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1년(순조 1) 간행된 여류학자 사주당 이씨의 태교서.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1739~1821]는 여류문장가이며 박학으로 당세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유한규(柳漢奎)와 혼인하여 1남 3녀를 두었는데, 34세 되던 해에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서 출산한 아들이 유희(柳僖)[1773~1837]이다. 유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음운학자로서 독창적인 방법으...
-
산신제는 지역에 따라 산제, 산제사, 산고사, 산지사, 산치성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마다 수호신으로 믿는 산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봄·가을과 정초에 제사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하나, 요즘은 음력 10월 초순경이나 정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은 산신당을 지어 신체를 모셔 놓고 치성을 드린다....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2년 과정의 초급 초등 교육 기관. 일제강점기에 실무 교육의 강화와 단기 교육을 목적으로 개설된 초등 수준의 교육기관이었다. 2년을 수료함으로써 끝나는 종결 교육기관으로 정규 학제와는 상관이 없는 학교였다. 1934년 이후로 일제가 보통 교육의 보급이라는 미명 하에 용인 지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저급한 실업 교육과 일본어 교육을 통해 낮은 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갈담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를 경안천이 흐르고 있다. 1914년에 갈월(葛月)과 파담(琶潭)에서 한 자씩 따서 갈담리라 하였다. 갈담은 옛날에 어영대장을 지낸 정찬술이 낙향하여 집을 짓고 「갈지담방 시우중곡(葛之潭芳 施于中谷)」이란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서 갈담을 취...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묘. 갈담리 사묘는 연안이씨 저헌공파(樗憲公派)의 후손인 이계희의 가옥 후원에 있는 사당으로, 이계희의 직계 8대조인 좌승지공 이홍기의 신위를 배향하고 제사를 받드는 사묘(祠廟)이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세기인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안이씨 저헌공파는 조선 초기의 문신인 저헌...
-
경기도 용인시에서 연구 또는 개발되었거나 되고 있는 과학과 기술의 총칭.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의미하나 좁은 뜻으로는 자연 과학을 지칭한다. 그리고 기술은 과학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상호 밀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
-
정신호를 시조로 하고 정응규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광주정씨(光州鄭氏)의 시조 정신호(鄭臣扈)는 고려 충선왕과 충숙왕에 걸쳐 상호군(上護軍)과 봉은사진전직(奉恩寺眞殿直)을 지내고 삼중대광문하찬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의 9세손 정응규(鄭應奎)가 용인시 처인...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었던 사립 고등 공민학교. 교훈은 덕업 실천·학문 연마·건설 용진이었다. 1950년 능원국민학교 이정하 교장이 중등학교가 멀어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위해 설립 계획을 세웠다. 당시 금성방직 김성곤 사장의 자금 지원을 받았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무산되었다. 이후 1951년 초 주민의 협조를 받아 능원국민학교 건물을 빌어 개교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에 능곡(陵谷)과 원촌(院忖)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능원리라 하였다. 능곡은 정몽주의 무덤이 있기에 이것을 능에 비유하여 능골이었다가 능곡이 되었고, 원촌은 포은 정몽주의 신위를 모신 충렬서원이 있어 유래했다. 원래 옛 용인군 모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우명동·내곡·원촌·능곡의 4개 동·리를...
-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한 도서관. 1960년대 현 처인구청 앞 농촌 지도소건물에 30여 평의 도서관이 운영되다가 1970년대 용인교육청 청사 내에 100여 평의 건물에서 도서관이 운영되었다. 그 후 1988년 용인교육청의 이전과 함께 도서관이 없어졌다가, 1993년 1월 용인군청에서 도서관 관리 운영조례가 공포되고 같은해 2월 4일 역북동에 있는 용인 시립도서관이 개관되었...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동림리는 모현읍 북쪽 문수산(文殊山)[222m]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광주시 오포읍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1914년 동산리(東山里)와 왕림리(旺林里)를 합하여 각각 한 자씩 취하여 동림리라 하였다. 동산은 문수산 동쪽에 위치하였기에, 왕림은 조선시대 이행상이란 선비가 이 곳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이행상의 호가 왕...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매곡과 상마산을 합쳐, 한 글자씩 따서 생긴 이름이다. 본래 용인현 모현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매곡과 상마산을 합쳐 매산리가 되고 모현면에 속하였다. 동쪽, 서쪽, 남쪽에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의 박석고개는 포곡읍과 경계를 이룬다. 박석고개 동쪽에 선장산, 고개 서쪽에 구만이산이 있다...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었던 사립 강습소. 문맹 퇴치와 생활에 필요한 기초 교육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독립운동 시기의 강습소는 한문을 주로 가르치는 서당이 아닌 지금의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사설 초등 교육 기관이었다. 모현강습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인근의 아이들을 모아 교육하던 곳이다. 충렬서원의 한문...
