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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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三德洞 - |
이칭/별칭 | 대구 삼덕동 지석묘군,신천 좌안의 고인돌,신천 유역의 고인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8길 29[삼덕동2가 28-1]|동성로3길 30[삼덕동1가 28-2]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민선례 |
소재지 | 대구 삼덕동 고인돌 -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8길 29[삼덕동2가 28-1]|동성로3길 30[삼덕동1가 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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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분 |
양식 | 고인돌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개설]
대구 삼덕동 고인돌[지석묘]은 ‘신천 좌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1943년 간행된 『대구부사(大邱府史)』의 기록 중 도청관사(道廳官舍) 내에 있었다고 하는 청동기시대 고인돌로 추정되며, 도청관사는 현재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의 남쪽에 있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절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관음사의 동쪽에 접한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28-2번지에는 일본인이 관사로 사용한 주택을 광복 후 헐고 새로 지은 양옥이 있고, 마당에 고인돌 덮개돌[상석(上石)]으로 추정되는 큰 바위 2~3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위치]
대구광역시 중구의 삼덕119안전센터 맞은편 골목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좌측에 관음사가 있다. 중구 삼덕동2가 28-1번지, 삼덕동1가 28-2번지이다. 대구 삼덕동 고인돌은 관음사와 관음사의 동쪽에 접한 주택이 있는 곳에 있었다.
[형태]
대구 삼덕동 고인돌은 화강암 재질의 대형 바위였지만, 1990년대 초 이미 정원석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많은 석재를 깨고 쌓아 놓아 덮개돌과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현황]
대구 삼덕동 고인돌 주변은 광복 후 새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최근에 대구 삼덕동 고인돌의 남쪽에 인접한 삼덕동 149-72번지와 삼덕동 188-1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삼덕동 149-72번지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수혈 2기, 기둥구멍 12기가 조사되었고, 삼덕동 188-1번지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 3기, 집자리[주거지(住居址)] 5동, 구덩이[수혈(竪穴)] 3기, 돌무지[부석] 등이 조사되었다. 대구 삼덕동 고인돌 주변에서 청동기시대 돌널무덤과 집자리 등의 유구가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대구 삼덕동 고인돌 주변 일대에 고인돌과 관련된 유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