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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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堯臣 |
영어공식명칭 | Ryu Yosin |
이칭/별칭 | 성유(聖兪),연정(蓮亭),유요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윤조 |
[정의]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으로 소모종사관으로 왜를 물리친 문인 학자.
[가계]
유요신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성유(聖兪), 호(號)는 연정(蓮亭)이다. 유요신의 집안은 고려 때, 곤산부원군(崑山府院君)을 지낸 유익정(柳益貞)이 중시조(中始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건공장군(建功將軍)을 지낸 유세영(柳世榮),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유보(柳葆), 아버지는 침랑(寢郎) 유정양(柳延陽)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망기당(忘機堂) 조한보(曺漢輔)의 딸이다. 부인은 곡성신씨(谷城申氏)이며 슬하에 유시번(柳時藩) 1남을 두었다.
[활동 사항]
유요신은 1550년 7월 초삼일 해안(解顔) 삼태동(三台洞)[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에서 태어났다. 유요신은 과거를 보려 하지 않았고 고인(古人)의 학문에 뜻을 두었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성리설(性理說)을 배웠으며, 정구 문하에서 서락재(徐樂齋)[1550~1615], 곽괴헌(郭槐軒)[1547~1615], 손모당(孫慕堂)[1553~1634]과 교유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로 내려온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휘하에서 소모종사관(召募從事官)으로 의병을 모집해 왜구를 토벌했다. 왜구 토벌 공으로 인해 통정계(通政階)를 받아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임진왜란 후 삼태동의 옛 집으로 돌아와 다시 독서에 매진하며 여생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효성스러워 어머니를 지극히 모셨는데, 넉넉지 못한 살림에 상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삼았다. 1618년 2월 18일 향년 69세로 졸하였다.
[학문과 저술]
유요신이 임진왜란 때 소모종사관으로 있으며 기록한 『연정유공창의기실(蓮亭柳公倡義記實)』이 있으며, 그 안에는 일별로 의병의 모집과 전란의 상황을 기록한 「용사일록(龍蛇日錄)」과 학봉 김성일에게 올린 「장계」, 경상도관찰사에게 올린 「장계」가 수록되어 있다.
[묘소]
유요신은 부인 곡성신씨(谷城申氏)와 학산(鶴山)에 합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유요신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副護軍)의 상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