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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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基煥 |
영어음역 | Gang Gihwan |
이칭/별칭 | 성흥(聖興),송간(松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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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성별 | 남 |
생년 | 1778년(정조 2) |
몰년 | 1812년(순조 12) |
본관 | 진주 |
대표관직 | 연원도찰방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흥(聖興), 호는 송간(松澗). 잠은(潛隱) 강흡(姜恰)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강속(姜梀),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세흡(李世翕)의 딸, 처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휴(權 玉+休)의 딸이다. 아들로 강석중(姜碩重)과 강복중(姜復重)이 있으며 딸은 이만상(李晩常)에게 시집갔다.
[활동사항]
강기환(姜基煥)은 경상도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1803년(순조 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관례대로 승문원권지정자에 제수되었다가 이후 내직으로 성균관전적과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외직으로는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을 역임하였다. 이후 사직하고 만취(晩翠: 늙어서도 절개를 잃지 않음)의 뜻을 취하여 사는 곳을 ‘송간(松澗)’이라 이름하고 은거하였다.
강기환은 몸가짐이 정갈하고 성품이 검소하여 일찍이 학문에 통달하였지만 더욱 자신을 낮추고 권문귀족의 문을 출입하지 않았다. 손수 ‘저인일두퇴인일보(抵人一頭退人一步: 남과 부딪히는 것이 한 뼘이라도 남에게 양보하는 것은 한 걸음만큼)’라는 글을 써서 좌우에 걸어두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성찰의 도구로 삼았다. 남과 교유할 때도 문행(文行)이 있는 사람과 가려 사귀었으며 시는 맑고 투명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송간집(松澗集)』 2권 1책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