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명지(明之), 호는 죽간(竹磵)이다. 시강원 문학을 지낸 강중진(康仲珍)의 증손자이며, 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다. 강복성[1550~1634]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한 뒤, 참봉·직장(直長)·찰방(察訪) 등을 지냈다. 1595년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장현광(張顯光) 등과 함께 발탁되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서원(西原). 예조 참판을 지낸 곽열(郭說)의 9세 손이며, 승지를 지낸 곽희태(郭希泰)의 8세손이다. 곽치능(郭致能)[?~?]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정성껏 좋은 음식으로 공양하였고, 겨울에는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만들어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눈병을 앓아 바깥출입이 어려워지...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 광덕사(廣德寺)는 ‘태화산 광덕사’로도 불린다. 백제 시기 사찰로 추정되는데, 신라의 자장(慈藏) 율사가 당(唐)에서 수행을 마치고 634년에 귀국할 때 진신 사리 10과, 법의, 화엄경, 불치(不齒) 등 많은 불구(佛具)를 가지고 와 광덕사에 전해 주었다. 그 후 832년...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사에 있는 조선 시대 돌 사자상. 광덕사 석사자(廣德寺 石獅子)는 광덕사 대웅전[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46호]을 올라가는 계단 입구 양측에 세워져 있는 2기의 사자상이다. 원래 광덕사 입구 보화루(報化樓)를 올라가는 돌계단 옆에 있었는데 여러 차례 도굴꾼에 의해 불법 반출된 것을 되찾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1984...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사에 있는 조선 시대 부도. 부도(浮屠)는 승려의 유골을 안장한 사리탑을 말하는데 광덕사 경내에는 모두 5기의 부도가 있다. 이 가운데 4기의 부도가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85호로 지정되었으며, 각각의 명칭은 청상당(淸霜堂) 부도, 적조당(寂照堂) 부도, 우암당(愚庵堂) 부도, 무명(無名) 부도이다. 이외에 진산 화상(珍山和尙)의 부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권학경(權學經)[?~?]은 타고난 성품이 몹시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죽자 초상에서 장례까지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밤에는 아버지의 관을 붙잡고 슬퍼하고 낮에는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초상을 치르고 삼 년 동안 시묘를 살며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준비하여 제사를 올리고 추모하였다. 어머니를 섬기는 데 있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자정(子靜)이고, 호는 백인당(百忍堂)이다. 할아버지는 만호(萬戶)를 지낸 김신충(金藎忠), 아버지는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김원개(金元凱)이다. 아들로 김진명(金振溟)이 있으며, 동지(同知) 김만진(金萬珍)이 손자이다. 김구연(金九淵)[1582~?]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따라 왜적을 섬멸하여 선조(宣朝)가...
-
조선 시대 천안 지역의 효자. 김담(金澹)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전의(全義)에서 직산으로 이사해 왔는데, 사람됨이 순박하고 꾸밈이 없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죽은 뒤에 홀로 남은 아버지를 정성을 다해 극진히 섬겼다. 집이 몹시 가난하였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힘써 농사를 지어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장마로 인해 생활이 몹시 어려울 때에도 아버지의 밥상에는 맛있는 음...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병부판서 의성군 김광부(金光富)의 11세 손이고, 이조 참의를 지낸 김로(金路)의 10세 손이며, 승지를 지낸 김신정(金愼貞)의 5세 손이다. 김득휘(金得輝)[?~?]는 천성이 타고난 효자로서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와 조부모를 섬겼다. 아버지가 등에 큰 종기를 앓아 증세가 심해지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 병이 낫게 했고...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김주수(金柱秀)[?~?]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다. 아버지가 늙고 병세가 깊어져 소의 생간을 먹고 싶어 하자, 나무를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살림에도 이웃집의 소를 잡아 아버지께 생간을 드려 병을 고쳤다. 또, 아버지가 위장병을 앓아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하고 병세가 깊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 의 효자. 본관은 진도(珍島), 자는 여형(汝亨)이다. 호부 시랑을 지낸 김혁여(金奕輿)의 11대손이다. 『국역 직산현지』에 따르면 김중태(金重泰)는 직산군 이남면 정자리[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정촌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여 봉양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병들었을 때 대변을 맛봐 상태를 살폈고, 손가락을 끊어 피를...