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에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발생한 충청남도 평의회원 부정 선거 사건. 1930년 3월에는 천안에서 충청남도 평의회원(忠淸南道 評議會員) 선거가 있었다. 3월 21일에 개표한 결과, 입후보자 7명 중에 이중화(李重和)가 최고 득표자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개표장에서 투표 과정에 부정이 있었음이 발각되었다. 부정의 내용은 천안군 북면의 투표 과정에서 면장 박진양(朴晋陽)이...
-
개항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문신. 강노(姜㳣)[1809~1887)는 흥선 대원군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기중(期中), 호는 표운(豹雲)·정은(貞隱),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현감을 지낸 강이구(姜彛九)의 아들이다. 1837년(헌종 3) 진사시를 거쳐 1848년(헌종 14)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정자(正字)...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석주(姜奭周)[1896~1950]의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군 삼경면 209번지로 되어 있으나 그의 가계나 학력 등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강석주는 1913년 광복단(光復團)에 가담하고, 1917년 대한 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과 친일 부호 처단 활동을 하였다. 대한 광복회는 1915...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인수(姜寅秀)[1869~1932]는 1905년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였고, 1920년 청산리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1929년 한족 연합회(韓族聯合會)를 결성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원통하고 분하여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고 주권 회복을 도모하였다. 1907년에는 헤이그 밀사 파견에 연루되어 노...
-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의 광산 일대에서 사금을 일고 버린 더미에서 금을 채취하던 노동자. 천안 지역은 고려 말부터 금의 산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직산 일대는 차령산맥의 줄기를 따라 상당한 양의 금이 매장되어 있었다. 또한 천안 지역에는 석금뿐만 아니라 사금 광산이 다수 존재하여 천안 일대에는 크고 작은 광산이 개발되었다. 직산군 금광 합동 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
-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천안에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까지 연결되었던 철도와 천안에서 장항까지 연결되었던 철도. 1929년 일본인 아사노가 양질의 미곡 단지인 장호원과 그 주변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경남 철도 주식회사(朝鮮京南鐵道株式會社)를 설립하여 천안에서 장항까지, 그리고 천안에서 이천시 장호원읍을 연결하는 사설 철도를 개통하였다. 현재는 사설 철도가 존재하지...
-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포함하여 진행된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공사. 조선 최초의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의 경인선(京仁線) 33.2㎞이다. 이는 영국 보다 70여 년, 일본 보다는 27년 늦은 시기이다. 경부 철도 부설 공사는 1901년에 공사를 착수하여 1904년에 완공되었다. 경부선은 천안을 통과하기 때문...
-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에 있었던 기독교계 여학교. 천안의 구 직산현은 금광 지대로 유명하였다. 일제는 한국을 강점하는 대가로 서구 열강들에게 각종 이권을 부여하였고, 미국은 평안도 운산 금광과 입장 금광 채굴권을 얻어내었다. 따라서 입장면 양대리에는 미국인들이 광산을 채굴하였고, 광산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광산촌이 형성되었다. 이 광산촌에 미국인 선교...
-
충청남도 천안시 삼룡동 천안 삼거리 공원에 세워진 현대의 기념비. 광복회 기념비(光復會 記念碑)는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광복회 회원 7명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광복회 회원 7명은 유창순(庾昌淳), 장두환(張斗煥), 성달영(成達永), 김정호(金鼎鎬), 조종철(趙鍾哲), 유중협(柳重協), 강석주(姜奭周)이다. 충청남도 천안 출신으로 광복회에 가입하...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광산. 천안 지역은 고려 말부터 금의 산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직산 일대는 차령산맥의 줄기를 따라 상당한 양의 금이 매장되어 있었다. 직산 금광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고려 말 1277년(충렬왕 3)이었다. 원(元)나라는 고려를 산금국(産金國)이라 하여 금을 수탈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채굴해 갔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명...