-
2003년 용인문화원에서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현 모현읍]의 실상을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긴 면지. 모현읍은 용인시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 광주시와 인접해 있다. 경안천이 면의 중심부를 지나고 광주산맥과 맥을 같이하면서 정몽주 선생 묘를 비롯하여 유현·명문 거족의 유택이 용인시 관내에서도 가장 많은 곳이라는 특성을 지닌 곳이다. 또한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과 청동기시대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에 있는 우편 및 금융기관. 1963년 8월 25일 개인이 설립한 별정우체국으로 개국하였으며 이후 도로확장으로 인해 1978년 10월 현위치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로 우편물의 접수, 운송, 배달과 같은 우정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예금이나 보험 등의 금융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우편 업무로는 국내 우편, 국제 우편, 우체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1982년 왕산리에서 개척된 교회로 1999년 갈담리 291번지[백옥대로 2318-22]로 새 교회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일본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으며, 중국, 필리핀, 캐나다 등지에 타 교회와 합동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여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담마을, 남사면의 천사의집 등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남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자주적인 어린이, 합리적인 생각으로 탐구 창조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0년대 모현에서 초등교육을 받기 위하여는 용인, 광주 등지로 통학해야 하는 불편이 있어 이 곳 유지 정대용, 이찬 등이 1927년 보통학...
-
조선 후기 숙종이 정몽주가 남긴 문집을 읽고 지은 어제시(御製詩). 「문충공문집에서 유상을 보고 느낌이 있어서 지은 찬」의 원 제목은 「문충공문집중견유상유감작찬(文忠公文集中見遺像有感作贊)」이다. 숙종이 포은 정몽주의 문집을 보고 느낌이 있어서 지은 8언 8행의 고시이다.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영당의 벽에 시판(詩板)으로 걸려 있다. 포은...
-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현감 민치서(閔致敍)의 아들이며, 민영준(閔泳駿)의 아버지이다. 민두호는 1880년(고종 17) 황주목사(黃州牧使)를 지냈으며, 1882년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재임하였다. 1886년에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춘천부사에 재임하였으며 독련어사(督鍊御史)의 역을 맡기도 하였다. 행정구역이 개편된 뒤 춘천부에...
-
경기도 용인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 민중들이 자연적,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양식이다. 전통 시대의 마을조직인 동계(洞契)·촌계(村契)에서는 주로 크게 세 가지 기능을 하였다. 첫째, 마을 공동의 수호신을 제사하는 사신공동체(祀神共同體...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본동마을에 있었던 사립 강습소. 한글과 기초 생활에 필요한 지식 습득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본동강습소는 한자 교육을 담당하던 서당 이외에 새로운 신교육이 필요함에 따라 지역 유지와 주민들이 합심하여 1920년대 후반 오산리 본동마을에 초가 건물을 짓고 설립한 학교이다. 1930년대 초 능원간이학교가 설립되면서 폐교되었다. 문...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불영사는 2003년에 모현읍 오산리 양촌에서 대웅전을 짓고 창건되었다가 그해 여름에 일산리로 이전하였다. 이곳의 주지 석의탄은 모현 지역에서 불교 포교에 전력하면서 모현읍은 물론 용인시 불교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모현초등학교, 모현중학교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과 어려...
