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공주의 세거 성씨. 시조 이천일은 기원전 53년(신라 박혁거세왕 5) 중국 한나라로 가서 뛰어난 문명으로 대장군에 올라 흉노적을 정벌한 공훈으로 요동백에 봉해졌다. 환국 후 공산군에 봉해진 이천일은 그때부터 공산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전기 지리지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공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향교 관련 고문헌. 공주향교에는 향교의 역사나 운영 모습, 공주 지역사족의 사회적, 경제적 기반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고문헌들을 소장하고 있다. 해당 고문헌으로는 향안(鄕案), 청금록(靑衿錄), 절목(節目)·완문(完文), 경제 관련 문서, 선생안, 유림계안, 석채록, 도기(到記)들로 총 20여 권이 남아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금석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지명·인명(행적)·연대 및 건립 경위와 주체 등을 확인할 수...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적만(敵萬), 호는 시북(市北)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내고 참판에 추증된 남위(南瑋)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이다. 6형제 가운데 셋째로 아버지의 6촌인 남대우(南大佑)[영의정과 의흥부원군에 추증됨]의 양자가 되었으며, 양모는 영일정씨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성에서 최후를 마친 남이흥(南以...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단종의 영혼과 세조에게 항거한 충신 열사의 혼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우. 공주에서 대전 방면으로 32번 도로를 따라가면 16㎞ 거리에 박정자 삼거리가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4㎞를 가면 동학사가 있는데, 숙모전은 동학사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숙모전은 억울하게 죽은 단종과 사육신, 금...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 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래 휴정대사의 수제...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 입구에 있는 송시열의 추향기가 적혀 있는 비석.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한 충현서원의 입구 정면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정면 좌측에 있는 것이 우암송선생추향기비이다. 이 비에는 충현서원에 주자(朱子)와 이존오(李存吾), 이목(李穆), 성제원(成悌元),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역사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한국 유교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전환점은 조선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는 조선의 개국과...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장. 본관은 풍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아버지는 임수성(林守成)이다. 1559년(명종 14)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으며,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여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다. 1575년(선조 8)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을 찾아가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윤원거는 1635년(인조 13)에는 성균관 재생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운동에 참여하여 그...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윤찬(尹燦), 자는 정숙(靜叔), 호는 후촌(後村)이다. 병사(兵使) 윤선지(尹先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며,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윤창세(尹昌世)이며, 어머니는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제학 경혼(慶渾)의 딸이다. 아우는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이다. 부인은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 공주(公州). 아버지는 이엽(李曄)이다. 이명덕은 1392년(태조 5) 생원으로 식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사헌부감찰, 사간원우헌납, 장령, 사인, 집의를 거쳐 품계가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에 이르렀으며, 형조참의겸지도관사(刑曹參議兼知都官事) 등을 역임하였다. 1415년(태종 5)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이 되었다가 좌...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옹(中雍), 호는 한재(寒齋).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아들은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된 이세장(李世璋)이다. 이목은 1489년(성종 20) 19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의 재생이 되었다...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아버지는 영안도병마평사(永安道兵馬評事)를 역임한 이목(李穆)이다. 이세장은 1516년(중종 11)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검열(檢閱), 대교(待敎),...
-
고려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 이존오는 1360년(공민왕 9)에 문과에 급제하고, 수원(水原)에 있던 경기관찰도(京畿觀察道)의 서기(書記)를 거쳐 사관(史官)에 발탁되었다. 1366년(공민왕 15) 우정언(右正言)이 되어 신돈(辛旽)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으나, 이색(李穡)...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 논밭을 소유하고 직접 농사를 지은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조선 제2대 왕 정종이다. 어머니는 정종의 후궁인 성빈 지씨이다.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이다. 평소에 검소하여 사치를 멀리 하였고 가난한 자를 살피는 등 성품이 곧은 인물이었다. 왕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농사에 힘써 공주에 논밭을 소유하고 때때로 내려와 직접 농사를 지었다. 어느 해 여...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조선시대에 공주는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위치하는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충청도는 고려 말 1356년(공민왕 5) 양광도를 개칭한 것으로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의 조정이 이루어져 태종 때에 대체로 그 윤곽이 정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주는 충청도의 4...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시행되었던 향촌 자치 규약. 초려 이유태[1607~1684]가 향촌민의 통제를 위해 향약을 조직하고, 그 규약을 기술하였다. 규약은 오가통(五家統), 향촌 경제의 안정을 위한 사창법(社倉法), 관학 교육으로서 학교 제도 등을 동시에 포괄하는 종합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17세기의 조선 사회는 16세기 후반 이래 사회 변동이 계속되고 임진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해(金澥)와 아들 김경원(金慶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5㎞ 정도 가면 연미산이 있으며, 이 산을 지나면 도로 오른쪽으로 우성면 신웅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다시 2.5㎞ 정도 더 가면 현재는 폐교된 청산초등학교가 나오는데, 학교 직전 다리에서 왼...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충신 신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큰다리를 건너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9㎞를 가다 보면 신풍면과 사곡면의 경계에 들어서게 된다. 경계를 지나 다시 1.5㎞ 더 가면 냉정리와 영정리의 경계가 나오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예산 쪽으로 100m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으로 신할의 사적비가 보...
-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사송정에 있는 여말선초 학자 이명성과 이명덕의 학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 이명성(李明誠)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유신인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이명덕(李明德)은 여말선초 문신으로 예문춘추관, 좌부대언 등을 지냈고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역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충헌공 윤전(尹烇)의 사우. 공주시 계룡면소재지인 유평리의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쯤 가면 영규대사의 묘소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그 길을 따라 300여m 정도 들어가면 유평리 중앙에 있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인조 때 세자시강원 필선을 지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청도 최초로 세워진 사액 서원. 공주시청에서 대전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8㎞ 달리면 공암이 나온다. 대략 27분여의 시간이 소요되며, 충현서원은 마을의 중앙에 있다. 충현서원은 고청 서기에 의해 건립되었다. 서기는 출신적인 한계를 딛고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인물로, 노년기에 이곳에 정착...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충현서원의 유적. 1581년(선조 14) 학자 서기(徐起)[1523~1591]가 주자(朱子)를 추모하기 위해 ‘박약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서원을 세웠다. 이후 이존오(李存吾)·성제원(成悌元)·이목(李穆)의 위패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복원하고, 1624년(인조 2) 조헌(趙憲)을 추가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