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890 |
---|---|
한자 | 聖殿庵 |
영어공식명칭 | Seongjeonam Herimitag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1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선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57년 - 성전암 중수 |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14년 - 성전암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2010년 - 성전암 중수 |
최초 건립지 | 성전암 -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산7-16 |
현 소재지 | 성전암 -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산7-16 |
성격 | 사찰|암자 |
전화 | 053-982-3600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 파계사 부속 암자.
[건립 경위 및 변천]
성전암(聖殿庵)의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지만 파계사가 현응대사(玄應大師)의 영조 탄신 기도로 왕실의 원찰(願刹)이 되고 왕실의 위패를 모시는 기영각(祈永閣)이 1696년(숙종 22)에 조성되면서 함께 건립되었다고도 한다. 1696년(숙종 22)에 건립된 고찰이며, 승려 성철(性澈)이 10년간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수행한 공간이다. 창건 이후 한동안 사적 기록 없다. 1857년(철종 8)에 계정상인(戒正上人)이 성전암을 보수하였다. 1914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1915년에 보령(保寧)·관해(寬海) 등이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성전암이 읍지류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7년에 간행된 『교남지(嶠南誌)』로, 성전암이 파계사의 속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2007년 화재로 현응선원 지붕이 소실되었지만, 승려 벽담[선원장]이 2010년 3월 3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전암은 영조대왕이 시주자가 되어 건립한 도량으로 원자 탄생과 기도 성취의 성스러운 기운이 모인 집이란 뜻의 ‘성전’과 영원선사(靈源禪師)의 시호인 ‘현응’을 따서 ‘성전암 현응선원(玄應禪院)’이라 이름하게 되었다.
[활동 사항]
성전암은 승려들의 참선 수행 공간인 선원으로 일 년에 두 차례 정기적으로 하안거(夏安居), 동안거(冬安居)를 결행하는 참선 도량이다. 매년 10여 명 승려가 참선 수행에 참여하고 있다. 또 성전암에서는 현응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현응선원을 개설하여 승만경(勝鬘經) 수업을 하였으며,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양력 첫째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법회를 개최하였다. 또 매월 1·3주 토요 수행 프로그램과 금요 철야정진, 시민 선방 등을 운영하고 있다. 재가불자 모임인 반야회는 사찰 탐방이나 참선 수행과 같은 신행 활동을 하기도 한다. 성전암은 영남 지방의 3대 참선도량(參禪道場) 중의 하나이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성전암은 파계사 삼거리에서 파계사 방향으로 올라가면 파계사가 모습을 보이면서 길이 두 갈래로 갈리는데, 왼쪽 길이 성전암과 대비암(大悲庵)으로 가는 길이다. 대비암을 지나 성전암으로 가는 길은 주차장 이후부터 경사가 심하고 조금 험난하다. 가람의 배치는 산의 지형에 순응한 초승달 모양의 구조로 되어 있다. 입구에 ‘불이문(不二門)’과 ‘영남제일선도량(嶺南第一禪道場)’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종무소가 있는 요사가 있고, 작은 쉼터인 정자 마루를 지나면 공양간이 있다. 그 옆으로 ‘성전암’과 ‘현응선원’ 현판이 있는 선방이 있다. 현응선원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2010년 화재로 지붕이 모두 소실되었다. 남은 구재를 활용하여 새로 건립하였다. 현응선원 뒤쪽 석축 위에 적묵당(寂默堂)이 있다. 협소한 공간에 지은 작은 기와집 형태이다. 종무소와 공양간 사이 높은 석축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구조의 관음전(觀音殿)이 있는데, 성전암의 주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