹中)의 딸이다. 정치화는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동생으로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이다. 부인은 오위장 남정(南瀞)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아들을 얻지 못하여 형 정태화의 막내아들 정재륜(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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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의 서쪽에 있는 군사시설로 지휘관이 올라가서 명령하던 곳. 청주시의 인구증가와 국내외 관광객의 증가로 상당산성을 찾는 관광객이 대폭 증가하여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여 1995년부터 상당산성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발굴조사지역은 산성동 산 28-1[성내로124번길 14] 임야에 속한 지역으로 서장대 터와 산성동 175번지, 산성동 177번지, 산성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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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월여(月如)이다. 출신지는 청주(淸州)였으나 주된 거주지는 충청남도 온양(溫陽)[지금의 아산]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조상현(趙尙賢), 형은 조세익(趙世翼), 동생은 조세경(趙世經)이 있다. 1681년(숙종 7) 소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1689년 문과 증광시(增廣試)에서 병과 19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예조정랑(禮曹正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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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字)는 신여(愼汝)이다. 아버지는 첨정(僉正) 조태수(趙泰壽)이며, 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상우(趙相愚)이다. 사마시에 합격한 뒤 영소전참봉(永韶殿參奉)이 되었고, 세자익위사 시직과 호조좌랑을 거쳐 함양군수·청풍부사·능주목사 등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청주목사가 되어 피폐한 민심을 잘 다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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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조율(趙溧)이고, 할아버지는 조의방(趙義方)이다. 1421년(세종 3)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숭록대부 상장군 겸 좌우군 지휘사에 이르렀다. 본래의 묘는 실전(失傳)되어 1958년 후손들이 청원군 내수읍 구성리에 제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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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字)는 여익(汝翼), 호는 지재(止齋)이다. 조상주(趙相周)의 아들이며, 생부는 조학주(趙學周)이다. 할아버지는 조보(趙普), 증조할아버지는 조유성(趙惟聖), 외할아버지는 유인협(柳寅協)이다. 부인은 직장(直長) 김실(金實)의 딸 안동김씨이다. 1744년(영조 20) 식년시(式年試)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예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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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오(受吾), 호는 뇌봉(雷峯)이다. 부원군 지용기(池湧奇)의 8세손으로 청원군 남일면 은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지경청(池景淸)이고,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지란(池蘭), 증조할아버지는 지영수(池永洙), 외할아버지는 송수(宋璲)이다. 부인은 윤직방(尹直方)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며, 재취한 부인은 성산이씨 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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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지(受之)이다.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涌寄)의 후손으로, 사과(司果) 지경담(池景湛)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영변통판으로 300여 군사를 이끌고 운산의 적을 기습, 패주시켰다. 이 전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용천부사가 되었으나 모함하는 자의 참소로 의주에 충군(充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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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字)는 경첨(景瞻)이다. 아버지는 지만유(池萬游), 할아버지는 지광일(池光日), 증조할아버지는 지성귀(池聖龜), 외할아버지는 이양(李瀁)이다. 거주지는 청원군 가덕면 은행리로 추측된다. 1752년(영조 28) 문과 정시(庭試)에서 병과(丙科)의 21위로 급제하여 찰방(察訪)을 지냈다. 1763년 사헌부 지평(持平)에 제수되었으나 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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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字)는 자수(子受), 호는 관곡(寬谷)이다. 의당(義堂) 채귀하(蔡貴河)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 산내이상면 문박리(현, 청원군 낭성면 문박리)이다. 아버지는 채유온(蔡有溫)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龍衛) 행부사과(行副司果)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채무민(蔡無閔), 증조할아버지는 채하(蔡河), 외할아버지는 유경훤(柳景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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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직경(直卿)이다.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채응호(蔡應昊)이며,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채종길(蔡宗吉)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와 죽산안씨(竹山安氏)이며, 아들은 진사(進士)로 직장(直長)을 지낸 채지숙(蔡之淑)과 형 채적(蔡頔)의 집안으로 출계한 채지익(蔡之瀷)이 있다. 음사(蔭仕)로 관직에 진출하여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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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서원. 호서지방에서 보은의 상현서원(象賢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1570년(선조 3)에 청주목 서주내면 유정리 안말마을(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120번지[이정골로 115-8])에 건립되었다. 신항서원의 창건당시의 이름은 서원이 위치한 마을이름을 따라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다가 1660년 사액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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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에 있는 청주관아(淸州官衙)의 중심 건물. 1868년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중수하면서 청녕각(淸寧閣)이라 편액을 고쳤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근민헌 목사정당 십간’이라 하여 이 건물의 명칭이 근민헌(近民軒)이고 규모는 10칸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서원현감 이병정(李秉鼎)이 동헌을 창건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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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에 있는 한씨의 시조인 한란의 묘소.