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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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八居里縣 |
이칭/별칭 | 북치장리,인리,팔거리성,팔거리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박성현 |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을 관할한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명.
팔거리현(八居里縣)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을 관할한 757년(신라 경덕왕 16)이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양주(良州) 수창군(壽昌郡) 조에 팔리현(八里縣)은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북치장리(北耻長里)라고도 하고 인리(仁里)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고려 때]의 팔거현(八居縣)이라고 되어 있다.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국우동, 도남동, 관음동, 동천동, 읍내동, 학정동, 동호동, 태전동, 매천동, 팔달동, 금호동, 사수동,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에 해당한다.
757년에 지명을 중국식[漢式]으로 개정할 때 팔거리현을 팔리현으로 고쳤다. 776년(혜공왕 12)에 지명을 예전의 것으로 되돌렸는데, 대체로 신라 말까지 신구의 2개 지명이 병용된 듯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팔거리현을 북치장리 혹은 인리라고도 하였다고 되어 있다.
삼국시대에는 아직 현제(縣制)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팔거리현을 팔거리성 혹은 팔거리촌이라고 하였을 것이며, 달구벌[대구]을 중심으로 하는 군(郡)에 속하여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팔거리현의 중심지는 팔거산성과 구암동 고분군이 있는 구암동 일대로 추정된다. 팔거산성은 함지산(函芝山)[287.7m]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으며, 성벽의 둘레는 1,140m 정도이다. 구암동 고분군은 함지산 서쪽 사면, 주로 능선상에 조성되었으며, 무덤의 수는 봉분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총 346기 정도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고분군 아래 평지의 칠곡 생활 유적과 구암동 486-1유적에서는 굴립주(堀立柱) 건물이 주를 이룬 취락이 발굴되었으며, 아래쪽 동천동 유적에서는 삼국시대 관개시설이 확인되었다. 구암동 일대의 유적군은 산성과 취락, 생산 시설과 묘지를 갖춘, 5~6세기 지역 중심지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명면에서 발원한 팔거천이 남쪽으로 흘러 금호강(琴湖江)으로 들어간다. 읍치 동쪽에 함지산이 있으며 함지산에 팔거산성(八莒山城)이 있다. 북쪽에는 팔공산(八公山)에서 이어진 가산(架山)[901.7m]이 있는데, 임진왜란 후에 가산에 가산성이 축조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영남대로가 가산 옆 소야고개를 넘어 팔거천을 따라 대구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