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병조 판서를 지낸 김광부(金光富)의 10세 손이고, 이조 참의를 지낸 김로(金路)의 9세 손이며, 승지를 지낸 김신정(金愼貞)의 4세 손이다. 김항(金恒)[?~?]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아홉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른처럼 통곡하고 슬퍼하였다. 삼 년간 슬퍼하며 죽으로 연명하였다. 할머니가 가...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노대하(盧大河)[1546~1610]는 임진왜란 때 김응남(金應南) 휘하의 종사(從事)로 있으면서 식량 수송에 공을 세웠다. 천안 군수로 있을 때 처음으로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였으며, 왕실의 행재(幸宰)로 쓰이던 화축관과 객사를 건립하였다. 천안 군수 임기를 마치고 이천 부사로 승진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수오(受吾),...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구성동에 자리한 당제산 성황당에 얽힌 이야기. 「당제산 이야기」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구성동에 자리한 당제산 성황당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역모로 몰린 양반이 당제산에 숨어 살다가 함께 역모에 연루되어 죽은 어느 대감의 부인을 만나 사랑을 하였는데, 관군에게 들켜 도망치다 불에 타 죽은 이야기이다. 이후 두 사람이 죽은 곳에 성...
-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서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목천현의 관아 터. 목천(木川) 현아(縣衙) 터는 조선 시대 목천현(木川縣)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지방 행정 구역이 개편되고 목천군이 천안군으로 통합됨에 따라 목천의 관아 건물이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목천 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또한 목천 현아 터는 ‘목천현 관아, 목천현 공해’로도 불린다....
-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교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목천 향교(木川 鄕校)는 조선 시대에 충청도 목천현 지역의 지방 교육을 담당한 국립 교육 기관이다. 창건된 시기는 목천현에 현감이 파견되었던 1413년(태종 13) 이후로 추정된다. 목천현의 읍지인 『대록지(大麓誌)』에 의하면 향교는 원래 관아로부터 서북쪽에 있었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모두 퇴폐하여 현...
-
충청남도 천안시 동쪽 지역의 조선 시대 행정 지명. 목천은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 신라의 대록군(大麓郡)이었던 것이 고려 성종 때에 목주(木州)로 개칭되면서 청주에 속했다가, 1172년(명종 2)에 이르러서야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된 현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1413년(태종 13)에 목천(木川)으로 고치면서 종전의 감무 대신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했고,...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박춘흥(朴春興)의 아들이다. 박인길(朴仁吉)[?~?]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대추 하나, 배 한 개라도 품에 넣었다가 반드시 부모에게 갖다 드렸다. 7월에 병들어 앓던 어머니가 갑자기 죽어 시신을 염하여 관에 옮긴 뒤였는데. 박인길은 칼로 손가락 끝을 짼 다음 목침으로 연달아 짓찧어서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게 하여...
-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조선 시대에 선현을 추모하고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 제향을 드리던 공간. 사우(祠宇)는 조선 시대에 선현(先賢)을 제사하기 위해 건립된 제향처(祭享處)이다. 사우는 유현이나 충절인의 가향(家鄕), 거주지, 근무지, 유배지, 순절지[전승지], 타계지 등에 세워졌다. 사우의 건물 구조는 대개 제사를 지내는 사묘(祠廟)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학문과 제향을 위한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서원(書院)과 사우(祠宇)는 조선 시대 중요한 사설 교육 기관이자 선현(先賢)을 제사하는 제향처(祭享處)로서 후진을 교육시키고 선비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고려 말 안향(安珦)에 의해 성리학이 처음 전래된 이후 성리학은 조선의 정치 지도 이념으로서 기능하였고, 민간에는 문풍(文風)을 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직(敬直)이다. 적순부위(迪順副尉) 서혼(徐混)의 아들이며, 효자 서충필(徐忠弼)의 동생이다. 서충좌(徐忠佐)는 아이 때부터 성품이 순정(純正)하여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열두 살에 할머니 상을 당하여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아버지를 따라 시묘하면서 교대로 제사를 받들었고 탈상한 뒤에도 게으름이 없었다. 1571...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언직(彦直)이다. 적순부위(迪順副尉) 서혼(徐混)의 아들이며, 효자 서충좌(徐忠佐)의 형이다. 서충필(徐忠弼)은 타고난 자질이 순후(醇厚)하고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여러 해 동안 동생 서충좌와 함께 봉양하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자 변의 맛을 보고 상태...
