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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69
한자 己未獨立宣言記念式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7년 3월 1일연표보기 - 기미독립선언기념식 개최
발생|시작 장소 대구공회당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지도보기
성격 사회운동

[정의]

1947년 3월 1일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있는 대구공회당에서 대구의 우익 세력이 개최한 3·1절 기념식.

[개설]

기미독립선언기념식은 대구에서 두 번째로 열린 3·1절 기념식이었다. 기미독립선언기념식은 좌우익 연합으로 개최되었던 1946년 3·1절과 달리 대구 지역의 우익 정치세력이 개최한 기념식이었다.

좌익은 1947년 3월 1일 오전에 달성공원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 주최로 3·1기념 삼상결정 실천 시민대회를 개최하였다.

[경과]

기미독립선언기념식은 1947년 3월 1일 오후 2시 ‘탁치는 독립이 아니다’, ‘토지는 농민에게’라는 포스터가 붙은 대구공회당에서 우익 세력의 주최로 열렸다. 기미독립선언기념식정운기(鄭雲騏)의 사회로 시작되어 국기 경례, 애국가 제창, 선열에 대한 묵념이 있었다. 정재순의 개회사에 이어 이경희(李慶熙)의 독립선언문 낭독, 권태호의 「조선의 노래」, 「조선의 아들 행진곡」 독창이 있었다. 뒤이어 3·1운동 기념 강연과 사상회의(四相會議)에 보내는 메시지, 중국 주석 장개석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채택하였다. 기미독립선언기념식은 마지막 순서로 박해극(朴海克)의 선창으로 만세를 부르고 폐회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미독립선언기념식은 1947년 3월 1일 광복 후 두 번째로 열린 3·1절 기념식이었으나, 1946년 3·1절과 달리 우익 세력만으로 열린 기념식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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