-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천안 공립 보통학교에서 발생한 교과서 압수 사건. 1926년 7월 8일 천안 공립 보통학교는 수업료를 납부하지 못한 학생들의 교과서를 압수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 때문에 학부형 대회가 열렸으나 감독관청은 미온적인 태도로 대처하였다. 천안 공립 보통학교가 수업료를 못낸 학생들의 교과서를 압수하고 귀가 조치를 내렸다...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의병. 권찬규[?~1908]는 항일 의병으로, 연해주 의병의 국내 진공 작전에 참여하였다. 권찬규는 1903년 미국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갔다가 귀국하였다. 일제에 의해 집이 불타고 부모 형제가 모두 참혹한 죽음을 당하자, 불구대천의 원수인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가 항일 의병에 투신하였다. 1908...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건열(金健烈)[1909~?]은 1926년 경신 고보 재학 중에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교내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체포령이 내려지자 일본으로 피신하여 동경에서 대학에 다니던 중 체포되어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김건열은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동녕(李東寧)의 생가에서 성장하였다. 그 집은 원래...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규환(金奎煥)[1915~1985]은 1916년 3월 11일 충청남도 천원군 광덕면 신흥리 371번지에서 태어났다. 1932년 6월 예산 농업학교(禮山農業學校) 비밀 결사인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반제 투쟁을 전개하였다. 김규환은 1932년 6월 12일 충남 예산 농업학교 재학생과 일부 졸업생을 규합해 비밀 결...
-
개항기 세성산 전투를 이끈 천안 출신의 동학 지도자. 김복용(金福用)[?~?]은 병천 출신의 동학 지도자이다. 김공량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이희인(李熙人)과 함께 목천 세성산 전투를 지휘하였다. 1894년 남접의 2차 봉기가 일어나자 김복용(金福用)은 이희인과 함께 병사를 일으켜 목천현·천안군·전의현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양곡을 거두어, 작성산과 세...
-
일제 강점기와 현대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 김봉서(金奉瑞)[?~?]는 직산 사금광에서 번 돈으로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현재 부대동 1호 국도변에 시혜 기념비(施惠記念碑)가 서 있다. 본관은 순천(順天). 한화 그룹 창업자인 김종희(金鐘喜)의 종숙(從叔)이다. 천안의 직산은 옛날부터 사금 산지로 유명했는데, 직산 금광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종교인. 김은경(金殷卿)[?~?]은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 목천본 간행에 일익을 담당한 인물이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낸 김연규(金演奎)이며, 어머니는 수사를 지낸 이인수(李寅秀)의 손녀 덕수 이씨(德水 李氏)이다. 동학교의 경전인 『동경대전』은 교조인 최제우(崔濟愚)의 유문을 모아서...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정호(金鼎鎬)[?~1955]는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출신으로, 군자금 모금과 광복회 활동에 힘쓰다가 체포되어 7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김정호의 다른 이름은 김승호(金昇鎬)이다. 양성읍[현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에서 청년들을 모아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군청과 경찰서를 불사르고 일본인을 희생시켰다. 그 후 상해 임시 정...
-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기업인·정치인. 김종철(金鍾哲)[1920~1986]은 동생 김종희(金鍾喜)와 함께 한화 그룹을 설립하여 회장직을 맡았으며, 제4대·제7대·제8대·제9대·제10대·제12대 국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1981년 한국 국민당(韓國國民黨)을 창당하여 총재에 취임하였으며, 1981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자로 출마하였다. 본관은 순천(順天),...
-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현대 기업인. 김종희(金鍾喜)[1922~1981]는 천안 직산 출신으로, 한화 그룹 창업자이다.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현암(玄岩)이다. 아버지 김재민(金在民)과 어머니 오명철(吳明哲) 사이의 4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직산 공립 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에 서울에 있던 경기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어느 날...
-
1913년 경상북도 풍기(豊基)에서 조직되어 천안 출신의 인물이 가담한 독립 운동 단체. 대한 광복단은 독립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 광복단은 1910년대 국내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항일 비밀 결사 조직 중의 하나로 1913년 경상북도 풍기[현재 영주시]에서 채기중(蔡基中), 유창순, 유장렬(柳璋烈), 한훈(韓焄), 강병수(姜炳洙), 김병렬(金炳...
-
한말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지역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거나 혹은 천안에서 독립을 위해 활동한 인물.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2년 현재 천안 지역 출신으로 혹은 천안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80명이 서훈을 받았다. 훈격 별로 보면 대통령장 1명, 독립장 11명, 애국장 23명...
