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에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발생한 충청남도 평의회원 부정 선거 사건. 1930년 3월에는 천안에서 충청남도 평의회원(忠淸南道 評議會員) 선거가 있었다. 3월 21일에 개표한 결과, 입후보자 7명 중에 이중화(李重和)가 최고 득표자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개표장에서 투표 과정에 부정이 있었음이 발각되었다. 부정의 내용은 천안군 북면의 투표 과정에서 면장 박진양(朴晋陽)이...
-
고려 시대 거란족의 침입으로 왕이 천안부를 거쳐 남쪽으로 피난한 사건. 거란족은 몽고족의 일파로 요하(遼河) 상류 유역을 중심으로 916년에 흥기(興起)하고, 980년에 먼저 정안국(定安國)을 정복했다. 거란은 중국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고려와는 친선 관계를 맺어 후환을 없애려 하였다. 이에 거란은 942년(태조 25)에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바치면서 교섭을 벌여왔다...
-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포함하여 진행된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공사. 조선 최초의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의 경인선(京仁線) 33.2㎞이다. 이는 영국 보다 70여 년, 일본 보다는 27년 늦은 시기이다. 경부 철도 부설 공사는 1901년에 공사를 착수하여 1904년에 완공되었다. 경부선은 천안을 통과하기 때문...
-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천안 공립 보통학교에서 발생한 교과서 압수 사건. 1926년 7월 8일 천안 공립 보통학교는 수업료를 납부하지 못한 학생들의 교과서를 압수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 때문에 학부형 대회가 열렸으나 감독관청은 미온적인 태도로 대처하였다. 천안 공립 보통학교가 수업료를 못낸 학생들의 교과서를 압수하고 귀가 조치를 내렸다...
-
고려 후기에 천안을 비롯한 충청도 지역에서 공주 명학소민들이 신분제 타파를 목적으로 일으킨 봉기. 망이·망소이 난은 무신집권기인 1176년(명종 6)에 충청남도 공주 명학소(鳴鶴所)에서 망이(亡伊)·망소이(亡所伊) 등 농민과 천민들이 신분제의 타파를 목적으로 일으킨 봉기이다. ‘공주 명학소의 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난의 여파로 1176년 3월에는 충...
-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했던 천안군 목천읍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시위운동.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었다. 천안 지역에서도 경성[서울]과 평양 등에서 3·1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3월 14일 목천읍에서 천안 지역 최초의 만세 운동이 발생하였고, 이 목천 기미 독립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천안 지역 곳곳에서 만세 운동이 전개되...
-
개항기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하는 목천의 세성산에서 재차 봉기한 동학 농민군과 관군이 벌인 전투. 1894년 11월 18일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두 번째로 봉기한 동학 농민군이 진을 치고 있던 목천의 세성산에서 동학 농민군과 관군이 전투를 벌여 관군이 농민군을 진압하였다. 목천 세성산 전투 이전의 천안 지역 동향을 살펴보면, 제1차 동학 농민군 봉기가...
-
고려 시대 1277년(충렬왕 3)에 몽고가 직산에서 금을 채굴하게 한 사건. 몽고와 강화한 이후 고려의 자주성은 많은 손상을 입었다. 원은 고려 조정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나오게 하고 고려의 왕을 원의 공주와 혼인시켜 부마국으로 삼았다. 고려 왕실의 호칭과 격은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바뀌었으며, 아울러 관제도 개편되고 격도 낮아졌다. 원은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을...
-
1231년(고종 18)에 몽고가 사신 저고여(著古與) 살해 사건을 구실로 침입한 후 6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한 사건. 1225년에 고려에 와서 무례한 행동을 하던 몽고 사신 저고여 일행이 귀국 도중 압록강 가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몽고는 이 사건을 구실로 삼아 1231년(고종 18) 살례탑 부대를 보내 고려를 침략했으나, 귀주성(龜州城)에서 박서(朴犀) 부대의...
-
1866년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발생한 천주교도 박해 사건. 병인박해는 대원군에 의해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지속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다. 1866년 2월 23일 서울의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면서 시작된 병인양요는 충청도 지역에서도 공주·청주·홍주·해미 지역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1866년 10월에 접어들면서 천안 지역...
