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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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舞踊 |
영어의미역 | Danc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혜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인간의 육체를 표현 매체로 삼아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
[옛 창원시[현 의창구·성산구]의 무용 변천]
창원 지역은 시정을 전개한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하나둘 신설되었다. 이와 함께 중등학교 무용 교사들이 창원시에 이주해 오면서 무용인들의 모임이 최초로 결성되었고, 이 후 도시가 발달하면서 무용도 함께 발전하였다.
1. 1980~1990년대
1987년 창원 시립 무용단이 창단되어 창단 공연과 정기 공연 및 순회 공연을 하였다. 1988년 8월 20일 한국 무용 협회 창원 지부가 인준을 받고 설수석이 초대 지부장을 맡았다. 설수석 무용 학원·창원 새싹 발레·성심 무용·김숙희 무용 학원·이남주 무용 학원·이화 무용 학원·강미화 무용 학원·세종 무용 등 많은 학원이 생겨나면서 무용 인구도 점점 늘어났다.
1992년과 1994년, 1995년에 경남 무용인 합동 공연제가 열렸고, 국립 발레단과 모스크바 발레단의 초청 공연 등 외부 공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95년 5월 19일 김경미 무용 발표회가 있었다.
2. 2000년대 이후
2000년 창원 성산 아트홀 개관으로 무용 공연의 관람 기회는 더욱 많아졌다. 제9회 전국 무용제가 창원 성산 아트홀에서 개최되어 정진욱 무용단의 「훠~훨」이 대상과 안무상을 수상하면서 지역 무용계에 새로운 분위기와 창작 욕구를 북돋우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전국 무용제를 계기로 좀 더 나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경남 예선제를 도입, 매년 경연을 통하여 경상남도 지역의 무용을 발전시키는 데 창원 지역이 역할을 함으로써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다.
성산 아트홀의 개관은 인근의 무용인들을 창원으로 모여들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2002년 12월 17일 지역에서 젊은 춤꾼들로 이루어진 춤패 터와 울림 무용단이 성산 아트홀에서 제8회 정기 공연을 열었다. 이때 권미애 현대 무용단과 춤패 뉘 무용단이 소개가 되었는데, 권미애·박은혜·임연희 등 모두 젊은 무용인들로 구성되어 무용인들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는 분위기였다.
2005년 경남 무용단이 창단되어 12월 6일 성산 아트홀에서 ‘만날 고개’라는 제목으로 창단 공연을 하였다.
[옛 마산시[ 현 마산 합포구 마산 회원구]의 무용 변천]
1. 1960년대 이전의 마산 무용
우리나라의 근대 무용은 1900년대 이후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극장 무대가 생기면서부터 외국 무용의 소개와 본격적인 무대화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거쳐 1950년대 말까지 마산에서 김해랑, 박임순, 최현, 김행자 등의 선구적인 활동을 통해 무용의 터전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김해랑은 1939년 마산에 김해랑 무용 연구소를 개설하여 춤의 보급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2. 1960~1990년대 마산 무용
1962년 7월 7일 한국 무용 협회 경남 지부가 결성되는데 마산 무용은 협회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는 이필이, 박성희, 설수석, 정양자, 유현숙의 정기 공연으로 이뤄진다. 12월 27일 경상남도 도립 무용단이 창단되면서 초대 단장에 정양자가 선임되었다.
1991년 7월 23일 정양자의 문하생들로 구성된 단체 록파회 무용단의 창단 공연이 신태양 극장에서 열렸다. 10월 20일에는 제13회 마산 예총제 무용 공연이 무용 협회 경남 지부에 의해서 공연되었다.
1994년7월 22일에 춤의 해 여름 야외 이벤트 순회공연을 마산역 광장에서 펼쳤고 10월 31일은 제14회 마산 예술제 무용 공연을 마산 종합 운동장 올림픽 국민 생활관에서 공연했다. 12월에 장순향의 제2회 무용발표회가 ‘아! 조국 나의 땅’ 이란 주제로 올림픽 국민 생활관에서 공연했다.