-
개항기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하는 목천의 세성산에서 재차 봉기한 동학 농민군과 관군이 벌인 전투. 1894년 11월 18일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두 번째로 봉기한 동학 농민군이 진을 치고 있던 목천의 세성산에서 동학 농민군과 관군이 전투를 벌여 관군이 농민군을 진압하였다. 목천 세성산 전투 이전의 천안 지역 동향을 살펴보면, 제1차 동학 농민군 봉기가...
-
우리 민족은 1910년 8월 29일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로 식민 지배를 자행하였다. 이에 거족적인 저항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서는 다양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1919년 유관순 열사로 상징되는 아우내 장터의 만세 시위는 가장 대표적인 3·1 운동 사...
-
개항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현경(玄卿), 호는 한산(翰山)이다. 민승세(閔承世)의 아들로 민명세(閔命世)에게 입양되었다. 천안 직산에 경위학교를 설립한 민철훈(閔哲勳)이 아들이다. 민종묵(閔種黙)[1835~1916]은 1874년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사은정사(謝恩正使) 한돈원(韓敦源)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되어 1876...
-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박홍석(朴弘錫)[1867~1909]은 길찬범(吉贊範)·안흥관(安興寬) 의진(義陣)에 참여하여 충청남도 직산군(稷山郡)과 서울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길찬범 의진 소속으로 1907년 음력 8월 직산에서 일본 경찰로부터 단총 1정을 빼앗았고, 같은해 12월 5일에 동료 1백여 명과 함께 서울 뚝섬의 파출소를 습격하여...
-
1866년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발생한 천주교도 박해 사건. 병인박해는 대원군에 의해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지속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다. 1866년 2월 23일 서울의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면서 시작된 병인양요는 충청도 지역에서도 공주·청주·홍주·해미 지역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1866년 10월에 접어들면서 천안 지역...
-
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 천안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중 대표적인 것은 1919년 4월 1일에 천안군 갈전면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이다. 이화 학당의 여학생인 유관순(柳寬順)[1902~1920]과 그 집안 인물 등이 주도한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는 군중 약 3,000여 명이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쳤다. 일...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단파(徐檀坡)[1891~1937]는 충청남도 천원군 수신면 해정리 413을 본적지로 한다. 1931년에 제87사단 군의처장으로 복무 중 1937년 12월 남경(南京) 대회전에서 전사하였다. 서상덕(徐相悳)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14년 북간도(北間島)로부터 국내에 들어와 내외 연락 등의 활동을 수행하다가, 데라...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성달영(成達永)[1873~1933]은 천안 성정동 출신으로, 1917년 대한 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였다. 천안·아산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친일 면장 등을 처단하였고, 군자금 모금과 독립군 육성에 힘쓰다가 체포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성달영은 민종식(閔宗植) 의진에 종군하여 홍주성 전투에 참가하였다. 1917...
-
1894년 청일 전쟁 중에 천안 지역에서 발생한 청나라와 일본 간의 전투. 청일 전쟁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중국 중심 질서에 마침표를 찍고 신흥 강국인 일본이 새롭게 지역의 패권을 움켜쥐는 계기가 된 전쟁이었다. 또한 당시 아시아에서 영국과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들 간에 영토 분할 경쟁이 촉발된 계기가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청나라와 일본은 톈진 조약을 맺어 양국이 조선...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조직된 신간회 지회.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서울에서 창립한 민족 협동 전선으로 국내 민족 유일당 운동의 구체적인 좌우 합작 모임이다. 1920~1930년대 민족 해방 운동은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두 흐름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런데 두 흐름은 민족 운동의 이념, 방법, 주도 세력 등...
-
개항기 천안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언여(言汝), 호는 양원(陽園)·노봉(蘆峰),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신희조(申羲朝)의 아들이다. 신기선(申箕善)[1851~1909]은 1877년 대과 별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 부정자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878년 사간원 정언, 1879년 홍문관 부교리, 1881년 세자시강원 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영칠(申英七)[1868~?]의 본적은 충청남도 목천군 북면 오송정으로 되어 있고,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도 같다. 박관실(朴官實) 의진에 소속되어 1907년 8월 충청북도 진천·충주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출신 가문이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07년 고종 황제의 강제퇴위와 그해 8월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인 의...