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대표적인 씨족 중의 하나이며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인 한란(韓蘭)[?~?]은 청주지역의 대표적 호족으로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도와 삼중대광태위(三重大匡太尉)에 봉해지고 개국공신이 된 인물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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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관아(官衙)와 민거(民居)를 둘러쌓은 성. 읍성은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우리나라 역사서로서 가장 오래된『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신라 685년(신문왕 5) 3월에 서원소경을 설치하고, 689년 윤(閏) 9월 26일에 서원경성을 쌓았던 기록이 있어 청주읍성의 전신은 아마도 통일신라가 구주오경제(九州五京制)를 갖추던 신문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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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자대(子大), 호는 이재(頤齋)이다. 청주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출신으로 영의정 완성부원군 최명길(崔鳴吉)의 형이다. 아버지는 영흥부사(永興府使)를 지낸 최기남(崔起南)이며, 어머니는 참판 유영립(柳永立)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최수준(崔秀俊), 증조할아버지는 최업(崔嶪), 처의 아버지는 종실인 익성군(益城君) 이형령(李亨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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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화(江華)이고, 자는 일민(日敏)이며, 호는 퇴암(退庵), 초명은 승(昇)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증직된 최혁(崔爀)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좌랑으로 증직된 최정화(崔挺華)이다. 처의 부모는 통덕랑 이시무(李始茂)이다. 1750년(영조 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관직에 있을 때 선조(先祖)인 제정공(齊貞公) 최용소(崔龍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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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주치(州治)의 서문(西門) 밖에 있던 군인을 사열하던 장소. 현재까지 치부당(治賦堂)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려진 기록이 없다. 즉 치부당이 무엇이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까지 남아 있었는지, 건물이었는지 등, 현재 청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유적 혹은 유물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발간된 『청주읍지(淸州邑誌)』에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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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함흥(咸興)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첩으로, 함흥한씨(咸興韓氏) 통천군수 한언성(韓彦聖)의 서녀(庶女)이다. 한금섬(韓金蟾)은 송상현의 첩으로 재주와 미모가 뛰어났는데, 13세가 되던 1591년(선조 24)에 송상현이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부임되자 그를 따라 동래에 갔다. 1592년에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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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중온(仲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화산(韓華山), 할아버지는 한태(韓泰), 아버지는 한영년(韓永年)이다. 그의 아들로 1576년(선조 9)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한 한일제(韓日躋), 한일휴(韓日休), 한일신(韓日신)이 있다. 손자(孫子)는 한준(韓峻)이다. 1528년(중종 23)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40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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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명길(鳴吉)이며, 호는 구암(久菴)이다. 할아버지는 한여필(韓汝弼), 아버지는 한효윤(韓孝胤)이고, 어머니는 예빈시정(禮賓寺正) 신건(申健)의 딸이다. 장인은 구사중(具思仲)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5년 교정청(校正廳)이 신설되자 정구(鄭逑)[1543~1620] 등과 함께 교정낭청에 임명되어 『경서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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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응신(應辰)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한공의(韓公義), 할아버지는 부윤을 지낸 충간공(忠簡公) 한이(韓理)이다. 아버지는 한승순(韓承舜)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로 중추부(中樞府) 판사(判事)를 지낸 이근(李懃)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로 아버지는 판사(判事)를 지낸 권소(權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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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청주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윤(韓鈗), 할아버지는 한양호(韓養浩)이고 외할아버지는 김리구(金履久)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式年) 전시(殿試)에 병과(丙科) 26등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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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영조(英祖)~정조대의 문신으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예지(禮之), 호는 광암(廣庵)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으로 증직된 한후유(韓後裕)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익수(閔翼洙)의 딸이다. 부인은 김치만(金致萬)의 딸인 정부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한상이(韓象履)이고, 2남은 한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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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경일(慶逸)이며, 호는 월포정(月浦亭)이다. 