1993년 5월에 정양자가 한국 무용 협회 경남 지회장으로 선출되며, 1962년 7월 7일 이후 유지되어 온 경남과 마산 지부의 분리가 이루어진다. 1993년 3월에는 제4대 지부장 정양자의 사임으로 유현숙이 제5대 지부장으로 피선된다. 11월 10일에는 제2회 경남 무용인 합동 공연이 KBS 창원홀에서 공연되었다. 1993년 춤패 터울림이 창단되었다. 춤패 터울림은 장순향, 권미애, 고미숙, 서계화 등을 중심으로 한 부산 여자 대학교 무용과 동문 춤꾼들의 모임이다.
1995년 2월에 이동근에 의해 마산 어린이 발레단이 창단된다.
1996년 10월 26일 한국 미래 춤 학회 경남 지회가 주관하고 창원 대학교 무용학과가 주최하여 ‘우리 춤의 선구자 김해랑’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창원 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해랑은 마산 무용을 이끌었던 선구자로 소개되며 마산 무용인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리 잡게 된다.
1998년에는 이현이 이끄는 춤서리 무용단이 창단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부터 부산 여자 대학교 출신들로 이루어진 터울림 무용단에서 학연을 던져 버리고 경희 대학교 출신 박은혜를 영입하며 새로운 활동 방향을 모색했다.
6. 2000년대의 마산 무용
2000년 10월 1일 경남 춤 아카데미 창작 무용극 「도(道)」 공연이 열렸다.
11월 4일 록파 무용단이 MBC홀에서 창단 10주년 특별 기획 ‘새천년 대금 산조’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가졌다. 출연에는 서계화, 박은혜, 조영주, 김현정, 방은주 등이 출연을 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가 마산 무용계로서는 해방 이후 최고의 전환점을 맞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길목에 정옥경, 김수미, 박은혜, 이현, 조영주 등이 있었다. 2000년 12월 18일 결 무용단의 창단 멤버였던 김수미, 박은혜, 허정심을 중심으로 춤패 뉘 무용단이 재결성 되었다.
2001년 7월 6일 제10회 전국 무용제 경남 무용 예선 대회에 이현이 이끄는 경남 춤서리 무용단이 「검은 입」 작품으로 참가한다. 이후 경남 춤서리 무용단은 대중성 있는 춤 공연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2002년 춤패 뉘 무용단의 활동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만들어져 해마다 현지 설날 축제를 가져온 ‘프랑스 한국 문화회’가 마산에 있는 한국 문화회 한국 지부와 공동으로 2월 18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마련한 제4회 설날 축제와 아울러 ‘한국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데 2월 22일에는 춤패 뉘 무용단이 춤판 공연을 맡았다. 7월 19일 제11회 전국 무용제 경남 예선 대회가 창원 성산 아트홀에서 열렸다. 마산에서는 백혜임 무용단의 「망부석」 공연이 펼쳐졌다.
2003년 3월 9일 경남 지역에 청소년 무용단이 생겼다. 지역 중·고등학생 9명으로 구성된 마산 청소년 무용단은 이필이를 단장으로 창단식을 갖고 경남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필이가 작고하면서 유일한 한국 무용 청소년 무용단은 사라졌다.
2004년 5월 3일 마산 MBC홀에서 제1회 김해랑 선생 추모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에는 김해랑의 제1기 수제자격인 정민이 출연하여 애수의 선자를 펼쳐보였다. 이후 김해랑 추모 공연은 정양자의 록파 무용단의 주관으로 매년 열리며 김해랑 기념사업회의 모태가 된다.
2006년 5월 28일 마산 MBC홀에서 정진욱 무용단의 창작춤 「땅을 지키는 사람들」 무용극이 열렸다. 2007년 4월 28일 정양자 무용 아카데미에서는 우리춤 협회 경남지회 창립총회가 열렸고 12월 26일 이필이의 춤 인생 60주년을 기념해 이필이 춤 전수원 개원식이 열렸다.
2008년 마산 시민의 숙원이었던 3·15 아트센터의 개관은 이후 폭발적인 공연 수요를 담아내며 마산 지역의 시민 뿐 만 아니라 마산의 무용인들에게도 새로운 문화 허브로 자리 잡았다. 7월 1일 개관 축하 공연으로 마산 무용 협회에서 「가고파 만선」을 올렸다.