-
일제 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한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성근(安成根)[1920~?]은 중국 안휘성(安徽城) 부양(阜陽)에서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본명은 안상운(安相云)이다. 안성근은 중국 천진(天津)에서 광복군 대원을 만나 한국광복군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 천진 지역에는 광복군 제3지대에서 병력 모집을 위해 파견된 윤용호(尹龍虎) 등이...
-
일제 강점기 천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창호(安昌鎬)[1884~1969]는 서울 사람이나 독립운동 당시 주소지가 천안읍내 예수교회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천안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임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옥고를 치르고 하와이로 건너가 목사로 재직하면서 임시 정부 독립운동자금 모집 운동을 전개하였다. 안창호는 1919년 3·1 운동 당시 천안군 천안면...
-
천안군·목천현·직산현의 건치 연혁과 천안의 역사. 천안은 충청남도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충청북도의 청원군, 진천군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아산시와 남쪽으로는 공주시, 세종특별자치시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시, 안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천안은 국토의 중핵 도시로서 수도권의 배후이자 충청남도 서부 지역의 관문이며, 국도·철...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관순(柳寬順)[1902~1920]은 1919년 4월 1일의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본관은 고흥(高興).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悌) 사이의 둘째 딸로 출생하였다. 독립운동가 유우석(柳愚錫)의 동생이다. 1919년 3월 1일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
-
충청남도 천안시 아우내 3·1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과 그 가족의 독립운동. 병천 아우내 장터 3·1 만세 시위를 주도한 유관순(柳寬順)[1902~1920]은 천안 동면 지령리에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悌) 사이의 둘째 딸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유관순은 이화 여자 고등 보통학교 1학년이었고, 한...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도기(柳道基)[1870~1939]는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의 독립 만세 시위를 후원하였고, 거사 당일에는 태극기를 들고 시위 군중의 사기를 높이며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다.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대원(大元)이다. 유용계(柳龍溪)의 고손자이며, 유관순(柳寬順)의 종조할아버지이다. 충청남...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민식(兪民植)[1898~1969]은 본적지가 충청남도 천원군 성거면 모전리 213번지이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의정원 충청도 대표로 선임되었으며, 1925년 3월 신민부에 참여해 중앙 집행 위원회의 경리부 위원장에 선임되어 무력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유정근(兪政根)이...
-
한말과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유생(儒生)은 유교를 신봉하고 이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에서는 각 지역의 유생에 대하여 조사를 하였다. 이유는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 활동에 가담한 유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말과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은 ‘선비향 중 목천현이 제일’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유학자가 거주하고 있었다....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예도(柳禮道)[1896~1989]는 1919년 3월 1일 사촌동생 유관순(柳寬順)과 함께 서울의 파고다 공원에서 열린 독립 선언문 선포식에 참가한 뒤 독립 만세 시위에 가담하였다. 3월 13일에는 유관순과 함께 귀향하여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4월 1일 3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대...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우석(柳愚錫)[1899~1968]은 1919년 4월 1일의 공주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본관은 고흥(高興). 병천 아우내 장터의 만세 시위를 준비하고 주도한 유중권(柳重權)의 장남이자 유관순(柳寬順)의 오빠이다. 천안 용두리 지령리 마을은 1900년대 초 주민들이 감리교로 개종하여 마을 자녀들이 일찍부터 신교육...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제경(柳濟敬)[1917~?]은 본적이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 418로 되어 있다. 1941년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 국민 학교 6학년 담임교사로 있으면서, 온 국민에게 자주 독립의 뜻을 전하도록 졸업 기념 사진첩에 문구를 자필해 주었다가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본관은 고흥(高興). 유중무(柳重武)의 손자이며...