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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230
한자 浦田里-錦城面-
영어음역 Pojeon-ri[Geumseong-myeon]
이칭/별칭 개앞,개앗,개밭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변천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변천 시기/일시 1980년 4월 1일연표보기
변천 시기/일시 1991년 1월 1일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74㎢
가구수 47가구
인구(남, 여) 95명[남자 50명, 여자 45명]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개암나무 밭이 있었기 때문에 개앗, 개앞, 개밭 또는 포전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후곡과 백석동을 통합하여 제천군 금수면 포전리가 되었고, 1917년 제천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당재산[666.1m]과 작성산[771m]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작성산에는 큰전등이·작은전등이·뒷골·제앙골 등의 능선 및 골짜기와 작성산성[일명 까치산성]·견지산성 등의 산성이 있다.

포전리 중심 마을인 큰말[일명 대리] 주위에 안장바위·수리바위·행상바위[일명 상여바위] 등이 있고, 뒷골[일명 후곡]을 지나 절매재[일명 결매령(結梅嶺)]를 넘으면 지금은 상수원이 되어 폐쇄된 마을의 뒷산에 약수터가 있다.

개골천이 남쪽으로 흘러, 포전리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는 포전천으로 흘러들고, 포전천은 한두실 부근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는 고교천을 만나 청풍호로 흘러든다. 포전천 유역에 비교적 넓은 곡저 평야가 발달하였다.

[현황]

포전리금성면 동남부에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5.74㎢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이 0.47㎢, 밭이 0.11㎢이며 총 47가구에 95명[남자 50명, 여자 4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북쪽으로 대장리, 서북쪽으로 양화리, 서쪽으로 중전리, 남쪽으로 성내리, 동쪽으로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와 이웃하며 자연 마을로 대리·뒷골·갯골[일명 백석동] 등이 있다. 논보다 밭이 훨씬 많아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지고, 고추·깨·오이 등을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고속국도 55호선[중앙고속도로]이 중앙부를 동서로 지나고, 지방도 82호선양화리를 거쳐 절매재 제천 터널을 지나 단양군 적성면으로 이어진다. 리도 210호선이 중전리 한두실과 포전리 뒷골을 이어 주고, 농도 305호선이 갯골을 거쳐 마당재산 북쪽으로 이어진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300~4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을을 수호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동문 나무는 고속국도 55호선 공사로 고사 직전에 처해 있었는데 살려 내었고, 서문 나무는 마을 입구 서낭당 터에 서 있다. 마을에는 박쥐굴 1터널 150m, 박쥐굴 2터널 250m, 수굴 30m 등이 있었는데 고속국도 55호선이 개설되면서 박쥐굴은 970m의 터널로 건설되었다.

작성산은 구한말 의병장 이강년이 전투를 벌인 곳으로, 금성면에서 개발한 포전리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내리 등산로를 이용한다. 마을 뒤 뒷골 동쪽에서 단양군 적성면 상원곡리로 넘어가는 절매재는 옛날 가마를 타고 넘으면 마을에 재앙이 생긴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고개로, 이를 무시하고 중앙 관리가 억지로 넘다가 죽음을 당하자 그 후 마을에서 제사를 올리고 통행을 막았다고 한다.

1993년에는 작성산성에서 무당이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리다 산 전체를 불태우는 큰 화재가 났고, 더욱이 3년에 한 번씩 마을에 화재가 계속 이어졌다. 어느 해 절골의 승려가 마을을 지나면서 마을 형상이 화산(火山)이라 하며 특히 작성산을 가리켰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마을 중심부에 샘을 만들고 소금을 넣으니 그 뒤로는 화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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