-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오는 성씨. 성씨란 시조(始祖) 이래로 대를 이어 내려오는 혈족의 공통 칭호이다. 사실 성(姓)과 씨(氏)는 본원적인 의미에서는 개념이 달랐다. 성은 혈통의 연원을 표시하는 것이고 씨는 성의 분파(分派), 곧 본관을 의미하였지만, 보통은 구별해서 쓰지 않고 안동 김씨(安東金氏), 연안 이씨(延安李氏) 등 본관과 성을 합하여 씨족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대제학을 지낸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의 후손이다. 소휘만(蘇輝萬)[?~?]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성이 과묵하고 순수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삼년을 죽만 먹으며 시묘살이를 하였다. 또한 아버지가 사 년 동안 광기가 심하여 사람들이 감히 근접하지 못하고 자주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으나, 소휘만은 아버지의 목숨을...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효자. 손여성(孫汝誠)[?~?]은 효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제수되었으며, 천안 군수 재임 시 처음으로 『천안 문헌록』을 작성하였다. 치적이 높이 평가되어 남원 부사로 영전되었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극일(克一), 호는 용담(龍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손위(孫渭), 할아버지는 손수창(孫秀昌)이다. 일찍이 아버지가 병이 들자, 목욕...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이다. 송영흥(宋永興)[?~?]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말과 행동이 신중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하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봉양하였는데, 자신은 좋은 옷을 입지 않고 맛좋은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구하기 어려운 음식도 반드시 구하여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장성하여 관직에 나아가서는 아침저녁으로 안...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송윤재(宋潤載)과 송지대(宋持大)의 본관은 여산(礪山). 정민공(貞愍公) 송현수(宋玹壽)의 후손이며, 송지대가 송윤재의 맏아들이다. 송윤재는 효성이 지극하여 효동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학질에 걸려 병세가 위독하자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으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매일 사당에 절을 하며 어머니의 쾌유를 빌어 옷은 무...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술샘에 대한 지명 유래담.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시장리에서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오색당리로 넘어가는 지름길은 수리 고개였다. 수리 고개는 ‘술샘이 있는 고개’, 또는 ‘술 고개’가 변형된 지명이다. 「술로 가득 찬 술샘」은 수리 고개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술샘에 얽힌 이야기이다. 「술로 가득 찬...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신필권(申必權)[?~?]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섬겼으며,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다. 장성한 다음에는 옷이 춥고 따뜻한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살피며 부모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렸다. 아버지가 투전놀이를 좋아하여 가세가 기울었으나 매일 한두 냥씩을 마련하여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사서(司書)를 지낸 한죽공(寒竹公) 심지청(沈之淸)의 5세 손이다. 심지영(沈祉永)[?~?]은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예와 정성을 다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극진하였다. 여덟 살에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이십여 년을 한결같이 약을 지어 올리며 정성을 다하였다. 본가가 근...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윤보(允輔)이다. 양도공 안경공(安景恭)의 후손이다 안종필(安宗弼)은 이동면 시랑리[현 천안시 입장면 시장리]에 살았다. 그는 학문이 깊지 않았으나 천성이 효심으로 가득하여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3년간 고통을 받았는데,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하며 의원에게 묻고 약을 구하는 등 간호에...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오막생(吳邈生)의 아들이 오계학(吳桂鶴)이다. 오막생(吳莫生)은 천안시 직산읍 마정리 미륵산(彌勒山) 부근에 살았다. 그는 학문을 배우지 못하였으나 천성이 순하여 부모를 잘 섬겼으며, 힘을 다하여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일찍이 병석에 눕자 밤낮으로 곁을 떠나지 않았고, 아버지의 속옷을 손수 빨아 항시 청결하게 모셨다. 추운 겨울에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원주(原州). 천안 군수를 지낸 원궤(元簋)의 5세손이다 원장(元墻)[?~?]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처럼 부모를 흠모하였고 부모의 뜻을 받들었다. 그리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아침저녁으로 죽순과 잉어를 구해 부모를 봉양하였다. 원장의 효성에 감복한 마을 사람들이 관아(官衙)에 알렸고, 주변 유생들이 서장(書狀)을 올려서 귀감으로 삼았다...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무송(茂松). 고려의 명신 유금필(庾黔弼)의 후손이다, 제학을 지낸 유순도(庾順道)의 13세 손이며, 부제학을 지낸 유득시(庾得時)의 9세 손이다. 할아버지는 효자 유제민(庾濟民)이다. 유덕태(庾德泰)[?~?]는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정성으로 효도를 다하였고, 어...