-
1740년 영조가 선죽교를 지나다가 느낀 감회를 지은 어제시(御製詩). 「선죽교시(善竹橋詩)」는 영조가 선죽교를 지나가다 포은 정몽주의 도덕과 충정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한시 작품이다. 본래는 석비에 새기어 개성의 선죽교 옆에 세운 것으로, 훗날 시판(詩板)으로 만들어져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선생영당의 벽에 걸렸다. 칠언으로 2구만 전한다. 소지(小識)에 「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사찰. 1970년대 중반 창건되었으며, 2003년 여름 비구니 석선혜가 이곳에 사찰을 짓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석선혜는 우리나라 범패 이수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선무도(禪武道)를 행하고 있다. 사찰은 2층 조립식 가옥 형태이며, 2층에는 불교 관련 그림들을 유리창에 걸어 외부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성씨의 세거지와 집성촌. 성(姓)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일신라 이전에 일반적으...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은 세시(歲時)에 따라 나타나는 풍속(風俗)으로 자연적인 특성이 인문·자연 환경의 배경과 함께 관습적으로 생성되어 전해 내려오는 생활 양식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문화의 한 요소이다. ‘세(歲)’는 한 해를, ‘시(時)’는 춘하추동 4계절을...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 경안천변에 있는 정자. 세심정의 주변 경관은 경안천의 유수를 이용하여 왕산리 일대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보(洑)가 있는 하천의 물이 깊고 맑을 뿐 아니라 서쪽으로 탁 트인 공간이 시야에 펼쳐져 있다. 이에 따라 당시 왕산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변규현이 정자를 짓자는 발의를 하였다. 마을 유지들이 이에 뜻을 함께 하고 왕산리 노...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사용되는 삶의 지혜를 드러내는 짧은 문장의 격언. 속담은 한역되어 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입을 통하여 전해 오며, 지혜나 교훈을 비유적·상징적으로 압축하여 민족 전체가 공유하는 훌륭한 민족적 언어 예술이요 문학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속담의 세 가지 요건을 들자면 첫째, 민중 속에서 생산된 관용적 표현이다. 둘째, 보편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1971년 11월 포곡면 도사리에서 창립 예배를 보았으며, 1974년 현재의 초부리로 교회를 이전하였다. ‘예배보다 큰 일 없고, 예배보다 바쁜 일 없다’는 실천 목표 아래 모든 신자가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 기도와 찬양을 하고 있으며, 독거 노인 돕기, 불우 이웃 돕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
-
조선 후기 숙종이 포은 정몽주를 생각하며 지은 어제시(御製詩). 「숙종대왕 어제시(肅宗大王 御製詩)」는 숙종(肅宗)[1661~1720]이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정경세(鄭經世)의 시문집인 『우복집』을 보다가, ‘포은 정몽주의 운을 차하여(次圃隱鄭公夢周之韻)’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못 견디게 상심되어 그 운으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이다.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
-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안동권씨는 고려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이 된 권행을 시조로 한다. 왕건이 고창(지금의 안동) 싸움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그곳 호족이던 김선평·권행·장길 등이 왕건을 도와 크게 승리하였으므로 권행 등 3인을 대상(大相)으로 삼았다. 그 후 안동권씨는 10세조 권후평 이후에 14개 파로 나뉘어진다. 용인시 처인구...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석형(李石亨)과 이원발(李元發)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이무(李茂)이다. 본래 당나라 사람으로 백제를 침공할 때 소정방을 따라온 장수였다고 한다. 지금의 황해도 연안(延安)을 지키다가 당이 측천무후의 전횡으로 어지러워지자 신라에 귀순하였다. 김유신의 주청으로 연안을 식읍으로 주어 연안후에 봉해졌다. 저헌(樗軒) 이석형, 이...
-
정습명을 시조로 하고 정보와 정지한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신라 때 간관(諫官)을 지낸 정종은(鄭宗殷)이며 그 후손인 정습명(鄭襲明)을 중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와 정극유(鄭克儒)를 중시조로 하는 감무공파가 있다. 이 양파는 시조를 같이하면서도 그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서로 촌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가 가장 유명하며...
-
조선 후기 숙종이 정몽주의 「단심가」를 읽고 감회를 적은 어제시(御製詩). 「영정포은단심가(詠鄭圃隱丹心歌)」는 2003년 『모현면지』에「정포은의 단심가를 읊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는데, 숙종(肅宗)[1661~1720]이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읽고 느낀 감회를 적은 오언절구의 한시이다. 숙종은 이와 같이 정몽주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는 시를 짓고 이를 시판(詩...
