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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구곡」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961
한자 黃江九曲
영어음역 Hwangganggugok
영어의미역 Sijo-Korean Poem of Nine Valley in Hwanggang River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호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출생 시기/일시 1671년연표보기
저자 사망 시기/일시 1759년연표보기
성격 한시
작가 옥소(玉所) 권섭(權燮)

[정의]

1752년(영조 28)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옥소 권섭권상하를 위하여 지은 연시조 「황강구곡가」를 한자로 다듬은 한시.

[개설]

「황강구곡(黃江九曲)」옥소(玉所) 권섭(權燮)[1671~1759]이 백부인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살던 제천 한수(寒水) 황강(黃江) 유역을 노래한 작품인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를 한역한 것이다. 옥소 권섭의 유고인 『옥소고(玉所稿)』에 일부와 『옥소장계(玉所藏呇)』에 전문이 실려 전한다. 7글자 한시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에 맞는 문법으로 각색되면서 연시조 「황강구곡가」와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한편 권섭이 손자 권신응에게 「황강구곡도(黃江九曲圖)」를 그리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황강구곡도기(黃江九曲記)」(『옥소장계』)는 권신응이 그린 그림에 덧붙인 권섭의 기(記)로 볼 수 있다. 「황강구곡도기」를 살펴보면 「황강구곡」에서 표현한 황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황강구곡도기」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대암은 큰 석대(石臺)로 10리에 뻗은 긴 강의 입구에 있어 배가 서로 부딪히는데 골짜기의 초입이므로 1곡이라 하였다. 그곳에서 1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충주와 청풍의 경계에 월천(月川)이 남동에서 북쪽으로 흘러든다. 그 너머 들판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고 숲이 빼곡한 곳이 2곡 화암이다. 그 위쪽에 들판이 점차 넓어지고 산이 점차 높아지는데 뾰족한 천 개의 봉우리 사이에 큰 마을을 마주하는 개울이 3곡인 황강이다. 이곳에 선생의 옛집이 있는데 ‘한수재’라는 편액 세 글자가 찬란하다. 그 안에는 선생의 영정이 걸려 있다. 그 너머에 소자 권섭과 권신응 등 일가붙이들이 빙 둘러 산다. 그 곁에 봉황대(鳳凰臺)가 있고, 그 위에 열락재가 있다. 당시 글을 배우는 이들이 공부하던 방이다. 언덕을 마주한 외로운 산 아래 작은 집이 오뚝한데 소자와 문인 이선보(李宣輔)가 조술(祖述)하여 지은 방학정(放鶴亭)이다. 북쪽으로 몇 리를 오르면 푸른 산이 올려다보이는 곳이 3대의 선산이다. 뒤쪽 언덕에 오래된 사당이 엄숙한 모습으로 서 있다. 도포를 입은 쟁쟁한 수천 수백의 선비들이 우러러 절을 하는 곳이다. 4곡 황공탄은 중국의 구당협(瞿塘峽)이나 염예퇴(艶預堆)와 유사한 형상인데 탄식과 경탄을 자아낸다. 5곡 권호는 맑은 여울이 콸콸 흐르고 깨끗한 못이 넘실거리는데 좌우에는 촌락이 그림처럼 가물거린다. 6곡 금병산은 척 척 높이로 깎아지른 암벽이 창연한데 관아가 즐비하고 누각이 늘어서 있다. 심신이 시원하여 골짜기가 으슥하다는 것도 문득 잊은 채 그림 속으로 걸어 다니는 듯하다. 학서암(鶴棲巖)을 지나면 강가에 구름 속으로 불현듯 솟구쳐 있는 부용벽이 7곡이다. 능강동은 산수가 깨끗하여 소자의 거연재(居然齎) 등이 있는데 모두 선생이 이름 붙인 것이다. 점점 깊이 들어가면 만풍각(晩風閣)이 있는데 이 역시 소자가 선생이 이름 한 바를 따른 것으로 8곡이다. 여기서 10여 리를 더 들어가면 구담인데 소자가 새로 지은 정자가 높다랗게 서 있다. 또 인근에 이인상(李鱗祥)의 수연실(脩然室)과 이기중(李箕重)의 익연각(翼然閣)이 굽이굽이 나오면서 이름난 땅의 풍광을 꾸미고 있다.

-권섭, 「황강구곡도기」(『옥소장계』)

[구성]

총 10수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황강구곡」이 한역이라는 특징상 「황강구곡가」를 앞에 쓰고 뒤에 한시를 정리한다.

총가(摠歌)

하이 뫼흘여러 地界도 을시고[하늘이 산을 열어 땅도 밝구나]

千秋水月이 分밧긔 아셰라[천추수월이 언제나 맑구나]

아마도 石譚巴谷을 다시볼 여라[아마도 석담파곡을 다시 본 듯하구나]

천개시협지명령(天開是峽地明靈)

수월천추분외청(水月千秋分外淸)

석일재거금묘모(昔日齋居今廟貌)

석담파곡계명성(石潭巴谷繼名聲)

대암(對岩)

一曲은 어드메오 花岩이 奇異샤[일곡은 어디인가 화암이 기이하구나]

仙源의 깊은믈이 十里의 長湖로다[선원의 깊은 물이 십 리의 장호로다]

엇더타 一陣帆風이 갈아라 가니[한바탕 돛바람 갈 곳을 알아 가는구나]