-
조선 시대 천안에 우거한 문신·학자.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조선 중엽의 문장가 겸 외교가로 크게 활동하였으며, 전서·예서·해서·초서에 모두 뛰어났다. 유몽인의 동생 유몽표의 아들인 유활(柳活)이 목천의 만매촌[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 처음으로 살게 되었으며, 유몽인이 처벌될 때 모두 적몰되었고 1794년(정조 18)에 신원(伸寃)되었으나 제...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판서 유승계(兪承桂)의 13세 손이다. 유붕기(兪鵬基)는 여섯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했고, 성년이 되자 어려서 상복을 입지 못한 것을 한평생 서러워하다 아버지의 회갑이 되던 해에 상복을 갖추어 입고 예를 갖추어 삼년상을 치렀다. 또, 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여 모셨다. 어머니가 병에 걸려 음식을 먹지 못하자...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문성군(文城君) 유수(柳洙)의 후손이고, 참봉(參奉) 유구년(柳龜年)의 고손자이다. 유석문(柳錫文)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해 부모보다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들었으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리며 예법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스무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었는데, 삼 년 동안 무덤의...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흥(高興).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증직된 유의신(柳義臣)의 아들이다 유연(柳淵)의 아버지 유의신은 임진왜란 때 한산도(閑山島)의 진중에서 왜적과의 전투 중에 숨을 거두었다. 이때 휘하 장병들의 동요를 염려하여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며 유연에게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지휘권을 넘겨받은 유연은 아버지의 소임을 대신하여 적...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참판에 증직된 유후양(兪後陽)의 고손자이다. 유위선(兪緯善)은 집안이 지극히 빈곤하였으나 부모 봉양에는 소홀한 것이 없었으며, 부인 안씨(安氏)와 함께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유위선의 효행과 관련해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가 꿩을 물어와 효행을 도왔다는 일화가 전한다. 어사(御使)가 유위선의 효행을 아름답게 여겨...
-
조서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효자 유언겸(兪彦謙)의 증손자이다. 효자 유응채(兪應采)가 아들이다. 유후양(兪後揚)[?~?]은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지기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사람의 도리를 대략 식별할 정도로 자랐을 때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아버지를 찾으며 소리쳐 울부짖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
-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보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려. 유후양(兪後揚)은 정랑 유언겸(兪彦謙)[1496~1558]의 증손으로 유복자로 태어났다. 커서 아버지의 묘소를 늙어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성묘하였고,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여 밤마다 문안 드렸다. 아버지의 기일에는 애통해하며 초상(初喪) 때와 같이 통곡하여 이웃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였다고...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의 윤장호가 전승 고서와 문서류.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의 윤장호가에서 전승되어 온 고문서들이다. 경서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필사본이며, 조선 시대에 성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흔히 소장하고 있던 경서, 시문집, 사서(史書)와 개인 문집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중에서 천안시의 향토 유적으로 관리되는 『농역기장(農役記帳)...