-
조선 중기의 문신. 오달천(吳達天)[1598~1648]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한성(漢城) 숭교방(崇敎坊)[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해주(海州). 할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이다. 1620년(광해군 12)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마치고 벼슬길에 나아가 사산현역(四山縣役...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북쪽에 위치하며 죽전 및 분당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산수에서 유래되었다. 오산리는 해주오씨 집성촌으로 입향조 오희문을 비롯하여 후손들의 산소가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모현 일대에서는 이웃 능원리의 영일정씨 사패지를 정산이라고 하는데, 이에 비유하여 오산이라고 한다. 이는 오씨...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오윤겸의 묘. 오윤겸(吳允謙)[1559~1636]의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秋灘), 또는 토당(土塘)이다. 오윤겸의 본관은 해주이며, 보물 제1096호인 『쇄미록(瑣尾錄)』을 남긴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다. 오윤겸은 어머니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태몽을 꾼 뒤 잉태하여 초명을 성룡(星龍...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왕산리는 용인시 처인구의 북단으로 모현읍의 소재지이며 광주와 경계를 이룬다. ‘왕곡(旺谷)’의 ‘왕’자과 ‘모산(茅山)’의 ‘산’자를 따서 생긴 이름이다. 본래 용인현 모현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왕곡과 관청리(官廳里)·모산리를 합쳐 왕산리라 하고, 모현면에 편입시켰다. 동쪽은 노고봉이 솟아 있고...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성씨. 성(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이는 일종의 칭호로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대로 계승되며 절대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고려 중기부터라고 하는데, 시대에 따라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성에는 본관(本貫)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관(...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교 관련 단체와 기관. 유교단체란 유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각종 단체를 말한다. 유교단체로서 대표적인 것은 전통 시대에 유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 조직인 향교와 서원 등을 꼽을 수 있다. 나아가 향약(鄕約)에 바탕을 둔 향촌사회의 각종 계 조직이나 문인들이 선현의 정신을 기리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각종 유계(儒契) 같은 사적인 모...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근영은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일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여하여 「독립선언문」을 읽고 3월 5일 남대문역(서울역)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날 만세 시위에서 그는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며 남대문을 지나 조선은행 옆까지 갔다가 일본경찰에게 붙잡혔다. 그는 조선독립선...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회(汝懷), 호는 성곡(聖谷). 문성공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유진운(柳振運)이다. 남구만(南九萬)에게 수학했으며, 문필로 이름이 있었다. 1706년(숙종 32) 진사시에 급제한 뒤 괴음현감(槐陰縣監)을 지냈으며, 1721년(경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영남어사(嶺南御使)를 거쳐...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 파담마을에 있었던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문맹 퇴치 및 기초 생활에 필요한 지식 습득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1920년대 면장을 지내던 남계양이 학교 설립을 위하여 계를 조직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1924년 면장을 그만두고 이웃집을 얻어 유신의숙이라는 교육 기관을 세웠다. 일제의 간섭으로 의숙(義塾)이라 하지 못하여 공식적으로는 유신강습소...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단오(端五), 자호는 애오로(愛吾盧). 문성공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유진운(柳振運), 아버지는 유담(柳紞)이다. 부인은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며, 『언문지(諺文志)』의 저자 유희(柳僖)의 아버지이다.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담운(澹雲)...
-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재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남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문헌에는 57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영양·의령·고성 3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상세히 알 수 없다. 이들 세 본관은 모두 같은 시조에서 분파한 혈족으로 남민(南敏)을 시조로 삼고 있다. 남민은 원래 중국 봉양부 여남(汝南)[지금의 하남성 여남현] 사람으로 본명은 김충(...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자는 경담(景膽). 1567년(선조 즉위년) 임금에게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화를 당한 사람들을 포증(褒贈)하기를 청하였으며, 그것이 허락되자 『기묘록(己卯錄)』에 기록되었다. 1589년(선조 22) 장성현감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을 떠나자 도보로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삼등현령(三登縣令)에 임명되었으며, 군사를 다스리는 일과 양곡 조...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전통 가옥. 이계희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ㄷ자형으로 결합되어 있고, ㄷ자 전면에 ‘一’자형 부속체가 앞을 막아 튼 ‘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ㅁ’자보다 낮은 터에 ‘一’자형 행랑채가 있어 ‘므’자형 평면구조이다. 안채는 방-부엌-안방-방-방 순서로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는 방-대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는...
