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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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刑務所 收監者 單政反對 斷食鬪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48년 5월 대구형무소 수감자들이 단독 정부 수립 반대를 위해 일으킨 단식 투쟁.
[역사적 배경]
1946년 10월 항쟁 이후 미군정이 추진한 대한 정책의 핵심은 중도파에 대한 파괴 분열 공작이었다. 중도파 분열 공작은 좌우합작위원회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구성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설치 과정에서 나타났다. 또 1947년 초반 미국은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안을 사실상 폐기하고 단독 정부 수립을 확정지었고,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1947년 7월부터 구체적 조치를 마련하였다. 1947년 11월 11일 유엔총회에서 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하고 인구 비례에 따른 남북한 총선거 실시가 결의되었다. 1948년 1월 8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서울에 들어왔다.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에서 남한만의 선거 실시안이 통과되고, 선거일은 5월 10일로 정해졌다. 1948년 2월부터 단정 수립 반대 운동이 대구를 비롯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다.
[경과]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100여 명의 사상범들이 1948년 5월 26일부터 5월 30일까지 단독정부 수립 반대 단식 투쟁을 벌였다. 대구형무소 당국은 단식 투쟁에 참여한 수감자 중에 주모자로 10명을 지목하여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대구형무소수감자 단정반대단식투쟁에서 11명이 병으로 인한 것인지 또는 폭행으로 인한 것인지 불명한 상태에서 상급 병감에 별도 수용되는 조치를 받았다.
[의의와 평가]
대구형무소수감자단정반대단식투쟁은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수립에 수립에 반대하는 정치 활동이 폭넓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