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중권(柳重權)[1863~1919]은 1919년 4월 1일 갈전면(葛田面) 아우내 장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일본 헌병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교육에도 관심이 커서 사재를 털어 흥호학교(興湖學校)를 세웠고, 교회를 세워 민중을 교화하였다.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희이다. 부인은 이소제(李少悌)이고, 유우석(柳愚...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중무(柳重武)[1875~1956]는 1919년 4월 1일 갈전면(葛田面) 아우내 장터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본관은 고흥(高興). 유관순(柳寬順)의 작은아버지이다. 자는 성관(盛寬)이고, 유중용(柳重容)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중무는 일찍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교사로 있으면서 천안군...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중오(柳重五)[1883~1919]는 1919년 4월 1일 병천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당시 천원군 병천면(竝川面) 용두리(龍頭里)에 거주하였으며, 병천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김구응(金球應)·조인원(趙仁元) 등의 지시에 따라 아우내 장터에서 수천의 군중과...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중협(柳重協)[1891~?]은 본적이 충청남도 천안군 업성면 53번지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외 가계나 학력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1913년 풍기 광복단(豊基光復團)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1915년 대한 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천안 지역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13년 채기중(蔡基中)·유창순(庾昌淳)...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창순(庾昌淳)[1881~1944]은 충청남도 천원군을 본적지로 하나 그 외 가계나 학력 등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다. 1913년 경상북도 풍기(豊基)에서 풍기 광복단(豊基光復團)을 결성하였고, 1915년 대한 광복회(大韓光復會) 결성에 참가하였다. 1917년 11월 전 경상도 관찰사(前 慶尙道觀察使)인 친일 부호 장승원(...
-
개항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관료·정치인·사회 운동가. 윤치호(尹致昊)[1865~1945]는 한말 개화파로 1898년 독립 협회 회장, 1903년 천안 군수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1920년 이후에는 친일 활동을 펼쳤다. 본관은 해평(海平), 호는 좌옹(佐翁)이다. 할아버지는 윤취동(尹取東), 아버지는 무관 출신으로 충청감영 중군(忠淸監營中軍)을 지낸 윤웅렬(尹雄烈)이다....
-
근대 개항기 천안 출신의 관료. 이경직(李耕稙)[1841~1895]은 천안군 수신면 출신으로 전라도 관찰사, 궁내부대신을 역임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 때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으로 있으면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지휘로 궁궐에 뛰어든 일본 낭인들에게 항거하다 명성 황후(明成皇后)와 함께 살해되었으며, 후에 의정부 의정(議政府議政)이 추증되었다. 본관은 한...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봉소(鳳所), 호는 석오(石吾, 石五, 石梧)·암산(巖山)이다. 1869년 10월 6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영해 군수를 지낸 아버지 이병옥(李炳鋈)과 어머니 광주 안씨 사이에서 큰 아들로 태어났다. 1. 구한말 애국계몽운동 이동녕(李東寧)[1869~1940]은 고향에서 서당을 다...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李明)[1917~1950]은 중국 중앙 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낙양 분교(洛陽分校)를 졸업, 서안에서 한국 청년 전지 공작대에 입대하였다. 1940년 9월에 광복군이 창설되자 광복군에 편입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천안 목천 출신으로, 1933년 11월 이청천(李靑天)과 함께 만주 길림 방면에서 이동해 중국...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문현(李文鉉)[1883~?]의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면 봉명리로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도 같다. 이문현은 1919년 3월 29일 천안읍 장터에서 군중들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최오득(崔五得)·허병(許柄)·인시봉(印時鳳) 등과 함께 천안 읍내에서 약 3천 명의 군중을 선동하여 태극...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이범석(李範奭)[1900~1972]은 중국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에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대첩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1941년 임시 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자 참모장으로 참가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선 민족 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을 창설하여 청년 교육에도 힘썼다. 1948년에 대한민국 초대...
