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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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전통적인 교통로를 대체한 근대 문명의 상징 경부선과 대구역.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에 화륜이 한 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모두 구르게 되니 우뢰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처럼 날뛰었다. 한 시간에 삼사백 리를 달린다고 하는데 차체는 안온해 조금도 요동하지 않으며 다만 좌우에 산천, 초목, 가옥, 인물이 보이기는 하나 앞에 번쩍 뒤에 번쩍하므로 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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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경상북도 대구부에서 식량 부족 때문에 발생한 데모. 광복 후 우리나라는 식량문제가 최대의 현안이었다. 패망 직전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식량을 남김없이 거두어 갔고 우리나라의 식량 재고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정 당국은 ‘미곡 최고 가격제’, ‘미곡 수집령’ 등의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이러한 식량 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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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정치인·경제인·언론인.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성곡(省谷). 아버지 김광도(金光度)와 어머니 김봉옥(金鳳玉)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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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면소작조합이 달성군 농민단체와 함께 벌인 농민운동. 일제강점기 식민지농업정책으로 인해 식민지지주제가 확대 심화됨에 따라 지주와 소작농의 마찰이 심화되어 갔다. 지주들은 소작인에게 고율소작료, 각종 세금, 공과금 등을 불법적으로 전가하는 관행을 오랜기간 해왔다. 그 가운데서 1920년대 중반 소작농들도 해안면소작조합을 결성해 지주에게 대응했다. 해안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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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일어난 노동운동.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리, 노동자의 정치·사회·경제적 지위와 권익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운동이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사회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계급과 자신의 노동가치를 보장받으려 하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구조적 갈등에 의하여 발생하지만, 노동자와 국가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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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부립도서관. 대구부립도서관(大邱府立圖書館)은 1924년 건립한 도서관 건물이다. 일본은 1919년 한일병합 이후 식민 통치 방법을 강압적 지배와 문화, 교육을 통한 점진적 회유책을 병행하였다. 당시 도서관은 일본의 정치, 문화, 사상을 선전하고 교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1920년 대구 지역에는 일본인 1만 명, 한국인 3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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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일대에 조성된 유원지로 대구광역시의 대표적 휴양지. 1920년대 전반기에 처음으로 금호강 연안의 동촌에 유원지 조성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것은 1922년 8월 총독부 토목부원 우에다 마사요시와 오쿠이 료타로 등 두 명이 작성하여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청]에 제출한 「대구부 도시계획 개요」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대구부가 발주한 일종의 도시계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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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대구일본거류민단의 소방 단체. 대구소방조(大邱消防組)는 대구일본거류민단이 거류지(居留地)의 화재 방지 및 진압을 위하여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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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중구의 달성공원에 있던 신사. 대구신사(大邱神社)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일본인들이 일본의 국민도덕, 국민정신, 국민문화의 근원인 황민(皇民) 내셔널리즘의 이데올로기를 함양하기 위하여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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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경상북도관찰사 박중양이 주도하여 만든 대구 최초의 십자도로. 을사조약을 계기로 1906년 대구에 이사청이 설치된 이후 대구읍성이 헐리고 대구읍성이 헐린 자리에 순환도로가 조성되었다. 이어 경상감영 객사가 철거되었다. 그 뒤 경상북도 관찰부의 관찰사 박중양(朴重陽)은 시가지 간선도로 개설 사업을 벌이면서 경상감영을 관통하는 십자도로 건설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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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1가에 있던 일제강점기 대구이사청 건물. 대구일본이사청(大邱日本理事聽)은 대구 내 일본인 거류지 보호와 식민지 전초기지 확보를 위하여 1909년 탁지부 건축소의 설계로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1가에 세워진 지상 2층 건물이다. 1905년 을사늑약 아래 통감부와 관련 기구들이 설치되었는데, 이때 영사관을 이사청(理事廳)으로 바꾸어 일제 침탈 작업을 본격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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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2가에 있는 시립도서관.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은 1978년 4월 14일 제10회 한국도서관상에서 전국 최우수 도서관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 12월 1일 제2회 전국 문화기반시설 관리 책임자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2002년 11월 6일 제5회 전국 문화기반시설 운영 평가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003년 3월 28일 제35회 한국도서관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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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다양한 이념과 폭넓은 운동 노선의 독립운동이 펼쳐지는 배경이 된 1919년 대구의 3·1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전민족적 항일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한국인의 의식에 농축된 자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 민족자결이 고조되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폭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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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대구에서 결성된 진보적 여성단체. 부녀동맹 대구지부는 1946년 1월 13일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에 있던 대구공회당[현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결성된 진보적 여성단체이다. ‘대구시 부녀동맹’으로도 불린다. 부녀동맹 대구지부의 조직과 임원은 위장장 우신실(禹信實), 부위원장 정귀악(鄭貴岳), 총무부장 배영옥(培英玉), 조직부장 고윤녀(高胤女), 선전부장 박복조(朴福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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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9월총파업 중 경찰 발포로 사망한 시민 시체 1구로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과 대구사범대학 학생들이 벌인 시위. 대구에서 9월총파업이 벌어지고 있던 1946년 10월 1일 오전 남선전기주식회사에서 파업이 발생하고, 정오 무렵 여성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대구부청에서 식량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기아데모(飢餓데모)가 발생하였다. 1946년 10월 1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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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던 대구부청 학무과에서 운영한 아동문화 교실. 아동문화교육연구회(兒童文化敎育硏究會)는 초등 아동의 과외지도를 목적으로 운영한 아동문화 교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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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달성군에서 수리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 운영된 조합. 수리조합(水利組合)은 1906년에 제정된 수리조합 조례에 따라 관개 배수 시설의 신설 및 보수와 관리를 목적으로 설치된 조합이다. 수리조합의 설치는 1920년대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한 일제가 그 원활한 성공을 위해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이었고, 달성군에서는 수성 수리조합(壽城水利組合)·동부 수리조합(東部水利組合)·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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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언론인. 한응렬(韓應烈)[?~1949]은 평양에서 태어나 대구로 이주하였다. 1933년 10월 26일 서북 출신들이 조직한 서우구락부(西友俱樂部)에 참가하고 서기로 활동하였다. 1933년 『남선경제신문(南鮮經濟新聞)』 기자로 활동하며 조선인 기자들의 친목을 위하여 조직된 칠조회(七鳥會)에 참여하였다. 1935년에는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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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대구에 군정 실시를 위하여 미군이 주둔한 사건.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하고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하여 1945년 9월 8일에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여 총독부 대표로부터 공식 항복을 받고, 9월 9일에 38선 이남에 군정을 실시한다는 미군 사령부의 명령 제1호를 발표하였다. 그 후 미군은 대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주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