-
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 천안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중 대표적인 것은 1919년 4월 1일에 천안군 갈전면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이다. 이화 학당의 여학생인 유관순(柳寬順)[1902~1920]과 그 집안 인물 등이 주도한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는 군중 약 3,000여 명이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쳤다. 일...
-
1894년 청일 전쟁 중에 천안 지역에서 발생한 청나라와 일본 간의 전투. 청일 전쟁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중국 중심 질서에 마침표를 찍고 신흥 강국인 일본이 새롭게 지역의 패권을 움켜쥐는 계기가 된 전쟁이었다. 또한 당시 아시아에서 영국과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들 간에 영토 분할 경쟁이 촉발된 계기가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청나라와 일본은 톈진 조약을 맺어 양국이 조선...
-
조선 후기 정유재란 중 천안 지역의 직산 소사벌에서 벌어진 명군과 일본군과의 전투. 정유재란이 시작되자 명은 조선의 급보를 받고 양호(陽鎬)를 경리 조선 군무(經理朝鮮軍務), 마귀(麻貴)를 제독(提督)으로 삼아 조선에 원병을 파견하였다. 이때 북상하던 일본군은 전주를 점령하고 계속 공주(公州)·전의(全義)·진천(鎭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일본 흑전장정 부대가 직산(稷山)에 이르렀...
-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충청남도 천안군의 아우내 장터에서 발생한 만세 시위운동. 1919년 3월 1일 경성[서울]과 평양 등 전국 여섯 개 도시에서 동시에 독립 만세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성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천안 출신의 유관순(柳寬順)은 3·1 운동 직후 총독부가 휴교령을 내리자 3월 13일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인 유중권(柳重權), 숙부인 유중무(柳重武) 등에게 경성...
-
고려 시대에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하던 일본 해적 집단의 침입. 왜구는 13~16세기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던 일본인 해적의 총칭이다. 우리나라에서 왜구의 활동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가 가장 심하였고, 그 중에서도 고려 말 약 40년간은 특히 그 피해가 커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었다. 왜구는 1350년(충정왕 2)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출몰하기...
-
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괄이 내란을 일으키자 인조의 피난 행렬이 천안을 지난 사건. 1623년(인조 1) 서인 세력은 인조반정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33인을 등위로 나누어 책록하였다. 그중 2등에 녹훈된 이괄(李适)[1587~1624]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도모하였다. 이에 1624년 인조는 공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어...
-
조선 후기 임진왜란 중인 1596년에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 등이 역모를 일으키자 충청·전라 지역민들이 크게 호응하였으나 진압된 사건. 이몽학(李夢鶴)[?~1596]은 왕실의 서얼 출신으로 임진왜란 중 민심이 이반된 틈을 이용해 모속관(募粟官)[식량을 모으는 임무를 맡은 관리] 한현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고 충청도 홍산(鴻山) 무량사에서 반란군을 규합하였다. 1596년 7...
-
조선 후기 영조 즉위 직후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 일부가 연합하고 이인좌가 중심이 되어 반란을 일으킨 사건.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죽고 영조가 즉위하자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 일부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인좌(李麟佐)[?~1728]가 대원수가 되어 반란을 지휘하였고, 반란군은 충청도 청주를 점령하면서 북진하기 시작하였다. 이...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1591년 일본 전국을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 침공을 계획하고 1592년 수륙 양군을 편성하여 부산포를 통해 조선을 침략하였다. 부산과 김해를 통해 총 20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 조선 땅에 이르렀다. 조선은 주요 군관을 임명하여 대비토록 하였으나 충주 전...
-
일제 강점기 때 천안 지역에 있던 입장 보통학교에서 발생한 형평 운동. 형평사(衡平社)는 1923년부터 백정(白丁)들을 주축으로 하여 천민들의 계급 해방을 위하여 결성된 운동 조직이다. 백정에 대한 평민의 차별 대우 때문에 분쟁이 계속 발생하였는데, 그때마다 형평사는 사원들의 단결된 힘과 조직으로 맞서서 투쟁하였다. 천안 지역에서는 사립 입장 보통학교에서 발생한 부당한...
