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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757
한자 劉安禮
영어음역 Yu Anrye
이칭/별칭 의보(義甫),의두헌(倚斗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제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26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44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45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453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506년연표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강릉(江陵)
대표 관직 군기시 첨정

[정의]

조선 전기 제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의보(義甫), 호는 의두헌(倚斗軒). 문희공(文僖公) 유창(劉敞)의 현손이다.

[활동 사항]

유안례(劉安禮)[1426~1506]는 1447년(세종 29)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참군(訓練院參軍)이 되었다.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이 되었고, 1450년(세종 32)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이 되었다. 1453년(단종 즉위년) 10월에 일어난 계유정난(癸酉靖亂)으로 세조가 즉위하자 낙향하여 제천시 금성면 활산(活山)에 은거하였다.

활산리 살미에 능골[당시 안살미]에 들어와 은행나무를 심고 살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나라를 위해 사배를 올리고, 봉화대 위에 단(壇)을 설치하고 매일 아침 단종이 거처하는 영월을 향하여 배례하였다고 한다. 후일 사람들이 그가 은거한 마을을 조왕곡(朝王谷)이라 하고 단을 설치한 봉우리를 국사봉(國思峰)이라 하였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유안례의 정치적 성향과 학문적 기반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계유정난에 반대하여 낙향한 것으로 보아 세조와 그를 도와 정난공신에 책봉된 이들과는 정치적 성향이 달랐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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