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334
한자 巴湖洞 由來碑
영어공식명칭 Paho-dong Yuraebi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 8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2009년 2월 9일연표보기 - 파호동 유래비 건립
현 소재지 파호동 유래비 -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 81 지도보기
성격 마을 유래비
재질 석재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개설]

파호동 유래비는 2009년 2월 9일 세워진 마을 유래비이다. 파호동은 파산(巴山)의 ‘파(巴)’ 자와 인근을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의 ‘호(湖)’ 자를 따서 ‘파호동’이 되었다. 대구부 서하면(西河面) 소속이던 파호동은 1910년 대구부 성서면(城西面) 파호동에서 1914년 달성군 성서면으로 개편되었다. 1958년 대구시로 들어왔다가 1963년 다시 달성군으로 복귀하였다. 1981년 대구직할시 서구 파호동, 1988년 대구직할시 달서구 파호동, 1995년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이 되었다.

[건립 경위]

1984년에서 2012년까지 5차에 걸쳐 성서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이곡동, 신당동 등 성서 일대는 과거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공단과 관공서, 아파트단지 중심의 신도시로 변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을이 공단에 편입되는 등의 이유로 마을의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하였던 성서 지역 주민들은 옛 마을을 기리는 마음에서 마을 유래비를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1992년 망정부락 유적비를 비롯하여 신당동 유래비, 갈미 유허비, 사령봉 유래비 등 열 기 이상의 유래비가 반경 2㎞ 안에 세워졌다. 파호동 유래비 역시 그러한 과정에서 세워졌다.

[위치]

파호동 유래비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 81번지에 있으며, 삼성명가타운 아파트 북서쪽 모퉁이에 있는 작은 공원 안에 있다.

[형태]

파호동 유래비는 기단 위에 표지석을 올려 놓은 형태이다.

[금석문]

파호동 유래비

유구한 역사를 품은 금호강을 옆에 끼고 유생들의 청아한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듯한 이락서당을 안은 아름다운 궁산을 배경으로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 강창 고려시대인 1270년경 한씨와 박씨가 이 지역을 개척하여 범어강창이라고 불렀다는데 범어는 인근 강에 물고기가 많이 뛰어 논다는 데서, 강창은 역사적인 용어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곡의 수송과 보관을 위하여 강가나 바닷가에 지어 놓은 창고라는 의미이며 소금저장으로도 유명하였다고 하여 범어 강창이라고 불려왔다. 그 후 창녕성씨 10대조, 김해김씨 6대조, 동래정씨 약200년. 순천김씨 약200년, 능성구씨 약150년, 창녕조씨 약150년, 영천이씨, 경주최씨, 단양우씨, 달성서씨, 밀양박씨, 인동장씨, 의령남씨, 나주임씨 등이 정착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던 강창! 그리하여 파호동은 원래 대구군 성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달성군 신설에 따라 강창 일부가 성서면 파호동으로 편입되었으며 1938년 대구부, 1958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늘의 달서구 파호동이 되었다. 동명은 마을 뒷동산에 뱀이 많이 사는 산이라 하여 뱀파(巴)를 쓰게 되었고 호는 금호강에서 따온 호수호(湖)로 파호동이라 하였다. 파호동 일대는 이러한 강창이 있었던 곳으로 금호강의 싱싱한 물고기로 매운탕집이 밀집한 곳으로 유명하였는데 아직도 곳곳에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당시 고 박정희대통령이 국가최고회의 의장시절에 이곳에 오셔서 매운탕을 드시고 가실만큼 강창 매운탕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금호강은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놀던 곳이엇는데 사람들에게 발견된 이후 내려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이는 금호강 절벽위의 노는 바위, 700여년전 혼자사는 청상과부가 금호강변에 자살하려다가 나뭇가지에 배꼽이 걸려 죽었다는 데서 유래한 배꼽덤, 오랜 풍화작용과 개발로 옥토로 변한 하천부지삶이들, 반송 서쪽골짝 성서제 등은 그 이름만으로도 정겨움이 묻어나고 정월대보름 반송 앞에서 추위를 참아가며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동제는 영원히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전통이지만 안타깝게도 현대화의 물결 앞에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세월의 흐름 앞에 파호동은 2004년 이후 개발로 마을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공동주택,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고, 주민들은 인근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에 더 늦기 전에 아름다운 전통을 길이 보존하여 후세에 물려주자는 동네주민의 뜻과 작은 정성을 모아 새로운 도약을 기원하는 이정표로 삼고자 오늘 파호동 유래비를 세웁니다.

2009년 2월 9일 달서구 파호동 주민일동

[현황]

파호동 유래비 왼쪽에 ‘당산천왕신령위(堂山天王神靈位)’라고 한자로 새겨진 비석이 함께 있다.

[의의와 평가]

파호동 유래비에는 지명 유래, 마을 역사, 주민 성씨, 마을 전설, 대동제 이야기, 비를 세운 이유 등이 새겨져 있다. 선현들이 살아온 자취나 지역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어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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