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성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진주유씨 21세손인 유신[1748~1790]의 아들 유중서(柳重序)[1779~1846]가, 둘째 아들 유방[1823~1887]이 살림을 낼 때 지은 집이다. 경성당은 원래 서울 남산에 있는 진주유씨 18세손 유명천(柳明天)·유명견(柳命堅) 형제가 공부하던 서실인데, 후에 유원성(柳遠聲)이 차명하여 당호로 썼다. 경성당은 1...
-
조선 말기 및 대한제국기 관료였던 유원성의 시문집.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개산(皆山) 유석(柳碩)의 7대손, 퇴당(退堂) 유명천(柳命天)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유방(柳霶)이다.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명(周鳴), 호는 모산(帽山), 백산(白山)이며, 조선 후기와 구한말에 활동한 관료이다. 1851년 안산 부곡동에서 출생하여 벼슬이 개천군수에 이르렀으나, 19...
-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한때 묵향(墨鄕)으로 불린 곳이 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이다. 조선시대 안산군 군내면 부곡리(釜谷里)와 신리(新里)에 속해 있던 부곡동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부곡리로 통합되고, 이어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에 따라 안산시 부곡동이 되었다. 부곡동은 2009년 6월 30일 현재 총 8,40...
-
1900년 유원성이 진주유씨 문중의 산소를 표기하기 위해 경기도 안산 부곡 일대를 그린 지도.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1851년 안산 부곡동에서 태어났으며, 개천군수에 올랐으나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제의 침략 야욕이 본격화되자 1907년 모든 관직을 버리고 독서에만 몰입하였다. 「부계전도(釜溪全圖)」는 그동안 진주유씨 백참판공파 문중에서 보관하여 왔다...
-
일제강점기 유원성이 경기도 안산 부곡 일대의 팔경을 그린 8폭 병풍.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1851년 안산 부곡동에서 태어났으며, 개천군수에 올랐으나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제의 침략 야욕이 본격화되자 1907년 모든 관직을 버리고 독서에만 몰입하였다. 「부계팔경도(釜溪八景圖)」는 일제에 고향땅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그가 몸담고 있던 부곡 지방...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기도 안산시의 역사. 안산은 예부터 서해안의 교통·교역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며, 풍부한 물화가 집산하던 곳이었다. 이러한 자연환경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학문·교육·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하였고, 외세에 대한 저항 의식이 높았다. 안산에서 인류의 자취는 신석기시대부터 찾을 수 있다. 신길동 신석기 유적, 초지동 별망 패총은 이곳이 신석기...
-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관인. 본관은 진주(晋州)이고, 자는 주명(周鳴), 호는 모산(帽山)·백산(白山)이다. 아버지는 처사(處士) 유방이다. 1851년(철종 2) 출생하였고 1945년 사망하였다. 묘는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다. 유원성은 1874년(고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897년에는 법부주사로서 고종이 원구단에서 고유제를 지낼 때 재랑(齋郞)으로 참여하...
-
경기도 안산 출신의 문화예술인. 본관은 진주. 자는 화일(華日), 호는 창농(倡農)·화은(華隱)이고, 초명은 유해창(海昶)이다. 유방(柳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원성(柳遠聲)이고 아버지는 유한수(柳漢秀)이다. 유갑수(柳甲秀)에게 입양되었다. 유해엽은 부곡동 매미골에 있는 경성당에서 거주하며 지역의 역사를 알리는 데 힘을 다했다. 묘소는 상록구 부곡동 선산에 있다. 유해엽은 휘...
-
유정을 시조로 하고 유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안산의 진주유씨(晋州柳氏)는 시조 유정의 17세손 유적(柳頔)이 안산에 아버지 묘자리를 정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성씨이다. 유정(柳挺)은 고려의 상장군으로 토진주(土晉州)로 불리는 별파의 시조이다. 유정의 후손들은 원래는 충청북도 괴산에 살았는데 유정의 11세손이자 유시회(柳時會)의 조카인 영정파(永貞...
-
1911년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세거하는 진주유씨 가문에서 만든 종약서. 1911년 대종손과 차종손 문장(門長) 그리고 삼파손(三派孫) 등 5명이 종중을 대표하여, 1886년에 작성된 「오위시사절목(五位時祀節目)」을 보완하기 위해 위토를 정하여 세운 종약서이다. 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23×28㎝이다. 첫 장에는 차종손으로 문장인 유원성(柳遠聲)이 종약서 작성 취지를 기...
-
1908년 유원성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매미골로 낙향한 이후 지은 한시.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근대 인물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명(周鳴)이며, 유명천(柳命天)의 6세손이다. 1874년(고종 11) 사마시에 급제하여 평리원검사와 개천군수를 지냈다. 평리원검사 시절 이준(李儁)[1858~1907] 열사와 함태영(咸台永) 전 부통령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
1908년 전후 유원성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매미골로 낙향한 이후 지은 한시.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근대 인물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명(周鳴)이며, 유명천(柳命天)의 6세손이다. 1874년(고종 11) 사마시에 급제하여 평리원검사와 개천군수를 지냈다. 평리원검사 시절 이준(李儁)[1858~1907] 열사와 함태영(咸台永) 전 부통령과 함께 활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