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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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炯奎 |
영어공식명칭 | Gim Hyeonggyu |
이칭/별칭 | 성장(聖章)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성장(聖章). 장릉 사칠신(莊陵死七臣)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김문기(金文起)[?~1456]의 후손이다.
김형규는 타고난 자질이 효성스러워서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명을 어긴 적이 없었다. 홀로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출타할 때는 반드시 알린 다음에 갔고, 돌아와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 보는 데 반드시 시각을 어기지 않았다. 하루는 현창(玄昌) 땅에 간 적이 있었다. 깊은 밤 집으로 돌아오다가 숲이 우거지고 산길도 캄캄해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한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이 길을 인도해서 동네 어귀로 접어들자 그 거인이 홀연히 사라졌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김형규는 그 병세를 살피려 변(便)을 맛보며 어머니의 병이 낫기를 하늘에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병중에 있는 어머니가 때 아닌 홍시를 먹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제철이 아니어서 홍시를 구할 수 없던 김형규가 감나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자 난데없이 그 감나무 가지 끝에 새빨간 홍시 두어 개가 달려 있었다. 그 홍시를 가져다주니 어머니가 먹고 병이 나았다. 김형규는 어머니가 죽은 후에도 제삿날이 되면 삼 일 전부터 삼 일을 재계(齋戒)하였고, 손수 제물(祭物)을 차려서 제사를 정성들여 지냈다. 벼슬은 능참봉(陵參奉), 서판(敍判)을 지냈다.
김형규 정효각(金炯奎旌孝閣)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본리리 2256번지에 있다. 원래 김형규 정효각(碑閣)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간경리 5번 구마 국도 변에 있었으나, 1983년 소도읍(小都邑) 가꾸기 사업 때 국도 확장으로 인해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김형규 정효각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 규모의 겹치마 맞배지붕인데, 양측 박공면(朴工面)에는 풍판(風板)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