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050
한자 岐谷齋舍
영어공식명칭 Gigokjaesa
이칭/별칭 기곡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가람실길 27-120[신기리 42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소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849년 - 청송 기곡재사 현 위치로 이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740년 - 청송 기곡재사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49년 - 청송 기곡재사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11월 12일연표보기 - 청송 기곡재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송 기곡재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가람실길 27-120[신기리 427]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무익공 소로수장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5칸
소유자 진보이씨 문중
관리자 진보이씨 문중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사.

[개설]

청송 기곡재사(岐谷齋舍)진보이씨(眞寶李氏)의 시조인 이석(李碩)의 묘를 수호하는 재사이다. 퇴계 이황의 6대조인 이석은 고려 충렬왕 때 진보현리(眞寶縣吏)로 있다가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시조공묘갈명(始祖公墓碣銘)」에 의하면, 이석의 맏아들 이자수(李子脩)가 1362년(공민왕 11)에 일어난 홍건적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지면서 아버지인 이석 역시 봉익대부(奉翊大夫)로 밀직사(密直司)에 증직(贈職)되었다.

[위치]

신기1리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북쪽 감남골에 시조인 이석의 묘소가 있고, 묘소 아래에 청송 기곡재사가 있다.

[변천]

「기곡재암기(岐谷齋庵記)」에 따르면, 전쟁에 의한 화재로 시조의 묘소를 잃어버렸다가 묘지(墓誌)가 발견됨에 따라 1679년(숙종 5)에 묘역을 다시 고쳤다고 한다. 이후 자손이 고을에 흩어져 사는 관계로 재사와 주사의 설비를 마련하지 못하다가 1740년(영조 16)에 청송 기곡재사를 중건하였다. 1787년(정조 11)에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던 것을 1849년(헌종 15)에 현 위치로 이건하여 1851년(철종 2)에 준공을 완료하였다.

[형태]

청송 기곡재사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의 ‘ㅁ’ 자형 건물이다. 정면은 다락집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앞쪽 누(樓)와 마주 보고 있는 내측은 기단을 높게 조성한 후 전퇴를 두고 좌협칸과 퇴칸에 걸쳐 2칸 온돌방과 1칸 온돌방을 두었다. 건축 양식은 내측 온돌방 앞쪽만 원기둥을 세운 무익공 소로수장형(小櫨修粧形)이다.

2칸 온돌방은 제례(祭禮)에 참관하러 온 일반인들이 머무는 곳이고, 1칸 온돌방은 내실로 이용하는 곳이다. 우협칸과 퇴칸에 걸쳐 부엌을 두었고 좌익사와 연결되는 곳에 폐쇄형 마루방을 두고 3칸 온돌방이 연접되어 있다. 이 온돌방을 중방(中房)이라 부르며 장년층이 사용한다. 또 우익사의 2칸 온돌방은 제례를 주관하는 제관들이 사용함으로써 항렬과 나이에 따라 사용하는 방을 구분하였다. 양쪽 익사는 내정 쪽으로 퇴(退)를 내어 출입과 누(樓)에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하였다.

[현황]

청송 기곡재사는 2012년 11월 12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어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송 기곡재사는 제사 외에도 문중 집회, 강학, 숙소 등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조선 후기 재사의 기능과 특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경상북도 북부 지방 재사 건축의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