2008년 12월 9일 산조 춤의 대가 이필이의 춤 인생 6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마산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렸다. 말기 암 투병으로 미뤄졌던 공연이 이필이가 어느 정도 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열리게 된 것이다. 이듬해 2009년 3월 17일 산조 춤의 대가인 이필이가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2010 마산 국제 춤 축제 개막 행사 중 하나로 5월 15일 마산 3·15 아트센터 국제 회의장에서 '마산 무용의 역사성과 그 미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2010년 7월 1일 통합 창원시가 출범함에 따라 마산을 타이틀로 내건 무용 공연도 막을 내렸다.
[옛 진해시[진해구] 무용 변천]
1. 1950년대~1970년대의 진해 무용
진해의 무용은 1950년대 중반 김덕순 무용 연구소가 개원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64년 5월 1일 박정현, 김옥선, 정미혜, 정영자, 황혜자 등 창립 회원으로 무용 협회 지부를 결성하고 지부장에 박정현이 선임 되었다. 진해에서 무용 발전은 군항제와 함께 이뤄졌다고도 볼 수 있다.
1966년 4월 14일 제4회 군항제에서 김옥선 무용 연구소 문하생들이 중앙 극장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1967년 제5회 군항제 때는 경남 지역 경축 무용 발표회에서 진해 지부가 박정현과 무용 협회원들이 출연해 성과를 거두었다.
1968년 군항제에서는 경축 무용 발표회를 가졌으며 1969년 제7회 군항제에는 해양 극장에서 ‘합동 무용 예술제’를 가졌다.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제8회, 제9회, 제10회 군항제에는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가 진해 여고 강당에서 있었고, 1973년 제11회 군항제는 4월17일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가 도천 초등학교 강당에서 있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전국 무용 경연 대회가 계속해서 마련되었으며 1974년 정나영 무용 연구소의 문하생 발표회가 있었다.
1979년 제17회 군항제에 이르러서야 예총 예술제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는데 해양 극장에서 경남 무용인들의 공연이 있었으며 4월10일에 진해 여고 강당에서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가 있었다.
1980년 제18회 군항제는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만 열렸다. 이후 박정현 지부장의 서울 생활로 인한 공석으로 무용 협회의 활동은 공백기에 접어들었다. 진해 무용의 행사는 1980년대에도 군항제 행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로 전국 무용 경연 대회와 예총 무용제로 나뉘어 공연이 펼쳐진다.
1981년 군항제 전국 무용 경연 대회는 1990년까지 도천 초등학교와 덕산 초등학교에서 열렸다. 1981년 무용 협회 지부장은 공석이 되었지만 행사는 진행되어 10월30일 해양 극장에서 예총 무용제가 있었다.
1982년 2월 총회에서 최성희가 지부장으로 행사를 맡아 이끌어가게 된다. 10월15일 제63회 전국 체육 대회 경축 예술제가 해양 극장에서 있었다. 북춤에 김진홍과 함께 군무가 출연을 하고 야류에 이필이가 출연을 하였다.
1986년 11월21일 해양 극장에서 무용 협회 지부장 최성희의 춤판 「강신무」가 마련되었다. 1988년 4월7일 초청 무용의 밤이 해양 극장에서 이어졌다. 1989년 11월 3일 제2회 진해 예술제 무용 공연이 해양 극장에서 열렸다.
1990년 4월 20일 도천 초등학교에서 열린 전국 무용 경연 대회에서 박은혜가 한국 창작 무용 부문에서 특상을 차지했다. 1992년 2월 총회에서 지부장으로 정귀진이 선임 되면서 4월 3일에 정귀진 발레 「축제의 바리에이션」이 시민 회관 대강당에서 만원을 이루는 성황을 올렸다.
1993년 진해 시민 회관이 개관을 하면서 무용 공연은 질적 향상을 나타내기 시작 한다. 제31회 군항제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와 1994년 4월 3일 제32회 군항제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와 4월 10일 ‘예지회 초청 공연’이 시민 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다. 1995년, 1996년 33회, 34회 군항제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만 시민 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다. 이후 전국 무용 경연 대회는 매년 시민 회관 대강당에서 펼쳐지고 있다.