-
조선 말기 용인의 문신이자 교육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일(聖一), 호는 심재(心齋)·운정. 아버지는 이명익(李溟翼)이며, 양부는 이건익(李建翼)이다. 강위(姜瑋)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82년(고종 19)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강원도 암행어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다가 1886년 수구파로 몰려 고금도에 유배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복관된...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전통 가옥. 이도희 가옥은 넓은 방형 대지에 왼 ‘ㄱ’자형 안채, 왼 ‘ㄴ’자형 사랑채가 마주보는 형태를 이루며, 사랑채 앞에는 ‘一’자형 헛간채가 있다. 안채는 서남향으로 앉았다. 대지의 주위는 잡석으로 돌담을 쌓았으며, 서남쪽으로 난 출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앞에 안마당으로 통하는 대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사랑채로...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상여(相如). 아버지는 이백주(李白州)이다. 1651년(인조 20) 아버지 이백주가 시험관으로 있던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남달리 총명하고 시문(詩文)이 아름다우며 풍도(風度)가 있었다. 그러나 부친의 병간호로 마음을 졸이고, 부모상을 당하여 몸이 상하여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
-
조선 후기 용인의 문인.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조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敬寧君)의 11대 손으로, 남편은 목천현감인 유한규(柳漢奎)이고, 아들 유희(柳僖)는 『언문지(諺文志)』를 저술한 한글학자이다. 충청도 청주(淸州) 서면(西面) 지동(池洞)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녀자의 솜씨를 익히고 옛 열녀를 마음으로 사모하여 이에 『소학(小學)』, 『가례(家禮)』, 『여사서...
-
조선 중기 용인 지역의 열부. 강화최씨는 완산인(完山人) 이선양(李善養)의 처이다. 남편이 역질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자 최씨는 갖가지 약과 비방으로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산신에게 기도하고 피접도 해 보았으나 병세는 악화되어 운명 직전에 이르렀다. 이때 최씨는 손가락을 잘라 수혈도 하였지만 남편은 끝내 운명하였다. 친지들이 모여 시신을 거둘 때 남편이 사용하던 허...
-
조선 중기 전주이씨의 용인 입향조이자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5대손이고, 평창군수 이유언(李幼彦)의 아들이다. 이순수는 무과에 급제하여 종부시정의 벼슬을 지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주로 세거하는 전주이씨들의 입향조이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 하마산마을 뒤에 있다가 갈담리 독점 뒷산으로 이장하였다.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
-
조선 중기의 사인(士人).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화보(和甫).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으로 문강(文康)이라는 시호를 받은 이석형(李石亨)의 손자이고, 별좌(別座)를 지낸 조계남(趙繼男)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는 사예(司藝)를 지낸 이혼(李渾)이다. 첫째 부인은 문화류씨(文化柳氏)이고, 둘째 부인은 장연변씨(長淵邊氏)이다. 이순장은 음직(蔭職)을 받았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
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열부. 본관은 용인(龍仁). 이인수(李仁壽)의 딸로 죽창(竹窓) 이시직(李時稷)과 혼인하였다. 이시직의 처 이씨는 선조 대의 열부로 천품이 지효하여 시부모 봉양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고, 자녀의 교육은 법도에 어긋남이 없이 엄격하게 하였다. 병자호란 때 그의 남편 이시직(李時稷)이 강화도에서 송시영(宋時榮)과 함께 자결을 하여 종복이 망건과 유서를...
-
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약한 의병. 이윤빈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갈월리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며 지내던 중,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경기도 용인군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1909년 11월 19일 동료 정기인(鄭基仁) 등과 함께 경기도 광주군 상동막리 이장 허성습(許性習)과 실촌면 상열미리 이장 강성유(姜性有)로...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장. 이익삼은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이후 경기도 용인군을 근거지로 광주·죽산·양성 등지를 넘나들며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부하 30~40명과 함께 친일파에 대한 징치, 일본 경찰 습격, 빈민 구제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07년 11월 일시적으로 관(官)에 자수하였으나, 다시 봉기하여 활약하다가 1909년 6월에 다시 붙잡...
-
조선 중기의 무신. 1558년(명종 13) 무과에 급제,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있다가, 1583년(선조 16) 니탕개(尼湯介)가 경원(慶源)과 종성(鐘城)에 침입하자 경원부사(慶源府使)가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 1586년 니탕개가 재차 회령(會寧)에 침공하자 회령부사(會寧府使)로서 그 본거지를 소탕하는 등 공을 세워 함북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순변사(巡邊使)로 상...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덕수(德水). 일명 방(芳)·윤봉조(尹鳳朝), 자는 만위(晩瑋), 호는 춘호(春湖)·한정(漢汀)·법명(法明). 아버지는 이종백(李種百)의 아들로 이현(李賢)에게 입양되었다. 이정열은 천석꾼의 부자로 3·1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그 해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던 강태동(姜...
