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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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新塘洞 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산5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김병섭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10월 8일~12월 30일 - 대구 신당동 유적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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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대구 신당동 유적 -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산53 |
성격 | 생활 유적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남북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생활 유적.
[개설]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산학협력관 건물 신축에 앞서 1998년 10월 8일부터 1998년 12월 30일까지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남북국시대와 조선시대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남북국시대 건물지에서는 건물지 3기와 기단지, 자연 수로 등이 확인되었고, 막새기와·평기와·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건물지에서는 건물지 3기와 출입문지·담장지·건물 기초 시설·자연 수로 등이 확인되었고, 분청사기·백자·옹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신당동 유적은 달서구 북서쪽에 있는 궁산[252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완만한 구릉의 남쪽 사면부에 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구릉 사면부에는 신당동 고분군①과, 신당동 토기요지①이 조성되어 있다.
[형태]
대구 신당동 유적의 남북국시대 건물지는 남아 있는 상태가 불량하여 건물의 형태와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3기 이상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1호 건물지는 6기의 적심이 확인되어 정면 2칸, 측면 1칸의 장방형 건물지로 보인다. 2호 건물지는 굴뚝과 온돌 시설의 일부만이 확인되었고, 3호 건물지는 ‘ㄱ’자형의 온돌 시설이 확인되었다. 건물지에서 막새기와 평기와, 토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막새기와는 연화문(蓮花文) 수막새와 당초문(唐草文), 보상화문(寶相花文) 암막새가 주종을 이룬다. 토기는 등잔[盞], 사발[碗], 항아리[壺], 독[甕], 큰 소반[大盤], 병[甁] 등이 출토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卍’자가 새겨진 암키와인데, 이를 감안하면 건물지의 성격은 사찰 건축물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시대 건물지는 남북국시대 건물지를 파괴하면서 조성되었는데, 훼손 상태가 심하여 원형 복원은 어렵다. 1호 건물지는 기단 석열 일부만 남아 있다. 2호 건물지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장방형 건물지이고, 정면과 좌측에 계단지 2개소가 확인되었다. 3호 건물지는 적심 4개만이 확인되었다. 그 외에 출입문지와 5개의 담장지와 건물 기초 시설이 확인되었다. 건물지에서는 귀얄백토분장이 주류를 이루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주로 확인되며, 옹기류와 주조철부, 숫돌 등이 함께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신당동 유적은 현재 발굴 조사가 끝나고 계명대학교의 산학협력관이 조성되어 있다. 서쪽과 북쪽으로 원지형이 남아 있으며, 특히 서쪽으로는 계단식 건물지의 흔적이 남아 있어 관련 유적이 추가로 조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의의와 평가]
대구 신당동 유적에서는 남북국시대 건물지와 조선시대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남북국시대 건물지는 출토되는 ‘卍’자가 새겨진 기와를 통하여 사찰 건물지로 추정된다. 8~9세기 남북국시대 사찰 건물이 일정 기간 존속되다가 공백기를 거쳐 16세기에 이르러 조선시대 사찰 혹은 양반가옥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