-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이범직(李範稷)[1868~1896]은 1895년 을미사변 후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남과 호서 지방에서 활약하다가 유인석(柳麟錫) 의진의 소모장(召募將)이 되어 천안 군수 김병숙(金炳肅)을 처단하였으며, 1896년 4월 제천 전투에서 패배 후 일본군에게 잡혀 순절할 때까지 유인석 의진에서 활동하...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붕해(李鵬海)[1899~1950]는 본적이 충청남도 천안군 사직동 10번지로, 신흥 무관 학교를 7기로 졸업한 뒤 1922년 고려혁명군 조직에 참가하였다. 1925년에 신민부(新民府), 1929년 7월에 재만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 8월에는 재만 한족 총연합회(在...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으로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소제(李少悌)[1875~1919]는 1875년 11월 7일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에서 출생하였다.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로, 1919년에 딸 유관순과 더불어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적극 계몽하였다.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일본 군경들의 기총...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의복(李義復)[1906~?]의 본적은 충청남도 천원군 목천면 서리 90번지로 1906년 9월 12일 출생하였다. 1921년 신흥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정의부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등 만주 지역에서 아버지 이장녕(李章寧)을 도와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호산(胡山)이고 독립운동가 이장녕(李章寧)의...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장녕(李章寧)[1881~1932]은 대한제국의 육군 부위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신흥 무관학교의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22년 6월에 대한 통의부 참모, 1924년 3월에는 대한 독립군정서 참모로 활약하였다. 1930년 7월에는 한국 독립당 감찰 위원장에 임명되었고, 한중 연합군을 조직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계속하였다...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의병. 이정구(李正九)[1876~?]는 충청남도 목천군 갈전면이 본적이나 그 외 가계나 학력 등은 알 수 없다. 1909년 청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한봉서(韓鳳瑞) 의병 부대에 투신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재천(李在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07년 7월에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고, 「정미...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건(李鍾乾)[1906~1960]의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군 수신면 속창리 215로 되어있으나 그의 가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종건은 대한 교민단 의경대원, 임시 정부 의정원 의원, 한국 독립당 남경 지부 간부 등을 역임하며, 북경, 상해, 남경, 무창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중국에서 활동할 때 이동초(李東初)·이세장(李世章)이라...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의병·독립운동가. 이종칠(李種七)[1864~?]은 충청남도 목천군 갈전면 상석항리를 본적으로 하나 그 외 가계나 학력 등은 알 수 없다. 이종칠은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일본군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종칠은 1909년 음력 8월 충북 청주에서 한봉서(韓鳳瑞)...
-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중식(李重植)[1921~2008]은 천안 소재의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직공으로 근무하던 1942년 2월경 천안 읍내의 각 철공소에서 일하던 백경종(白慶鍾)·하준수(河俊洙)·이영규(李英奎)·김완일(金完日)·홍충섭(洪忠燮)·박원규(朴元奎)·엄억인(嚴億仁) 등을 규합하여 천안독립단(天安獨立團)[일명 불노흥단(不老興團)]을...
-
근대 개항기 천안 출신의 동학 지도자. 이희인(李熙人)[?~1894]은 김복용(金福用)과 함께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목천 세성산 전투를 지휘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세종의 열 번째 아들인 담양군(潭陽君)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서산 군수를 역임한 이수익, 아버지는 이봉래이다. 부사를 지낸 이학래가 큰아버지이고, 참봉 이희민이 형이다. 1893년 교조 신원 운동(敎祖...
-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식민 통치를 당한 1910~1945년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 의하여 국권을 빼앗긴 1910년대는 군사 강점과 식민지 무단 통치 체제가 실시되었다. 우선 일제는 한국에 대한 식민지 통치 기구로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고, 총독을 두어 식민지 통치를 담당하게 하였다. 조선 총독은 행정권뿐만 아니라 입법·사법 및 군대 통수...
-
한말 광산에 대한 권리는 서양 열강들이 관심을 갖는 이권 중의 하나였다. 특히 천안의 직산 금광은 최대 금광 중의 하나로 일제의 이권 침탈의 주된 대상이었다. 일제의 직산 금광 침탈 과정을 통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을 살펴볼 수 있다. 직산은 옛날부터 금의 산지로 이름이 나있었다. 직산 금광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고려 말 1277년(충렬왕 3)이었다. 원(元)나...
-
일제 강점기 때 천안 지역에 있던 입장 보통학교에서 발생한 형평 운동. 형평사(衡平社)는 1923년부터 백정(白丁)들을 주축으로 하여 천민들의 계급 해방을 위하여 결성된 운동 조직이다. 백정에 대한 평민의 차별 대우 때문에 분쟁이 계속 발생하였는데, 그때마다 형평사는 사원들의 단결된 힘과 조직으로 맞서서 투쟁하였다. 천안 지역에서는 사립 입장 보통학교에서 발생한 부당한...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두환(張斗煥)[1894~1963]은 1917년 대한 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에 진력하였다. 1918년 1월 24일 임봉주(林鳳柱)와 김경태(金敬泰)를 파견하여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道高面長) 박용하(朴容夏)를 살해하였으며, 그 후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하였다. 장두환은...
