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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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陽縣監守拙堂李公墓誌銘 |
영어공식명칭 | An epitaph on the grave of Eui-Jam Lee, a local administrative officer of Hayang Hyu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15년 -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장복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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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00년 -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장복추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06년 -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간행 |
배경 지역 |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
성격 | 비지류|묘지명 |
작가 | 장복추 |
[정의]
개항기 장복추가 임진왜란 때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팔공산 일대에서 열린 공산회맹에 참여했던 이의잠을 기리기 위해 지은 묘지명.
[개설]
장복추(張福樞)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출신으로, 본관은 인동(仁洞)이다.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으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8대손이다. 장복추는 일정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영남 유학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계속 재야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주력하여 4백여 명 제자를 배출하면서 예학(禮學)과 경학(經學) 등에 많은 저술을 남겼다.
[구성]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은 서문(敍文)과 명(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이의잠의 세계(世系)와 인품(人品), 생애와 공적을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명에서는 이의잠의 삶을 8행에 축약하여 표현하였다.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은 이의잠의 8세손인 이재종(李在鍾)의 부탁으로 지어진 묘지명이다.
[내용]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 서두에는 묘지명의 주인인 이의잠의 세계(世系)를 소개하고, 이의잠의 총명한 자질과 선친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스스로 매진한 삶의 태도를 칭송하며 글을 시작하고 있다. 이어서 연대별로 이의잠의 공적을 설명하고 있다. 두드러지는 이의잠의 공적은 임진왜란 때 영남 각지의 의병장들이 대규모로 회맹을 맺었던 공산회맹에 참가하여 의병활동을 벌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의잠의 선량한 행실과 훌륭한 공적에 비해 낮은 관직에 머물렀고, 수명도 덕망에 비해 장수하지 못했다. 안타깝게 유문(遺文)도 화재에 소실되어 남은 것이 거의 없다고 애석함을 표출하며, 이의잠 묘소의 위치와 글의 창작동기를 설명하며 서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특징]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의 명(銘)은 자구(字句)에 구애받지 않고 8행으로 작성하였다. 이의잠의 성정과 공적, 학문적 성취 등 모든 것을 축약하여 표현했다.
[의의와 평가]
「하양현감수졸당이공묘지명」은 비교적 연대표시가 정확히 기록이 되어 있고, 행장의 기능을 하고 있어 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