-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은석산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사찰. 은석사(銀石寺)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6교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창건 당시에는 큰 사찰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조선 인조 때에는 백곡 김득신을 비롯하여 이극태, 권현, 유지림, 김만중 등 많은 문장가들이 모여 강론한 장소로도 유명하...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지돈녕(知敦寧) 이심행(李審行)의 후손이다. 이규운(李奎運)[?~?]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열 살 때 중국 진(晉)나라 이밀(李密)이라는 사람이 관직을 받고도 할머니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퇴한 「진정표(陳精表)」를 읽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독서와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설(應說)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이노(李櫓)의 아들이다. 이기빈(李箕賓)[1563~1625]은 1583년(선조 16) 별시(別試) 병과(丙科) 55위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천 부사에 제수되었고, 1593년에 진주 목사로 승진하였다. 이후 1599년 강계 부사...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중촌(中村)이다. 이효범(李孝範)의 손자이다. 이기준(李頎俊)은 어려서부터 예의를 중시하고 효성을 다하여 부모의 뜻을 받들었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대변을 맛보고 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초상에서 장례까지 한결 같이 예법에 따랐다. 3년 동안 움막에서 시묘 살이를 하며...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 이덕회(李德恢)[?~1597]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어가를 호종하였고, 정유재란 때 남원 판관으로 있던 중 남원성 전투에서 순국하였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경렬(景烈)이다. 아버지는 첨정을 지낸 이극(李克)이다. 이덕회는 직산 삼동면 산음리 출신으로, 20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의병장. 본관은 수안(遂安), 자는 중수(仲綏), 호는 송담(松潭) 또는 일운 거사(一雲居士)이다. 참판을 지낸 이영견(李永肩)의 고손자이고, 승지 이익령(李益齡)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사도시 직장을 지낸 이생은, 아버지는 양양 도호부사를 지낸 이주국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동생인 이인장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학문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자윤(子尹), 호는 매계(梅溪)이다. 효자 이종주(李宗周)의 증손자이다. 이상익(李相益)[?~?]은 천성이 온화하여 어릴 때부터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병든 아버지가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하자 이상익은 보(洑)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는데, 날마다 붕어와 검은 모래무지가 물 밖으로 뛰쳐나왔으므로 사람들이 이...
-
조선 시대 천안에 우거한 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호는 여촌(麗村)이다. 감사를 지내고 천안 육현사(六賢祠)에 배향된 이승벽(李承璧)의 고손자이다. 이속(李涑)은 도학과 문장으로 가훈을 계승하였으며, 서울에서 내려와 고상한 도리를 행한 학자이다. 서울에서 내려와 고상한 도리를 행한 환성(歡城)의 유일(遺逸)이라 하는데, ‘환성’은 천안을 말하는 것이고, ‘유일’은 도...
-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종규(宗圭), 호는 분곡(盆谷)이다.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를 지낸 이선로(李仙櫓)이다. 이승벽(李承璧)[1554~1638]은 1585년(선조 18) 식년시(式年試)에서 진사(進士) 2등(二等) 16위로 합격하였다. 이승벽은 광해군(光海君)이 인목 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고 영창...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시백의 묘. 이시백(李時白)[1581~1660]은 연평 부원군 이귀(李貴)[1557~1633]의 장남으로 부자가 함께 인조반정에서 공을 세워 공신에 올랐다.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등 인조 초기의 국가적 변란 속에서 큰 공을 세우며 활약하였지만, 1650년(효종 1) 김자점(金自點)의 역모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이암(李巖)[?~?]은 천안 군수를 역임하는 동안 치적이 뛰어나 청주 목사로 승진되었다. 1594년(선조 27) 천안 군수로 재임 시 도내 수령 중에서 가장 치적(治績)이 뛰어나 이조(吏曹)의 천거로 청주 목사에 특진되었다. 이후 1599년 안동 부사를 거쳐 1604년 연안 부사가 되었다. 이듬해인 1600년 선정으로 명망이 높아 왕...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의 9세 손이며, 구천군(龜川君) 이수(李睟)의 7세 손이다. 이재겸(李載謙)[?~?]은 어려서부터 예의 바르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내 또한 행실이 바르고 효성스러웠다.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여러 해 누워 계셨는데, 이재겸과 그의 아내는 밤낮으로 곁에서 보살피며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도 잠...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대숙(大叔)이다. 학성군(鶴城君) 이철(李哲)의 후손이며,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지낸 이의(李誼)의 12세손이다. 이종은(李宗殷)[?~?]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온갖 정성을 다하여 모셨다. 워낙 집이 가난하여 자신은 새 옷 한 번 입어 보지 못했지만 음...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선(仲宣)이다. 이지봉(李至鳳)의 증손자이다. 이찬(李纘)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남달리 뛰어나 사람들에게 효자동(孝子童)으로 불렸다. 형이 따로 살며 부모를 모셨는데, 이찬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왕래하며 어머니의 안부를 살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십 리나 멀리 있는 묘에 날마다 성묘를 가서 아침부터 해가 저물...