-
일제강점기 용인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계몽운동가. 이정희는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의 보통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면서 능원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다. 애향심이 남달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유달영 선생으로 하여금 「용인 애향가」를 짓도록 하여 보급에 힘썼다. 애향 정신 함양, 도덕 교육, 생활 교육에 전념했으며, 환경보호 운동에도 힘썼다....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집(景集), 호는 완서(翫西). 이용규(李用奎)의 아들이다.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서 출생하였다. 1876년(고종 13)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며, 1880년 감찰(監察)로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이후 조병호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영선사 김윤식의 고선관으로, 또 사은겸진주사 조...
-
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이하경은 경기도 양평군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08년 경기도 용인군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동료 6~7명과 함께 경기도 용인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 마련에 힘썼다. 그는 경기도 용인군 신원리(新院里)·자미리(自味里)·능동(陵洞) 등을 중심으로 활약하다가 붙잡혀 3...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학자. 이행상은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학자이다. 후대에 학문 성과를 인정받아 송단(宋湍)·성덕명(成德明) 등과 함께 이재 문하의 삼처사(三處士)로 불리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골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부터 사서삼경에 통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리(公履), 호는 왕림(旺林). 문강공(文...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유야(悠也), 호는 백치(白痴). 아버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이다. 1618년(광해군 10)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이 되어 시관(試官) 김륜(金崙)과 임건(林健) 등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이어서 호조정랑·직강·사서를 거쳐 평양서윤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첨정(僉正)으로 있을 때 명나라 장수 모문...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일리와 하마산을 합쳐 일산이라 했다. 하마산은 마을 동쪽에 있는 산의 형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渴馬飮水形]이므로 말과 산의 뜻을 취하여 마산이라 하고, 마산의 아래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하마산이라 하였다. 월촌은 하마산 마을 앞 동리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건넌말이라고 했다. 이를 한...
-
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정기인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쇠래(釗來)에 이주해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07년 10월부터 이익삼 의병장 휘하로 들어가 동료 2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능동(陵洞) 원촌(院村), 포곡면 둔전리, 수여면(水餘面) 방축리(防築里), 수여면 김량장, 하동면(下東面) 삼배위(三倍尉), 포곡면 두계위리(杜溪尉里), 광주군 상...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정낙용은 조선 철종 대부터 일제시대까지 활동한 문신 관료로, 철종 대에 관료생활을 시작하여 일제시대에는 남작의 작위까지 받은 친일파이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읍 갈담리 갈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구(景龜). 방어사(防禦使) 정인기(鄭寅基)의 아들이다. 1855년(철종 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
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정원경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으로 이주해온 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8년 3월경부터 이익삼 의병부대에 들어갔다. 김장옥·정기인 등 20여 명과 같이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김량장리, 하동면 삼배위(三倍尉)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혔다. 1910년 징역 2년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일영은 1900년 통신사(通信司) 전화과(電話課) 주사, 1904년 환구단(圜丘壇) 사제서령(祀祭署令), 봉상사(奉常司) 주사 등을 지내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후 해임되었다. 일제강점 후 1915년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의 성낙형(成樂馨)·김주원(金胄元) 등과 연결되어 고종의 해외 망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박봉래...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정찬술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무신으로 경기도 용인시 왕산리 왕곡마을에서 생활하였다. 83세까지 장수하여 회혼례를 올렸으며, 증손자가 정몽주(鄭夢周)의 사손으로 정해짐으로써 정몽주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술보(述甫). 정몽주(鄭夢周)의 11대손으로 아버지는 수군방어사(水軍防禦使) 정도징(鄭道徵)이며,...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일명 고철(高哲). 고려 말기의 충신 정몽주의 대종손으로, 아버지는 정의열(鄭義烈)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이다. 정철수는 1943년 12월 보성전문학교 3학년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당하였다. 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의 황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동료 두 명과 함께 탈출에 성공해 팔로군에 투항한 뒤,...
-
조선 중기의 무신. 1611년(광해군 3)에 알성(謁聖) 무과에 급제하였고 도총부도사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이르렀으나, 이미 적들이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사태가 위급하게 되자 자원하여 출전하였다. 정탁은 북문 밖으로 나아가 장수기를 흔들고 크게 소리쳐 적의 기세를 크게 꺾고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후원을 받지 못하여 패하였고 그 곳에서 죽었...
