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남포리에 있는 개. 남포는 구산면 남포리에 있는 개이다. 『경상도 지리지』에 여포(餘浦)라는 표기로 등장한다. 여포 봉화가 북쪽으로 완포현(莞浦懸) 고산 봉화를 바라보는데 거리가 수로로 30리라고 하였다. 『세종 실록』에는 여포와 함께 여음포(餘音浦)라는 표기가 등장한다. 『창원 도호부』에 여포에 봉수가 있는데 북으로 완포현...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현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터. 『웅천 읍지』에 의하면 고산 봉수에는 봉수군보(烽燧軍保)는 100명[군 25인, 보 75인]이 있었다. 현동 뒷산인 고산(高山)의 정상에 있었으며, 동쪽의 사화랑산 봉수(沙火郎山烽燧)의 신호를 받아서 북쪽 창원 성황당 봉수(城隍堂烽燧)로 알렸다. 장복산 봉수가 폐지되기 전에는 동쪽 장복산 봉수, 남쪽의 창...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에 있는 봉수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 성산구의 경계부에 솟아 있는 장복산(長福山)의 고봉에 위치한다. 경상도 방면에서 서울의 목멱산(木覓山)에 이르는 제 2거의 간봉(間烽)이다. 『동국여지지』와 『여지도서』에 따르면 장복산 봉수는 장복산에 있었다. 명동 마을의 배후에 위치한 사화랑 봉수(沙火郎烽燧)의 신호를 받아서...
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서 주로 정치 군사적인 국가 안보의 목적으로 운용된 통신 제도.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지방과 변경의 긴급한 상황을 국왕에게 신속히 전달하기 위하여 마련한 통신 제도이며, 주로 정치 군사적인 목적에서 설치, 운영되었다. 기록상 봉수제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 이후인데 조선 시대 진해 지역의 봉수로는 고산 봉수(高山烽燧)와 장복산 봉수(長福山烽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