-
일제 강점기 천안에서 활동한 의병·독립운동가. 장원겸(張元謙)[1866~?]은 경기도 시흥 출신으로, 1907년 박홍석(朴弘錫) 등과 함께 길찬범 의진에 가담하여 직산과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음력 8월 14일경 길찬범(吉贊範) 의병진에 가담하여 일본 순사에게서 총기를 탈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장...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인석(鄭寅錫)[1872~1953]은 충청남도 천안군 북면 해송리 572가 본적지로 되어 있으나 가계와 학력 등 그 외 사실은 알 수 없다. 1920년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취임하여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920년 11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대표로 상해에 파견되었다. 정국진(鄭國鎭)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
-
근대 개항기 천안 출신의 문신. 일본 정부는 1910년 8월 22일에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고, 10월 1일 초대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가 부임하여 식민 통치를 시작하였다. 한일 병합이 이루어지자 일본 정부는 조선 황실과 귀족 및 고관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각종 은전을 베풀었다. 그리하여 왕족과 한일 병합에 공이 있는 자 등 76명에게 작위를 내렸다. 그중에서 8명은...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정치인. 본관은 한양. 호 유석(維石).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조인원(趙仁元)[또는 조택원(趙澤元)], 어머니는 남양 홍씨이다. 조병옥(趙炳玉)[1894~1960]은 1894년 5월 21일 충청남도 천안군[지금의 천안시] 동면 용두리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 신학문 수용과 미국 유학 조병옥의 집안은 예전...
-
개항기 천안 출신의 문신. 조병호(趙秉鎬)[1847~1910]는 1883년 안동 부사로 재임 시 민란을 진압하였으며, 이듬해 외무독판이 되어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박영효 등의 소환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예조 판서, 한성부 판윤, 의정대신 등을 지냈다.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덕경(德卿),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판을 지낸 조기진(趙基晉)의 아들이며, 한...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에 일본인이 세운 광업소. 조선 중앙 광업소는 통칭 직산 광산으로 불렸으며, 입장면 양대리에 있었다. 금 산출량이 많아, ‘노다지’라는 말을 만들어낸 평안남도의 운산 광산 다음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광업소였다. 대한제국과 일본인 민간인 사이에 ‘직산군 금광 합동 조약’이 체결된 이후 직산 지역의 금광을 채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종철(趙鍾哲)[1891~1957]은 독립운동 당시 천원군 권성면 삼룡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1917년 대한 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 광복회는 1915년 7월 채기중(蔡基中)·유장렬(柳璋烈)·한훈(韓焄)·유창순(庾昌淳)·강순필(姜順必) 등...
-
일제 강점기 천안 직산읍에서 조직된 청년 단체. 직산 청년회는 지(智)·덕(德)·체(體)의 육성을 취지로 1개월에 1회씩 강연회와 토론회를 통한 지식 계발과 풍속 개선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0년 5월 22일자 『동아 일보』의 기사를 보면, 천안군 직산 공립 보통학교에서 1920년 5월 15일 오후 8시에 천안군 민재기(閔載祺)의 주최로 강연회가 개최되었는데, ‘청년(...
-
개항기 일제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직산 지역 금광 채굴권을 탈취한 조약. 대한 제국은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여 직산 지역의 금광 채굴권을 일본인들의 광산 조합(鑛山組合)에 넘겨주었다. 1900년 8월 16일 대한 제국의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인 윤정구(尹定求)는 일본 민간인인 시부사와 에이지[澁澤榮一]·아사노 소이치로[淺野總一郞]의 광산 조합과 직산군 금광 채굴에 대...