종세의위소협선(終歲欹危溯峽船)

동남창취호산천(東南蒼翠好山川)

평암복재징징반(平岩伏在澄澄畔)

십리장호담담연(十里長湖淡淡烟)

화암(花岩)

二曲은 어드메오 花岩도 됴흘시고[이곡은 어디인가 화암도 좋구나]

千峰이 合沓한데 限없슨 烟花로다[천봉이 중첩한데 한없는 봄 경치로구나]

어셔 犬吠鷄鳴이 골골이 들니니[어디서 개와 닭 소리가 고을마다 들리네]

청산합향렬천봉(靑山合香列千峯)

풍물연화미자용(風物烟花未自容)

수외장천련야색(水外長川連野色)

수촌계구소림중(數村鷄狗小林重)

황강(黃江)

三曲은 어드메오 黃江이 여긔로다[삼곡은 어디인가 황강이 여기로구나]

洋洋 鉉誦이 舊齋를 니어시니[글 읽는 소리가 옛집을 이었으니]

至今의 秋月亭江이 어제론 여라[지금의 추월정강이 어제인 듯하구나]

범범연파상하선(泛泛烟波上下船)

한재풍물이하년(寒齋風物已何年)

명궁엄처금신영(名宮儼處衿紳咏)

월색추강애가련(月色秋江愛可憐)

황공탄(皇恐灘)

四曲은 어드메오 일흠도 홀난샤[사곡은 어드메오 이름도 혼란하구나]

灘聲과 岳危이 一壑을 흔드[여울 소리와 절벽이 골짜기를 흔드는데]

그 아래 깁히자 龍이 櫂歌聲에 거다[그 아래 깊이 자는 용 뱃노래에 깨는구나]

분학경도란박암(噴壑驚濤亂拍岩)

등라풍괄우산산(藤蘿楓栝又毿毿)

장년이유여신우(長年已有如神牛)

지시잠룡와하담(知是潛龍臥下潭)

권호(權湖)

五曲은 어드메오 이 어인 權소ㅣ런고[오곡은 어디인가 여기가 권소인가]

일흠이 偶然한가 化翁이 기린가[이름이 우연인가 화옹이 기다린 탓일까]

이 中의 左右村落의 살아 볼가 노라[이 중의 마을에 살아 볼까 하노라]

일강류도시호심(一江流到是湖深)

남북촌리처처림(南北村籬處處林)

지설사구천사대(地設斯區天似待)

시옹장유소려심(是翁長有小廬心)

금병(錦屛)

六曲은 어드메오 屛山이 錦繡로다[육곡은 어디인가 병산이 비단 수를 놓았구나]

白雲明日이 玉京이 여긔로다[흰 구름과 달을 보니 옥경이 여기로구나]

우희 太守神仙이 네 뉘신줄 몰내라[저 위에 태수신선이 뉘신 줄 모르는구나]

단단병산기곡만(短短屛山幾曲彎)

옥경요지백운관(玉京遙指白雲關)

삼분태수신선여(三分太守神仙汝)

새벽루태조모한(塞壁樓台早暮閒)

부용벽(芙蓉壁)

七曲은 어드메오 芙蓉壁이 奇絶샤[칠곡은 어디인가 부용벽이 뛰어나구나]

白尺天梯의 鶴唳를 듯올 듯[높은 곳 학 울음소리 들려오는 듯하고]

夕陽의 泛泛孤舟로 오락가락 다[석양에 외로운 배로 오락가락하는구나]

쌍뇨소상하삼탄(雙橈溯上下三灘)

석조명시앙수간(夕照明時仰首看)

기일여문황학려(幾日如聞黃鶴唳)

일제고용벽궁한(一梯高聳碧穹寒)

능강(凌江)

八曲은 어드메오 凌江洞이 고깁희[팔곡은 어디인가 능강동이 맑고 깊어]

琴書四十年의 네어인 손이러니[금서 사십 년이 어찌된 손님인가]

아마도 一室雙亭의 못내즐겨 하노라[아마도 일실쌍정이 못내 즐거워하는구나]

소학심한여아개(小壑深閑與我開)

기년모동매연회(幾年茅棟每沿洄)

금서불시산중객(琴書不是山中客)

일실쌍정소거래(一室雙亭所去來)

구담(龜潭)

九曲은 어드메오 一閣이 그 뉘러니[구곡은 어디인가 일각이 그 누구인가]

釣臺丹筆이 古今의 風致로다[조대단필이 고금의 풍치로구나]

져긔 져 別有洞天이 千萬世가 노라[저기 저 별유동천이 천만세인가 하노라]

형형일각망의연(亨亨一閣望依然)

단필창대좌서천(丹筆蒼臺坐逝川)

대벽장래천장수(大壁張來天丈水)

별장기외동중천(別藏起外洞中天)

[특징]

권섭 자신이 지은 「황강구곡가」를 주희(朱熹)[1130~1200]의 「무이도가(武夷櫂歌)」에서 차운하여 한역하였다.

[의의와 평가]

「황강구곡」권상하가 경영하던 구곡원림을 소재로, 구곡의 아름다운 경치와 은거하는 즐거움을 읊은 한시이다. 구곡원림의 경영과 구곡가의 창작은 16세기에 성리학이 지배적 사상으로 등장하면서부터 나타난다. 권섭「황강구곡」 한역은 당대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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