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이도(李燾)와 최여천(崔與天)이 편찬한 전라도 남원읍지(邑誌)의 증보판. 1699년에 이도와 최여천이 편찬한 『용성지』에 보유(補遺)편을 추가하여 1725년 이후에 다시 편찬한 것이다. 방두천(房斗天)이 발문을 지었으나, 보유편을 누가 짓고, 언제 누가 편찬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용성지』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이구징(李耈徵)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시의 군(郡)·현(縣)에 파견되었던 지방 관리. 감무는 고려 중엽인 1106년(예종 원년)부터 정부가 서해도(西海道)를 비롯하여 각 지방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방 군·현의 백성들을 위로하여 유민(流民)의 발생을 방지함으로써 조세와 역(役)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특히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과 속현 지역에 감무관을 파...
-
전라북도 남원시의 고려 태조부터 왕조 말까지의 역사. 고려시대 남원은 남원부(南原府)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남원부는 고려 건국 초에는 강남도에 소속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는 강남도와 해양도가 합하여 전라도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남원부 역시 여기에 소속되었다. 남원부는 또 용성(龍城)이라고도 하였다. 남원 지역은 통일신라 이래 5소경(小京)의 하나로,...
-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존한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의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역사. 남북국시대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뒤 신라와 발해가 대립하던 시기부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서기 936년까지를 의미한다. 신라가 백제를 병합(936)하면서 남원 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신라에서는 백제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의 하나로 685년(신문왕 5)에 남...
-
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설치된 역도(驛道). 건국 이래 강력한 지방 토착 세력들을 견제하며 중앙 집권적인 권력 구조를 구축하고자했던 고려는 성종 때 12목을 설치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에 나섰으며, 조세(租稅)와 공부(貢賦)를 징수하여 경제적인 토대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적인 교통수단이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역참제도와 조운제도를 확립하게 되었다. 남원도는...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내의 남원 유생들을 위한 국립 중등 교육 기관. 남원향교는 조선시대 숭유정책에 따라 전국 모든 행정 구역에 설립된 교육 기관 중의 하나로, 공자를 비롯한 4성(四聖 :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송나라 때의 6현(六賢 :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대 18현인에게 제사...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설치되었던 특수행정구역. 향(鄕)·소(所)·부곡(部曲)은 지방 행정의 말단 단위로, 군현 밑에 있는 하부 조직이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양민과 달리 그 신분이 노비·천민에 가까운 열등 계급이었다. 군현의 사람들이 부곡민과 혼인하면 그 소생 또한 부곡민에 편입시켰다. 부곡은 향과 더불어 호장과 같은 토착 관리들의...
-
전라북도 남원시의 1세기 중반에서 서기 7세기 중반까지의 역사. 일반적으로 삼국시대는 삼국이 형성되면서부터 백제(660), 고구려(668)가 멸망할 때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들 나라 외에도 가야와 부여 등의 나라와 함께 소규모의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중반까지 남원 지역에는 섬진강 유역의 마한과 남강 유역의 변한이 있었다. 섬진강 유역은 마한을...
-
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설치되었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관물의 수송, 공문서의 전달, 오고 가는 관리들의 숙박에 활용되었다. 고려 성종대에 와서 더욱 구체화된 역참제는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驛)으로 구성되었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이 시기에 전라도에는 전공주도(全公州道) 21개 역...
-
고려와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의 별호(別號). ‘용성’이 남원의 별호라고 처음 지칭한 것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서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남원을 가리키는 말로 용성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 『고려사』에 나오는 용성의 사용례를 찾아보면 대부분 수주(水州)[수원]의 속현이나 안변도호부에 속한 등주(登州)의 속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을 가리키는...
-
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설치되었던 여객(旅客) 및 교통 제도. 원(院)은 일반 여객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는 일종의 여관이었다. 그러나 국왕이 지방을 순시하거나 피난길에 이용되기도 했으며, 각 도 관찰사가 고을을 순행할 때에 점심을 먹거나 마필을 교체하는 곳으로도 쓰였다. 또한 원은 민심을 파악하거나 고을 수령들에 관한 내사(內査) 자료를 얻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지표상에 존재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공간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 분야. 남원시는 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있는 내륙 도시로,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쪽은 전라북도 임실군·순창군, 남쪽은 전라남도 곡성군·구례군, 북쪽은 전라북도 장수군에 접해 있다. 남원시는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고, 섬진강의...
-
1392년 조선 건국에서 1910년 한일합방까지의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역사. 현재의 남원은 조선시대 남원도호부와 운봉현이 통합된 것이다. 남원부는 조선 건국 후인 1413년(태종 13) 남원도호부로 바뀌었으며, 운봉현은 남원부의 속현으로 있다가 조선 건국 후인 1392년(태조 원년)에 독립되었다. 이후 남원도호부는 1739년(영조 15) 양찬규(梁纘揆)의 반란으로 인하여 일신현(...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운봉읍·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함양군·하동군·산청군에 걸쳐 있는 산. 지리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함양군·산청군·하동군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있는 거대한 산군(山群)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산이다. 경위도상으로 이 산은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
-
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설치되었던 수운(水運) 제도. 진(津)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전국의 주요 강변의 요충지에 설치했던 나루터이다. 관진(關津), 진관(津關) 또는 도(渡)라고 불렸다. 원래는 드나드는 사람들을 검색하기 위해 설치되었지만, 실제로는 교통 및 통신 기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남원부와 그 관할 군현들은 내륙 깊숙이 위치에 있지만 섬진강을 통해 남...
-
고려 후기 남원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대흥(大興). 평장사(平章事) 한유충(韓惟忠)의 아들이다. 한문준은 인종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재주 있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외직으로 나가 장주(長州)·장흥(長興)·남원(南原) 세 고을의 부사(副使)와 남경부유수(南京副留守)를 역임하면서 자비로운 정치를 베풀었다. 그의 제자 오세재(吳世材)가 시를 지어 “남녘에서는 세 군(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