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4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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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炭村部曲 |
영어의미역 | Communities of Low Caste Laborers, Tanch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창훈 |
[정의]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었던 특별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부곡·향(鄕)·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행정구역은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부곡은 대체로 신라 말 고려 초에 후삼국 통합전쟁 중에 저항한 호족세력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편성하면서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후삼국 통합 후 고려는 이 지역들을 법제적으로 부곡제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 군현제의 하부기구로 예속시키고 군현제를 통해 간접 지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12세기 이후 고려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민(民)의 의식이 성장하여 신분해방을 천명하는 노비들의 저항이 일어나게 되었다. 부곡민이 이에 합세하는 일들이 벌어지자, 무신정권은 부곡민을 일반 군현으로 승격하였다.
또한 외침에 저항한 군공 포상 등의 형태로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기도 함으로써 사실상 고려의 신분질서와 체제는 해체의 길을 걸었고, 부곡제도 그러한 과정에서 점차 소멸되어갔다.
[관련기록]
탄촌부곡에 대한 기록은 단편적인 사실만 전하고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충주목 고적(古跡)조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모두 충주의 남쪽 20리 지점에 탄촌부곡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특히 『대동지지』에서는 다른 부곡들의 경우 그 위치를 기록할 때 처음과 끝을 함께 적고 있으나, 탄촌부곡은 단지 ‘남쪽으로 20리’라고만 기재하고 있어, 규모도 다른 부곡들에 비해 작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에는 모두 탄촌부곡과 같은 방향으로 45리 지점에 감물내미부곡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감물내미부곡은 현재의 괴산군 감물면으로 추정되므로, 충주시와의 중간 지점에서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충주시 대소원면에 현재까지 ‘탄동’이 지명으로 쓰이는 마을이 있어, 그 지역이 탄촌부곡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탄촌부곡의 설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충주목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이후 고려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민(民)의 의식이 성장하여 신분해방을 천명하는 노비들의 저항이 일어나게 되었다. 부곡민이 이에 합세하는 일들이 벌어지자, 무신정권은 부곡민을 일반 군현으로 승격하였다.
또한 외침에 저항한 군공 포상 등의 형태로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기도 함으로써 사실상 고려의 신분질서와 체제는 해체의 길을 걸었고, 부곡제도 그러한 과정에서 점차 소멸되어갔다. 하지만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남아 있지 않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적(古跡)에 그 흔적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늦어도 조선 전기 이전에 폐지되었거나 일반 군현으로 전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