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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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 지역이 ‘민주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시대적 사건과 배경.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서울에서는 여운형의 주도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조선 건준]가 결성되었다. 8월 17일 발표된 조직 명단을 보면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안재홍, 총무 부장 최근우, 재무 부장 이규갑, 조직 부장 정백, 선전 부장 조동호, 무경 부장 권대석 등 사회주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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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화(金炳和)[1900~1946]는 창원군 웅동면(熊東面) 계광학교(啓光學校) 교사 주기용(朱基溶)의 제의로 인근 웅천면(熊川面)의 문석주(文碩柱), 정운조(鄭雲祚)와 함께 1919년 4월 3일의 ‘웅동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김병화는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 2천여 장을 등사하고 태극기 600여장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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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농민 운동 단체. 1920년대 중반 이후 농민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전국 각지에는 수많은 농민 운동 단체들이 생겨났다. 특히 1930년대 초반에는 농민 운동 단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총독부의 지원을 받는 개량적 농민 단체에서부터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혁명적 농민 조합에 이르기까지 그 성격은 다양했다. 농민 운동의 내용에서도 생존권 확보 투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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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1910년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인의 저항을 막고 영구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무단 통치를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전역은 수탈과 착취 아래 놓였고 조선의 백성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항쟁하였다. 창원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년 운동·문화 운동·3·1 만세 운동·농민·노동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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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오늘날의 명동 관내의 땅 이름은 『호구 총수』에 삼포리(參浦里)와 동도리(童島里)로 나온다. 그러나 1912년에 간행된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 명동리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삼포리나 동도리가 명동리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명동리는 1973년에 웅천면이 진해시로 편입되면서 경상남도 진해시 명동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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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때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 마산 지역 일제 강점으로 인한 억압과 수탈은 일부 매판자본가·기생지주(寄生地主)들을 제외한 우리의 대다수 민중들을 몰락과 고통으로 몰고 갔다. 마산 지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마산에 1909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마산 출장소를 설치하고, 농민들의 토지 박탈과 고율의 소작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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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무단 통치가 자행되던 1915년 3월에 사립학교 규칙이 대폭 개정되어 발표된다. 이 규칙의 내용은 사립학교 설치는 반드시 총독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인가 없이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규칙은 당시 사립학교 사정으로 매우 가혹한 처사였고, 그 적용 범위는 한국인을 교육하는 모든 사립학교에 적용되었다. 학교의 경영자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이 규칙을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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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원포동에는 국립 여관격인 팔현원(八峴院)이 있었는데 원개라고 하고 원포(院浦)로 차자 표기를 하였다. 원개 주위에 취락이 이루어지면서 동명이 되었다. 『호구 총수』에 원포리(院浦里)로 나오며, 1910년 식민지 통치와 더불어 법정동 정리 때 수치 마을이 원포리에 흡수되었다. 1973년 웅천면의 경상남도 진해시 편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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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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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진해 지역에서 지주와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횡포에 맞서 소작 관계 개선과 농조 건설을 위한 농민 운동. 지나친 소작료의 징수 고리대의 악용 등 농민들은 늘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여기에 마름들의 농간과 그들에 의한 소작권의 빈번한 이동으로 소작 농민들의 삶이 매우 힘들어졌다. 이에 지주와 동척의 횡포에 맞서 소작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농민 조합의 건설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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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속하는 법정동. 죽곡동은 옹기를 굽던 곳이 있어 독점이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이 듣기 좋지 않다하여 대밭골이라 부르기로 하고 죽곡(竹谷)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죽곡’으로 표기한 연유는 마을 주위에 해장죽[시누대, 식대]이 많이 자랐기 때문이다. 1899년(고종 33)에 제작된 「웅천군 지도」에 죽곡(竹谷)이란 마을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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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94년까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1895년 23부제 실시에 따라 진주부 예하 창원군으로, 1896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남도 창원군으로 개편되었다. 1899년 마산포가 개항되었고,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가 개설되어 군수가 감리를 서리하였다. 1906년 창원부로 승격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원군으로 개칭하고 외내면을 마산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