할아버지는 한영년(韓永年), 아버지는 한기(韓琦)이고, 형 한일제(韓日躋), 아우 한일신(韓日신), 아들은 한준(韓峻)이다. 1567(명종 22)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선조(宣祖)가 피난을 가자 단검(短劍)을 잡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하여 용만(龍灣)에 이르러 선조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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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탁이(卓爾), 호는 설사(雪蓑)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한기(韓琦), 증조할아버지는 한영년(韓永年)이고, 외할아버지는 윤륜(尹輪), 아버지는 한일휴(韓日休)이다. 아내는 이의정(李宜正)이며 이사덕(李師德)의 딸이다. 아들 한사영(韓士英)이 있다. 1605년(선조 38) 증광 진사(增廣進士)시에 급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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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사정(士精)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 한익형(韓益亨), 할아버지는 한세헌(韓世憲), 외할아버지는 이석하(李碩夏), 아버지는 한경규(韓慶奎)이다. 아내는 변희적(卞熙績)의 딸이다. 1750년(영조 26) 식년시에 병과(丙科) 급제하였다. 지평(持平)을 거쳐 1763년에 정언(正言), 1768년 장령(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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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경장(景張), 호는 석탄(石灘)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 중종대에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낸 한윤창(韓胤昌), 할아버지는 한극공(韓克恭)이다. 아버지는 한천뢰(韓天賚)이고, 외할아버지는 변명윤(邊明胤)이며, 장인는 이언형(李彦亨)이다. 자녀로는 한필원(韓必遠)과 한필명(韓必明)이 있다. 1590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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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목사.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역임했다. 재임당시 청주목의 산동 세 개의 면을 사재(私財)로 진휼하였다. 그 행적을 기려 비를 세웠으나 조정의 명령으로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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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때 충청병영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초명은 진(震), 자는 춘경(春卿)이다. 첨절제사 홍수명(洪受命)의 아들이다. 충청병마절도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에 의하여 청백함이 인정되어 1727년(영조 3) 막료가 되었다. 이인좌의 난으로 1728년 청주읍성이 함락되고 이봉상이 잡힌 다음 죽음을 당하자, 그는 자신이 절도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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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원구(元九), 호는 만주(晩洲)이다. 청주 판교리(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 증조할아버지는 홍해(洪瀣), 외할아버지는 남충원(南忠元), 장인은 김발이다. 아들로 홍일우(洪一宇) 등 4형제를 두었고, 동생으로 홍석주(洪錫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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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만계(晩溪)로 청주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태사(太師) 홍은열(洪殷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홉 살 때 병든 어머니께서 민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마침 장마로 물이 넘쳐 강가에 그물을 치고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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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인.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근초(謹初), 호는 쌍백당(雙栢堂)·쌍백당이다. 아버지는 홍해(洪瀣)이며, 거주지는 청주 산내일면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이다. 부인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섬계서당을 열어 조선 중기 청주지역 사림들의 교육에 앞장 선 이잠(李潛)의 딸이다. 동생으로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된 홍순선(洪純善)과 집의(執義)를 지낸 홍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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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서화가.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성여(成汝), 호는 애사(靄士)·춘산(春山)·연탄(硏灘)이다. 거주지는 청주(淸州)였으며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홍정주(洪定周), 할아버지는 홍필영(洪必榮), 증조할아버지는 홍희택(洪羲宅), 외할아버지는 조현성(趙顯誠)이다. 아들이 없어 홍우필(洪祐弼)의 아들 홍승목(洪承穆)을 양자로 들였다. 1850년(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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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정경(鼎卿), 호는 월탄(月灘)이다. 아버지는 홍곽(洪霍)이며,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洪履祥)이다. 1653년(효종 4) 알성문과(謁聖文科)에서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수찬(修撰), 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으며, 1664년(현종 5)에는 사간(司諫)이 되었다. 같은 해에 서원현감(西原縣監), 즉 청주(淸州)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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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군실(君實), 호는 만은(晩隱)이다. 홍일운(洪一運)의 아들이며 홍석무(洪錫武)의 손자이다. 부모가 여러 해 된 이질로 누워 계신 가운데, 그는 십리쯤 떨어져 살았으므로 문병차 밤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늘 범이 길을 인도하여 주었다고 한다. 부모 병환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서 구하였다. 묘소앞의 여막(廬幕)에서 삼년 상을 치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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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죽들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수리시설. 화죽제언은 청원군 북이면 화상리와 화하리에 발달된 화죽들에 만들어진 제언으로 화죽들은 석화천과 미호천(美湖川) 사이에 발달된 들이기 때문에 홍수로 여러 번 유실되었다. 이에 제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1760년(영조 36) 편찬된『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청주목의 63개 제언 중 화죽제언이 중요한 제언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