-
1910년에 천안 지역에서 일어난 충청남도 최초의 항일 시위. 통감부(統監府)는 한반도의 점령 경비를 충당하려고 각종 세제를 마련하여 수탈하였다. 이에 전국에서 세금 거부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천안에서 최초로 1910년 3월 12일 1,000여 명이 반대 시위를 전개하고 일본인 수세관에 불을 지르고 세금 장부를 불태웠다. 대한 제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호서 은행 지점에서 인출한 자금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건. 신현상(申鉉商)과 최석영(崔錫榮)은 1930년 2월에 양곡 거래 조건으로 호서 은행 천안 지점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인출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자금으로 쓰다가 1930년 4월 3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무정부주의 운동에서는 일반적으로 어...
-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으로 만들어진 충청남도 천안군의 명칭. 1914년 전국의 행정 구역 재편 시 목천(木川), 직산(稷山), 천안(天安)을 합하여 천안군으로 개편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토지 조사 사업 및 지방 행정을 재정적으로 안정화하기 위하여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고, 경계를 명확하게 획정한다는 방침 하에 동리 이상의 면과 군을 통폐합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통폐합...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시에 설립된 교육 기관으로 현재 천안 제일 고등학교의 전신. 천안 농잠 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실업 보습 학교이다.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이 공포된 이후 보통 학교는 크게 증가하였지만 실업 학교와 중등학교의 설립은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일제가 조선인 학생들에게 초보적인 교육과 저급한 실업 교육에만 치중하였던 지방 교육의 현실과...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발생한 천안면협의원 부정 선거 사건. 1923년 천안면에서 면협의원 선거가 진행되었는데, 투표용지의 선거인명이 잘못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 처리를 놓고 일본인과 조선인 간에 갈등과 차별이 발생하였다. 천안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1923년 4월 과반 지정면(過般指定面)으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천안면협의원 선거...
-
충청남도 천안에 살던 일본인들이 조직한 단체. 일본은 1904년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를 완공하였다. 경부선은 천안을 통과하였는데, 의병들이 철도 공사 현장을 습격하여 공사를 방해했기 때문에 일본은 철도 수비대를 배치하여 공사 현장을 보호하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해 올 때 철도 수비대가 주둔하는 곳을 많이 선택하였다. 수비대가 천안에도 주둔...
-
한말 천안의 철도 공사 현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제가 조직한 수비대. 천안 지역의 철도 부설 공사 현장을 의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한말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이 조직되어 일제의 수탈 기관을 습격하였다. 천안 지역에서는 경부선 철도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의병들은 철도 공사 현장을 습격하여 철도 공사를 저지하려고 하였다. 이에 일본은 수비대를 조직하여 철도공사...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병규(崔秉奎)[1885~1963]는 본적이 충청남도 천안군 북면 연춘리 210으로 되어 있으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922년 10월 대한 독립군(大韓獨立軍)의 총단장으로 무장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24년 만주 봉천성 신빈현(新賓縣) 사전자(砂甸子)에서 정의부(正義府) 제2소대장으로 있으면...
-
현대 천안 출신의 정치인이자 기업인. 한희석(韓熙錫)[1909~1983]은 천안 병천면 매성리 출신이다. 일본 고등 문관 행정과 합격 후 조선 총독부 내무국 지방과에 근무하였다. 광복 후 이승만 정권하에서 내무부 지방국장과 차관을 역임하였다. 제3대·제4대 국회 의원을 지냈으며, 국회 부의장과 내무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한희석은 한문을 수학하던 중 일본인 우에...
-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광복 이후의 역사 1963년 천안군 천안읍이 인구 7만으로 도시 형태를 갖추게 되자 법령에 따라 천안시로 승격하였다. 천안읍(天安邑)과 환성면(歡成面)은 천안시가 되고, 기타 면은 천원군(天原郡)이 되었다. 1973년 수신면 복다회리와 동면 용두리를 병천면으로 편입하였고, 성환면을 읍으로 승격시켰다. 1983년 풍세면 구룡리를 천안시로 편입하였고,...
-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교육자. 황봉선(黃鳳善)[1908~1982]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순서(舜瑞), 호는 상산이며, 본적지는 충청남도 천원군 목천면 교천리 18번지이다. 1926년 여름에 조직된 수원 고등 농림학교의 항일 학생 비밀 결사인 건아단(健兒團)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퇴교를 당하고 1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