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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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寄贈廣里禹氏諸主人 |
영어공식명칭 | A poem given to Woo’s Family, who lives in Gwang li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37년 - 「기증광리우씨제주인」이종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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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02년 - 「기증광리우씨제주인」이종기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36년 - 「기증광리우씨제주인」간행 |
배경 지역 | 「기증광리우씨제주인」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
성격 | 한시|고시 |
작가 | 이종기 |
[정의]
개항기 학자인 이종기가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세거하고 있는 단양우씨 집안에 기증한 한시.
[개설]
이종기(李種杞)[1837~1902]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자는 기여(器汝), 호는 만구(晩求) 혹은 다원거사(茶園居士)이다. 이종기는 영남학맥(嶺南學派)의 맥을 잇는 성리학자로, 이황 이후 성리설(理氣說)의 이론을 심화시켰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가학(家學)을 통해 학문을 심화했으며, 유치명(柳致明)과 이상정(李象靖)에게서 사사받아 영남 유학의 정통을 수용하였다.
[구성]
「기증광리우씨제주인(寄贈廣里禹氏諸主人)」은 20행으로 이루어진 고시이다. 이종기의 문집 『만구선생속집(晩求先生續集)』 1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기증광리우씨제주인(寄贈廣里禹氏諸主人)」[광리의 우씨 제주인에게 기증하다]의 전문이다.
평광지산수이발(平廣之山秀而拔)[평광의 산세 매우 뛰어나고]/평광지곡요이곽(平廣之谷窈而廓)[평광의 골짜기 그윽하게 둘러져 있네]/
원유단양일문(爰有丹陽一門)[이곳에 단양 우씨의 한 집안이 있는데]/분맹렬옥여천설(分甍列屋如天設)[분맹과 열옥 하늘이 마련해준 것 같네]/
도산위재거지고(島山爲齋據地高)[도산에서 재계하니 머무는 곳이 높고] /좌래신운각초월(坐來神韻覺超越)[앉아있노라면 신비한 운치가 느껴져 초월함을 깨닫네]/
첨백당중망허묘(瞻柏堂中望墟墓)[첨백당 안에서 허묘를 바라보면]/효사무망일거목(孝思無忘一擧目)[효성스런 마음 잠깐이라도 잊을 수 없네]/
와룡명정험굴신(卧龍名亭驗屈伸)[와룡정에서 나아가고 물러남을 생각해보고 있었는데]/뢰우회간천제약(雷雨會看天際躍)[때마침 뇌우가 하늘 가로 뛰어오름을 볼 수 있었네]/
가령벽호향림(家靈壁戶薌林)[집안에 내려오는 정신을 굳게 지켜 온 사방 향기롭게 하고]/풍령월사해인촉(風欞月榭駭人矚)[난간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누각을 비추는 달 빛이 사람들 바람봄에 놀라게 하는구나]/
생주경인지기거(牲酒競引至其居)[희생과 술을 다투어 끌어 거처하는 방에 이르니]/수군관패담불발(數郡冠珮憺不發)[여러 고을 관리들은 가만히 출발하지 않고 있었네]/
양득군수우가희(養得羣秀尤可喜)[빼어난 인재들을 길러내니 더욱 기쁠만하고]/명구예거유상숙(鳴璆曳裾遊庠塾)[아름다운 옥소리로 옷자락 끌며 서당에 나아가는구나]/
시행열력다문려(是行閱歷多門閭)[이번에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마을을 들려보았는데]/성거비복무주필(盛居備福無儔匹)[거처의 성대함과 복이 두루 갖춰있는 마을은 이곳만한 곳이 없었네]/
오문위원화수후풍속(吾聞韋園花樹厚風俗)[내 들으니 당나라 위장이 꽃나무 아래에서 친족들과 화합을 도모하면서 풍속을 두터이 했다고 하니]/면이영세수돈목(勉爾永世修敦睦)[영원히 집안의 화목을 도모하는 것에 힘쓸지어다]
[특징]
「기증광리우씨제주인(寄贈廣里禹氏諸主人)」은 당나라 위장(韋莊)의 고사를 활용해 단양우씨의 화목한 집안 풍속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증광리우씨제주인(寄贈廣里禹氏諸主人)」은 집안이 터 잡은 지세(地勢)와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가세(家勢), 첨백당에서 아름다운 경관과 일, 넉넉한 가풍을 고시의 형식으로 자유롭게 노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