-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성주이며 자는 자용(子用), 호는 남악(南嶽)이다. 부인은 전득중(全得中)의 딸인 천안 전씨(天安全氏)이다. 이협(李筴)[1583~1665]은 진사로 등과하여 영릉 참봉을 지냈다. 광해군 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였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절...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이다. 전시오(全時五)[?~?]는 아버지가 죽자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검소하게 살며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이 명주옷을 장만하여 입기를 권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몸에 걸치지 않았다. 임종할 때 자손들에게 “화목에 힘써 효성을 이루고 진실로 항상 조심하며 이를 외우라.”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자손들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온양(溫陽).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정광원(鄭光元)의 손자이며, 정태항(鄭泰恒)의 증손자이다. 정간시(鄭簡始)[?~?]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들었을 때 약탕기 옆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추운 겨울에 굼벵이와 뱀 같은 것으로 양약(良藥)을 만들어 부모의 병을 치료하였고, 여름에는 정자에 모시고 부채질을 하여 사람들이 모두 효...
-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정구(鄭逑)[1543~1620]은 문인인 황종해(黃宗海)를 통해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을 모신 목천의 도동 서원 건립에도 관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정응상(鄭應祥),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사맹(副司孟)을 지낸 정사중(鄭思中)이며,...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병조 판서를 지낸 정이한(鄭而漢)의 후손이다. 정동철(鄭東哲)[?~?]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상태를 살피고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마련하는 등 극진히 봉양하였다. 또한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접대함에 있어서도 항상 예로써 행하였다. 어느 날 부모의 약을 지어 돌아오는 길에 배고픔과...
-
충신·효자·열녀 등에 대하여 국가에서 내린 포상으로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조선 시대에는 충·효·열 삼강 윤리를 중요시 여겨 그 같은 행적을 보인 인물을 찾아 기록하고 포장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관장하였다. 포상은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그중 최고의 포상이 바로 정려였다. 정문을 내린다는 의미의 ‘명정’에는 물질적인 포상의 상물(賞物), 관직을 주는...
-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직산현의 아전. 조계남(趙繼南)[?~?]은 직산현 아전으로 있으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큰 공을 세웠다. 본관은 직산(稷山). 백제 개국공신 조성(趙成)의 후손이다. 대대로 직산의 거족이었으나, 할아버지 대에 가문이 몰락하여 향역에 종사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직산현은 교통의 요충지이자 중요한 군사적 거점이었다. 명나...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보(眞寶). 고려 말의 충신 조용(趙庸)의 7세손이다. 조진형(趙震亨)이 아들이다. 조립(趙砬)[1584~?]은 어려서부터 출중하였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섬기면서 의복을 손수 손질하여 봉양하였다. 36세 되던 해에 할머니가 죽자 통곡하며 슬퍼함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고, 53세 되던 해인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마을이 피폐해지...
-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시기의 천안 지역의 역사. 1914년에 천안군(天安郡)·목천군(木川郡)·직산군(稷山郡)이 통합되어 천안군이 되었고, 1963년에 천안시와 천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이 되고, 1995년에 다시 통합되어 현재의 천안시가 되었다. 따라서 1914년 이전의 천안시 지역은 천안(天安)·목천(木川)·직산(稷山) 지...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한림(翰林) 주세붕(周世鵬)의 후손이며, 사마소(司馬所)를 창건한 주여서(周汝瑹)의 7세 손이다. 주도복(周道復)[?~?]의 집안은 대대로 충효를 이어온 집안이다. 천성이 예의범절을 중시하였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여러 해를 병석에 있자 허리띠를 풀지 않은 채 밤낮으로 간호하였다. 몸소...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예조 판서를 지낸 주원의(周原義)의 15대손이며, 주부(洲簿)를 지낸 주희(周熙)의 11대손이다. 주석영(周錫永)[?~?]은 천성이 효성스럽고 예의범절이 뛰어났다.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 조금도 그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고, 늘 온화한 얼굴로 대하였다. 아버지의 체증이 심해 위중할 때 의원이 말하기를 “정화수를 많이 마...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군서리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직산 향교(稷山 鄕校)는 조선 시대에 충청도 직산현 지역의 지방 교육을 담당한 국립 교육 기관이었다. 창건된 시기는 문헌으로 확인되지는 않으며, 고려 후기 감무를 두었던 직산 지역이 1393년(태조 2) 지군사로 승격되고 1392년(태종 1) 감무로 강등되었다가 1413년(태종 13) 직산현으로 편제되었으...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군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직산현의 관아. 직산현 관아(稷山縣 官衙)는 조선 시대 직산현의 관아 시설로,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형태이고 일부는 면사무소로 쓰이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69칸에 이르는 관아 시설물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내동헌(內東軒)·외동헌(外東軒)·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4동의 건물...