-
1707년(숙종 33) 숙종이 정몽주의 절의를 칭송하며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세 편. 「정포은(鄭圃隱)」은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肅宗)[1661~1720]이 지은 어제시(御製詩)로,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포은영당(圃隱影堂) 벽에 오태주(吳泰周)의 발문이 함께 시판(詩板)으로 걸려 있다. 오언절구의 한시 작품으로,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
조선 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윤칠(允七), 호는 모은(慕隱). 포은 정몽주의 18세손이고, 아버지는 정구현(鄭九鉉)이다. 정한영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발랐으며, 유가의 법도에 따른 특출한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한영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관직은 종사랑과 감리서주사(監理署主事)를 지냈...
-
조선 말기 정원화가 아버지 정한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기문. 「정한영 효자비각기(鄭漢永 孝子碑閣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서원말의 정한영 효자비각 안에 걸린 현판으로, 정원화(鄭元和)가 부친인 정한영(鄭漢永)[1862~1947]의 효행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칭송한 기문(記文)이다. 비각 안에는 효자비와 행장기(行狀記)가 있는데, 효자비의 비문은...
-
류인비를 시조로 하고 류진운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 류인비(柳仁庇)는 고려 태조 때 차(車)씨에서 문화류씨(文化柳氏)로 성을 바꾼 류차달(柳車達)의 10세손으로 밀직사를 지낸 류순(柳淳)의 아들 7형제 중 막내이다. 그는 고려에서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사 등을 거쳐 정당문학을 지내고 진산군(晋山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은 본관을 문화에서 진주...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초하리와 부곡리를 병합하여 초하리에서 ‘초’자와 부곡리에서 ‘부’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연혁대장』에는 약 200여 년 전 승지를 지낸 정건의 분묘가 ‘달리는 말이 안장을 벗어놓고 풀을 향하여 나가는 지형(走馬脫鞍 向草之形)’이라는 뜻에서 ‘초’자를 따고 인근 마을의 지명을 합하여 초부리라 하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 동쪽에 있는 해발 474.7m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초하천 물줄기의 근원은 크게 두 곳이다. 한 줄기는 하초하마을 윗쪽 용인공원 묘역 협곡에서 발원하고, 다른 한 줄기는 상초하마을 동쪽 협곡에서 발원한다. 두 갈래의 세천이 중간쯤에서 만나 초현마을 동쪽에서 경안천에 합류한다. 초부리에는 상미...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아이의 출산을 전후하여 행하는 의례. 산속(産俗)이라고도 하는 출산의례(出産儀禮)에는 넓은 의미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행하는 기자의례(祈子儀禮)부터 금기, 태교, 해산, 태처리 등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의례들이 포함된다. 출산의례는 크게 산전의례(産前儀禮)와 산후의례(産後儀禮)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모두 산모와 아이 모두...
-
1608년(선조 41) 이정구가 충렬서원에 내린 사액을 기록한 기문. 「충렬서원 강당기(忠烈書院 講堂記)」는 충렬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린 기문(記文)으로, 충렬서원에 사액(賜額)이 내리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이정구(李廷亀)[1564~1635]가 지은 기문이다. 이정구의 문집인 『월사집(月沙集)』에도 전한다.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
-
조선시대 이래 경기도 용인의 충렬서원에서 행해지는 향례. 충렬서원은 포은 정몽주를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있으며, 이시직·정보·오달제를 종향하고 있다. 향사는 춘향(春享)과 추향(秋享)을 지내며, 매년 3월과 9월 중정일(中丁日)에 행한다. 용인 지역의 유림과 행정 단체장, 정몽주 후손 등 150여 명이 참석한다. 충렬서원 제집사(諸執事)는 헌관과 집사로 구분...
-
충절의 상징이요,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동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영천이씨인데, 임신 중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려 깜짝 놀란 꿈을 꾸고 나서 낳은 아이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 포은 선생이 아홉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영천이씨가 낮잠을 자다...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 혼인은 가족을 구성하는 최초의 절차로서, 남녀 두 사람의 사회적·경제적인 결합을 기본으로 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이룬다는 지위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두 가문(家門)의 결합이기도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혼례를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할 정도로 중요시하였다. 물론 개인의 결합만을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