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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965
한자 朴世和
영어음역 Bak Sehwa
이칭/별칭 연길(年吉),의당(毅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82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배향소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 404 지도보기
배향소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산14-3
성격 학자|순국열사
성별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한학자이자 순국 열사.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활동 사항]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함경도 고원에서 태어나, 일찍이 성인의 학문에 뜻을 두어 23세 때 영흥에서 강학하던 홍직필의 제자인 이사현(李思峴)에게 나아가 10년간 학업을 익혔다. 40대 이후에는 안변, 평강, 회양, 양구 등지로 옮기면서 강학을 하였다. 1882년(고종 19) 처음 순강(旬講) 제도를 설립하여 정기적인 강학 제도를 정착시켜 제자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이어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면서 예론(禮論)을 정리하였다.

53세 때 충주를 거쳐 제천 의림지, 영월 선암, 청풍 두산 등지에서 강학하면서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와 교유하였다. 이후 청풍 장선에서 강학하여 제자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을미왜변을 당하여 청풍 불억산에 들어가 자정(自靖) 노선에 들어갔고, 장담에서 유인석(柳麟錫)이 주도한 대규모 향음주례에 빈장의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제천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킨 유인석에게 제자들을 보내 지원하였다. 1905년(고종 42)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노구를 이끌고 문경에서 친히 의병을 일으켰으나, 곧 체포되어 8개월간 주차군 사령부에서 구금 생활을 하였다. 1907년(순종 1)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자 거처를 예천 건학산으로 옮긴 뒤 만주로 망명할 계획을 세웠으나 현지의 정세가 어지러워 결국 음성 만생산 아래 창동으로 옮겼다. 이듬해 1910년 나라가 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과 자손들을 불러 유언하고 단식한 지 23일 만에 순국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 『의당집(毅堂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 404번지에 있는 용하영당(用夏影堂)[현 병산영당(屛山影堂)]과 음성군 충룡사(忠龍祠)에 배향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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