-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남관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려. 창원 유씨 4위 정려(昌原 兪氏 四位 旌閭)는 정랑(正郞) 유언겸(兪彦謙), 유언겸의 아들인 유경인(兪敬仁), 유언겸의 손자인 유명립(兪名立), 그리고 유언겸의 처 열녀 칠비(烈女七非)로 창원 유씨 4위를 기리는 정려이다.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남관리에 있다. 남관리 마을의 다리에서 오른쪽으로...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장군 김시민의 생가 유허지. 김시민(金時敏)[1554~1592]은 1554년(명종 9) 충청도 목천현 백전동(栢田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 군기시 판관(軍器侍判官), 진주 통판(晋州通判) 등을 역임하였고...
-
충청남도 천안시 유량동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천안향교(天安 鄕校)는 조선 시대에 충청남도 천안군 지역의 지방 교육을 담당한 국립 교육 기관이었다. 창건된 시기는 문헌으로 확인되지는 않으며, 다만 조선 건국 후 1413년(태종 13) 천안부를 영산군(寧山郡)으로 고치고, 1416년 다시 천안군으로 고치던 무렵에는 향교가 있었을 것이다. 천안 향교는 한 번도...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서 전해 내려오는 청혼을 거절하고 패가한 이야기. 「청혼을 거절하고 패가한 상진」은 정승집 자제와 결혼하기를 청하는 촌부의 딸이 청혼을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결국 정승집이 패가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민병달·이원표 등이 조사하여 1998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 수록되어 있다....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효자 최엽(崔熀)의 증손자이다. 최달철(崔達喆)[?~?]은 직산군 삼동리 가좌동[현 천안시 입장면 가산리 일원]에 살았다. 어려서부터 비범하여 먹을 것을 얻으면 반드시 부모에게 바치는 등 부모 공경의 도를 행하였다고 한다. 여덟 살 되던 해에 병든 어머니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개를 앞세우고 산으로 가서 개에게...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천경(天擎)이다. 효자 최극해(崔克諧)의 둘째 아들이며, 최기(崔基)의 아들인 당숙 최극충(崔克忠)의 양자로 입적되어 대를 이었다. 최주민(崔柱旻)[?~?]은 천성적으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가 종창을 앓게 되자 입으로 종기의 고름을 빨아내며 간병하였다. 또, 어머니가 한겨울에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당. 유청신(柳淸臣)[1257~1329]은 고려 중기 원 간섭기에 외교관으로 활약하였던 인물이다. 비록 고향은 전라도 장흥이지만 원나라에서 들여 온 호두나무를 천안의 고찰 광덕사에 심었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말년에는 고려의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결국 귀국하지 못한 채 원에서 사망하였고, 후손들...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취지(聚之), 호는 성와(省窩)이다. 고려 때의 충신인 몽계(夢溪) 한철충(韓哲冲)의 후손이며, 참의(參議)를 지낸 한덕해(韓德海)의 6세 손이다. 한동오(韓東五)[?~?]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유하며 부지런하였으며, 동기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를 지극히 중시하였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죽었는데, 어린 몸이라...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한성기(韓聖基)[?~?]는 타고난 천성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밤낮으로 문안을 드리며 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했다. 아버지가 병들어 자리에 눕자 직접 미음을 끓이고 탕약은 반드시 먼저 맛을 보았고, 대변을 맛봐아 병세를 살폈다. 또한 자신이 아버지의 병환을 대신 앓게 해 달라고 하늘...
