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이 1593년 2월 10일부터 1593년 3월 6일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지금의 창원[진해] 웅포 해안에 위치했던 일본군을 공격한 해전. 1593년 1월 부산의 일본군을 무찌르라는 조정의 지시를 받은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이끌고 부산으로 가던 중 웅천에 주둔한 일본군을 먼저 무찔러야만 협공을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 이순신이 이끈...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선조 31년)까지 일본이 창원을 포함한 조선을 침략한 전쟁. 임진왜란의 초기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전쟁 발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 윤 11월에 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중국 측의 사신이 파견되어 왔을 때, 영의정 등이 왕에게 올린 보고문이 주목된다. 중국에 보내기 위하여 작성된 이 보고문은 당시 조선의 전황에 대한 허위나...
정유년(1597) 1월 이후 1598년 종전 시기까지 현재의 창원[진해] 지역에서 벌어진 해전. 정유재란이 발발한 이후 지금의 창원[진해] 지역에서 벌어진 해전은 1597년 6월 19일의 제2차 안골포 해전이 유일하다. 따라서 정유재란 때 진해 지역의 해전은 주로 제2차 안골포 해전을 의미하며, 통제사 원균이 지휘한 해전 중 가장 전과가 뚜렷한 해전으로 평가된다. 정유재란이 시작되...
창원은 조선시대에 들어 그 읍격이 승격하였다. 창원부로 시작하여 1415년(태종 15)에 창원도호부로 개칭하였다가 임진왜란을 겪은 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창원이 행정·군사의 중심 지역이자 경상남도 일대의 수도로 그 위상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문묘의 전패(殿牌)가 분실된 사건을 계기로 9년 남짓 창원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있는 임진왜란 시기의 해전 장소. 웅포 해전은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웅포[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와성 마을과 사도 마을 사이의 포구]를 점거하고 있던 왜군을 격멸하기 위하여 1593년 2월 10일부터 3월 6일 사이에 접전을 벌인 해전을 일컫는다. 조선 수군이 부산에 진을 친 왜군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웅포를...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두 번째 해전으로 1592년 음력 5월 7일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행암 학개 마을 앞 바다에서 벌어진 해전.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끈 판옥선 24척과 경상우수사 원균의 판옥선 4척이 합동으로 전투를 벌여 옥포 해전을 승리로 이끈 후 영등포 앞 바다에서 머물러 있던 중 하오 4시쯤 왜선 5척을 발견했다는 척후장의 보고에 따라 이를...
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에서 전개된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안 지역은 고대로부터 창원·김해 지역과 해외를 연결하는 접촉 통로 역할을 하였다. 가락국 허황후가 탔던 배가 진해구 해안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시대에는 왜구가 처음으로 침략해왔던 지역이다. 조선 시대 초기부터 진해구 해안에 수군 관방과 왜관이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