1999년 2월 권미애가 무용 협회 지부장으로 선임되었다. 7월 경상남도 무용제에 권미애 무용단이 참가하여 대상과 함께 안무상을 수상하고 제9회 대한민국 무용제에 참가 자격을 획득, 10월 속초에서 경연에 참가했다. 10월 22일 경남 무용제 대상 수상 작품인 시민을 위한 현대 무용 「다리 위 다리 밑」이 시민 회관 대극장에서 앵콜 공연 되었다.
2. 2000년대의 진해 무용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1년은 무용 창작 작품에 많은 영향이 있었다. 2001년 4월8일 「눈부시게 서서..날고 싶다」 창작 레퍼토리 공연이 있었으며 10월 20일 가을맞이 야외 춤판에는 춤패 터울림이 협연으로 「..그리고 흔적」이 권미애의 안무로 발표됐다.
2002년 제40회 군항제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는 4월 7일 시민 회관 대극장에서 열연되었으며 박은혜가 지도자상을 받았다. 4월 11일 ‘Image 2002’가 시민 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졌으며 7월 경남 무용제에 권미애 무용단이 참가하여 대상과 안무상을 수상했다. 진해 무용의 열정이 경남 무대에 두 번이나 대상을 차지하였다.
2004년 제24회 군항제 전국 학생 무용 경연 대회는 4월 4일 시민 회관 대극장에서 열렸으며 일반부 특상에 박은혜가 경상남도 도지사상을 받았다. 4월 5일 문화의 거리 야외무대에서 권미애 현대 무용단, 의랑 무용단의 무대가 이어졌다. 10월 대한민국 우수 무용인으로 권미애 지부장이 50인에 선정되었다.
2007년 '2007 신진 예술가'로 뽑힌 춤꾼 박은혜의 ‘2007 박은혜의 춤-도미 부인 아랑’이 9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국립 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공연을 가진 후에 서울 공연을 축하하는 의미로 9월 8일 진해 시민 회관에서 성왕리에 펼쳐졌다. 12월 4일 진해 시민 회관 대공연장에서 진해 무용 협회에서 「물의 꿈 2007」을 선보였고 12월 5일 강다숙 무용단의 제2회 정기 공연이 열렸다.
2008년 11월 16일 박은혜가 대표로 있는 드림 댄스 휠 예술단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무대를 마련하였다. 16주 동안 장애인과 함께 무용 동작 치료 과정을 거쳐 몸으로 이야기 하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다.
11월 6일 미리내 무용단의 제2회 정기 공연이 시민 회관에서 열리고 12일 춤패 뉘의 2008 무대 공연 작품 「진해 아리랑」 무용 공연이 마련되었다. 12월 5일 시민 회관에서는 수능을 마치고 방학을 맞이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진해 무용 협회의 2008 젊음의 송가가 열렸다.
2009년 진해시가 마련하는 토요 상설 무대로 진해루에서 많은 공연들이 열리는데 여기에 무용 공연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2009년 6월 30일에는 미리내 무용단의 우리춤 향연이 열렸고 7월 10일 춤패 뉘 무용단의 제8회 정기공연 ‘진해 아리랑 Part Ⅱ’가 진해루 상설 무대에서 마련되었다.
진해 무용도 역시 7월 1일 통합 창원시가 출범함에 따라 진해를 타이틀로 내건 무용 공연도 역사의 페이지 속으로 스며 들어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2012년 현재 무용 협회는 여전히 마산·창원·진해 지역으로 분류되어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오히려 서로의 지역에서만 활동을 하는 모습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
[현황]
2008년 현재 창원에서 활동하는 무용인 단체로는 창원 무용 협회와 한국 무용 협회 창원 지부가 있으며, 무용단은 창원 시립 무용단, 창원 대학교 무용학과 정유영 발레단, 김태훈 현대 무용단, 배귀영 무용단 등이 있다.
창원 무용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무용 콩쿠르는 한국 무용 협회 창원 지부가 주최하는 고향의 봄 축제 전국 무용 경연 대회, 창원 대학교 무용학과에서 매년 2회 주최하는 무용 경연 대회, 국제 청소년 예술 문화 교류회가 주최하는 국제 청소년 예술 전국 무용 대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