-
조선 시대 천안의 목천 지역에 우거했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명(士明), 호는 송암(松巖)이다. 고려 말 판서를 지낸 한철충의 6대손이다. 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한팽조(韓彭祖), 아버지는 한민(韓敏), 형은 참봉 한응기(韓應箕)이다. 목천현(木川縣) 근동면(近東面) 반계(磻溪)에서 형인 한응기와 함께 처음으로 살아 목천과 인연을 맺었다. 아들 한덕해(韓德海)는 16...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국로(國老), 호는 수은(睡隱)이다. 고려 때의 충신인 몽계(夢溪) 한철충(韓哲冲)의 후손이며, 효자 한동오(韓東五)의 손자이다. 한의교(韓義敎)[?~?]는 천성이 예의바르고 온화하며 부모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여러 해 동안 병환으로 자리에 앓아눕자 아무리 춥고 무더운 날이라도 허리띠를 풀지 않았다...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현상후(玄尙後)는 아버지가 풍(風)으로 인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경련이 이는 병을 앓았는데 몇 해가 지나 고질병이 되자, 효성을 다해 약을 구해 바쳤고 자신이 아버지 병을 대신 앓게 해 달라고 천지신명에게 기도하였다. 어느 날 병이 위독하여 거의 구원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는데, 칼로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 입에 피를 흘려 넣어 소생케 하였...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주(延州). 효자 현상후(玄尙後)의 서족(庶族)이라는 기록이 전할뿐이다 현유선(玄有先)[?~?]은 천안의 관노로, 바쁜 와중에도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 올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비록 가난하여 자신은 먹지 못하더라도 부모의 음식 봉양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으며,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했다고 전한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에 전해 내려오는 형제봉의 지명 유래담.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에는 마치 붓끝처럼 생긴 봉우리 두 개가 솟아 있다. 고을 사람들은 나란히 솟은 이 봉우리들을 형제봉이라 불렀다. 형제봉을 소재로 한 「형제봉과 두 형제」는 어느 대감의 서자로 태어난 형제가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끝내 신분적인 제약 때문에 뜻...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남양군(南陽君) 홍주(洪澍)의 후손이다. 홍천섭(洪天燮)[?~?]은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다듬이 방망이를 가지고 자신의 손가락을 찧어 생피를 흘려 넣어 3일을 더 살게 하였다. 어사가 지극한 효행이 천성에서 우러났다는 서계(書啓)를 조정에 올렸으며, 유생들이 포상을 바라는 글을 지어 올렸으나 정표를 받지는 못했다....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경일(景逸)이다. 할아버지는 황우참(黃友參), 아버지는 황윤림(黃潤淋)이다. 효자 황종해(黃宗海)가 아들이다. 황덕휴(黃德休)[?~?]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 아버지가 죽자 몹시 슬퍼하며 동생과 함께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는 임진왜란과 흉년으로 인해 어려운 상...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 황세득(黃世得)[1537~1598]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의 막하 장수로 무공을 세웠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사구(士求)이다.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황종식(黃鍾植)이며, 어머니는 강위빙(姜渭聘)의 딸 진양 강씨(晋陽姜氏)이다. 부인은 방인(方寅)의 딸 상주 방씨(尙州方氏)로, 이순신의 부인 방씨의 사촌 언니이다. 아들은 임진...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마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무신 황세득의 묘. 황세득(黃世得)[1537~1598]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사구(士求)로 직산(稷山) 출신이다. 아버지는 감찰(監察) 황종식(黃鍾植)이며, 어머니는 진양 강씨(晋陽姜氏)이다. 부인은 상주 방씨(尙州方氏) 방인(方寅)의 딸로, 이순신의 부인인 방씨(方氏)의 사촌 언니이다. 황세득...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문인·학자. 황종해(黃宗海)[1579~1642]는 천안 출신으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이다. 목천에 서원이 없는 것을 한탄하여 후학들의 강학처를 제공하고자 도동 서원을 세웠다. 목천 제1의 유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대진(大進)이다. 할아버지는 황윤림(黃潤琳)이고, 아버지는 황덕휴(黃德休), 어머니는 참봉(參奉)...
-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석성. 흑성산성(黑城山城)은 조선 시대의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쌓는 방식] 산성으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이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성의 둘레가 739보(步)이며, 성 안에 우물이 1개소 있는데 동절기와 하절기에 간혹 마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축(石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