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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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主靑年同盟 慶北委員會 |
이칭/별칭 | 민청경북위원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46년 대구광역시에서 활동한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도위원회 소속 청년 단체.
[설립 목적]
민주청년동맹 경북위원회(民主靑年同盟 慶北委員會)[민주청년동맹 경북위원회]는 민주주의 통일 정권 수립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혈기 넘치는 청년의 단결과 규합을 도모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민주청년동맹 경북위원회 위원장은 독립운동가 김관제(金寬濟)의 아들 김동찬(金東燦)이었다.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도위원회의 산하기관인 민주청년동맹 경북위원회는 각 군 단위 민주청년동맹의 상위 기관이었다. 1946년 2월 19일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남한의 모든 좌익계 정당 및 사회단체의 총집결체였다. 민주청년동맹 경북위원회는 대구부 원정 1정목[현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1가]에 있던 민청대구시위원회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였다. 민청대구시위원회와 보조를 맞추어 활동한 민주청년동맹 경북위원회는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 대표적인 좌익계 대중운동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가졌다. 특히 대구에서 미소공동위원회 속개, 3·1절 및 8·15 기념행사와 같은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정치적 행사뿐 아니라 10월항쟁 당시에도 대중 동원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각 군에서 전개하는 정치운동이나 대중운동의 중심고리 역할을 담당하였다.
민주청년동맹 경북위원회는 1946년 12월 27일 서울 경운동 천도교 강당에서 열린 ‘조선민주청년동맹 임시 전국대회’에 참가하고, 긴급동의를 채택하였다. 조선민주청년동맹의 임시 전국대회에서는 조직 확대 강화에 관한 건과 기관지 발간 및 그 외 사항을 토의하였다. 긴급동의로 채택된 안건은 첫째, 세계 민주청년동맹원에게 보내는 메시지, 둘째, 이주하 체포 취조와 박헌영 체포령에 대한 하지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 셋째, 국립서울종합대학안[국대안] 반대, 넷째, 대구사건[10월항쟁] 사형자 반대, 다섯째, 혁명가의 무조건 석방, 여섯째, 입법기관 반대 등이었다.
미군정은 1946년 5월 17일 테러를 감행하였다는 이유로 「행정명령」 제2호를 발동하여 민주청년동맹에 해산명령을 내렸다. 민주청년동맹과 민주청년동맹의 우호 기관들은 미군정에 해산명령 철회를 요구하거나 항의 방문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의의와 평가]
민주청년동맹 경북위원회의 결성 시점이나 구체적인 활동 등에 대하여서는 파악이 쉽지 않으나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도위원회의 산하기관으로서 대구 지역 좌익계 대중운동의 대표적 단체였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