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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067
한자 李鍾國
영어음역 Yi Jongguk
이칭/별칭 응천(應天),석포(石浦)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39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거주|이주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호좌의진 운량관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응천(應天), 호는 석포(石浦). 아버지는 이규수(李圭壽)이다.

[활동 사항]

이종국(李鍾國)[1860~1939]은 박세화(朴世和)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이 친일 관료들을 척살하고 충주성을 장악하였을 때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식량의 조달과 운반 보급의 책임을 맡았다.

얼마 후, 이강년(李康秊)이 청풍 탄지동(炭枝洞)에서 장기렴의 관군에게 패하고 제천시 덕산면 성암리로 피해 왔을 때 숨겨 주었으며, 또한 인근에 흩어져 있던 잔류 의병 15명을 모아 넘겨줌으로써 이강년이 대미산(大美山)에서 부대를 수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강년이종국의 집에서 보름 넘게 머물면서 의진을 재건하였다고 한다.

훗날 충주 관찰사 이승우(李勝宇)와 제천 군수 조두환(曺斗煥)이 덕산 면장으로 추천하여 발령이 났지만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제천시 봉양읍에 은거하면서 항일 운동을 하다가 잡혀간 이들의 가족을 돌보아 주는 일에 앞장서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만년에는 서당에서 후학을 기르는 데 전념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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