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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792
한자 權燮
영어음역 Gwon Seop
이칭/별칭 조원(調元),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무명옹(無名翁),천남거사(泉南居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양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1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759년연표보기
출생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거주|이주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신리
묘소|단소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사당|배향지 충청북도 제천시 신동 176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安東)

[정의]

조선 후기 제천에서 문필 활동을 한 문인.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무명옹(無名翁)·천남거사(泉南居士). 할아버지는 사헌부 집의 권격(權格)이며, 아버지는 이조 참판에 추증된 권상명(權尙明)이다. 어머니는 용인 이씨(龍仁李氏)로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유학자 권상하(權尙夏)이며, 작은아버지는 이조 판서 권상유(權尙遊)이다. 이조 참판 이세필(李世弼)의 딸인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권섭(權燮)[1671~1759]은 1671년(현종 12)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14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큰아버지 권상하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았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때는 큰아버지의 스승인 송시열(宋時烈)이 사사되자 19세의 나이로 소두(疏頭)가 되어 상소를 올리는 한편, 궐문 밖에서 통곡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권섭은 당시 서울에서 살면서 학문 연마에 열중하였는데, 송시열과 외증조모의 가문인 김수항(金壽恒)·김수흥(金壽興) 등이 유배되었다가 사사되는 등 내외가의 여러 친척이 비극을 겪으면서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24세에 다시 과거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였으나, 곧 체념하고 벼슬길보다는 문필의 길을 택하였다.

1714년(숙종 40) 청풍 황강리에서 학문과 제자 교육에 전념하던 권상하를 찾아와 그의 학풍을 시풍으로 계승하였다. 일생을 전국의 명승지를 탐방하며 보고 겪은 바를 작품화하여 시조, 가사, 한시는 물론 가곡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말년에는 제천 봉양읍 신리에서 생활하였다.

[학문과 저술]

14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사별하여 큰아버지 권상하와 작은아버지 권상유에게 수학하였고, 외숙인 영의정 이의현(李宜顯), 처남인 좌의정 이태좌(李台佐)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일생을 전국을 유람하며 몸소 체험한 바를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켜, 작품 세계가 다양하고 사실적이며 깊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창작하여 한시 3,000여 수, 시조 75수, 가사 2편 등을 남겼으며, 시조 75수는 연시조로 이루어진 작품이 많다. 특히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는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櫂歌)」와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맥을 이은 작품으로 시사적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시가는 작품 수도 많지만 근대 여명기를 내다보는 시점에서 주제, 소재, 시어, 기법 등 여러 면에서 모두 파격적 참신함을 보여 주여 국문학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시 외에 그림·감상·여행 등 고루 조예가 깊었고, 풍류와 유람의 체험적 예술관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대표 작품으로 13권 7책 『옥소집(玉所集)』, 필사본 『옥소고(玉所稿)』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말년에 가선대부 동중추부사에 추증되었다. 제천시 신동 176번지문암영당(門巖影堂)권상하의 영정과 함께 권섭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제천시에서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북도연합회 제천지회의 주관으로 그의 문학 혼을 기리기 위해 옥소 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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