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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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善山柳氏 |
영어공식명칭 | Seonsan Ryu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윤섭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78년 - 유계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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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28년 - 유계린 사망 |
본관 | 선산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
입향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성씨 시조 | 유원비(柳元庇) |
입향 시조 | 유계린(柳桂鄰) |
[정의]
유원비를 시조로 하고 유계린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개설]
선산유씨(善山柳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해남 입향조는 유계린(柳桂鄰)[1478~1528]이다.
[연원]
선산유씨의 시조는 유순(柳淳)의 아들 유원비(柳元庇)이다. 고려 때 선산군(善山君)에 봉해져 문화유씨(文化柳氏)에 분적하여 선산(善山)[현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선산은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칭하였고,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지선주군사(知善州郡事)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선산군이 되었고 2년 뒤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입향 경위]
선산유씨 해남 입향조 유계린은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딸 탐진최씨(耽津崔氏)와 혼인하면서 해남에 정착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스승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장인 최부가 희생되고 사림이 큰 피해를 입자 해남에 은거하여 두문불출하며 아들 유성춘(柳成春)·유희춘(柳希春)과 후학을 가르치는 데에만 힘을 썼다.
유성춘은 스무 살에 과거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이 되어 조광조(趙光祖)[1482~1519]와 함께 사림파의 개혁정치를 이끌었으며, 유희춘은 선조 때 부제학·대사간·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미암일기(眉巖日記)』의 저자인 유희춘은 최부·임억령(林億齡)·윤구(尹衢)·윤선도(尹善道)·박백응(朴伯凝)과 함께 ‘해남육현(海南六賢)’이라 일컬어졌다.
[현황]
선산유씨는 해남군, 담양군, 곡성군 등지에 주로 살고 있으며 유희춘이 처향인 담양으로 이주함에 따라 해남에는 후손들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관련 유적]
해남 선산유씨 관련 유적으로는 해남읍 해리 90-2에 있는 해촌서원(海村書院)을 들 수 있다. 해촌서원은 유희춘을 비롯한 해남육현을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