-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했던 천안군 입장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시위운동. 일제의 식민 통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 통치였다. 이에 저항하는 민족 운동은 지속적으로 각 지역에서 발생하였고, 1919년에는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천안 지역에서도 경성[서울]과 평양 등에서 3·1 운...
-
1949년 7월 23일에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실시된 제헌 의원 보궐 선거. 해방 이후 한동안은 좌우익 간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시기였다. 제헌 국회 의원 선거는 신탁 통치 찬반을 두고 좌우익이 첨예하게 맞서는 극심한 이념 대립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치러졌기에, 집권 세력에 의하여 억울하게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는 사례가 많았다.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 의원...
-
1946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일어난 좌익 소탕 사건. 천안 2·9 의거는 해방 이후 신탁 통치(信託統治) 찬반의 갈림길에서 혼란에 빠져 있던 당시 천안 지역에서 좌익 세력을 소탕한 사건이다. 1946년 2월 8일 흑성산에 원인 모를 산불이 발생하여 전 의용 소방대원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였고, 당시 제2 부장이었던 유필남을 중심으로 좌익 공산주의 주동자였던...
-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국채를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천안 전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의 승리와 을사늑약을 통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차관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통감부를 설치해 한국의 묵은 빚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1905년 6월, 200만 원의 빚을 일본에서 멋대로 빌려오기 시작해서 1906년에는 빚이 1300만 원이 되...
-
1910년에 천안 지역에서 일어난 충청남도 최초의 항일 시위. 통감부(統監府)는 한반도의 점령 경비를 충당하려고 각종 세제를 마련하여 수탈하였다. 이에 전국에서 세금 거부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천안에서 최초로 1910년 3월 12일 1,000여 명이 반대 시위를 전개하고 일본인 수세관에 불을 지르고 세금 장부를 불태웠다. 대한 제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호서 은행 지점에서 인출한 자금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건. 신현상(申鉉商)과 최석영(崔錫榮)은 1930년 2월에 양곡 거래 조건으로 호서 은행 천안 지점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인출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자금으로 쓰다가 1930년 4월 3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무정부주의 운동에서는 일반적으로 어...
-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했던 천안군 천안면에서 발생한 만세 시위운동. 일제의 식민 통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 통치였다. 이에 저항하는 민족 운동은 지속적으로 각 지역에서 발생하였고, 1919년에는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천안 지역에서도 경성[서울]과 평양 등에서 3·1 운동이...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발생한 천안면협의원 부정 선거 사건. 1923년 천안면에서 면협의원 선거가 진행되었는데, 투표용지의 선거인명이 잘못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 처리를 놓고 일본인과 조선인 간에 갈등과 차별이 발생하였다. 천안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1923년 4월 과반 지정면(過般指定面)으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천안면협의원 선거...
-
1995년에 충청남도 천안시와 천안군의 행정 구역을 통합한 사건.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정하면서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6년(광무 10) 칙령 제49호로 천안 관내였던 신종면을 예산군으로, 모산·돈의·덕흥의 3개 면을 아산군으로, 우평을 면천군으로 넘겨 11개 면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에는 목천군·직...
-
1950년 7월 8일 천안 지역에서 벌어진 시가지 전투. 1950년 7월 7일 로버트 R. 마틴(Robert R. Martin) 대령이 신임 연대장으로 부임하여 천안 지역을 방어하였다. 마틴 대령은 제24 보병 사단장 윌리엄 F. 딘(William F. Dean) 소장과는 제2차 세계 대전 때부터 친했던 사이로, 딘 소장의 긴급 호출을 받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전장에 참가하게...
-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했던 천안군 풍세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시위운동. 일제의 식민 통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 통치였다. 이에 저항하는 민족 운동은 지속적으로 각 지역에서 발생하였고, 1919년에는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천안 지역에서도 경성[서울]과 평양 등에서 3·1 운...
-
고려 충렬왕 때에 원(元)나라의 반란군인 합단(哈丹)의 무리가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가 속했던 고려를 침입한 사건. 1287년(충렬왕 13) 원(元)의 세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내안(乃顔)의 잔당인 합단(哈丹)이 1290년(충렬왕 16) 1월 무리를 이끌고 고려의 동북면으로 침입하였다. 장군 오인영(吳仁永) 등이 원나라에서 돌아와 “내안의 잔당 합단적(哈丹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