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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교사 축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26
한자 御用敎師 逐出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어용교사 축출 운동 시작
성격 학생운동

[정의]

1960년 4·19혁명 시기 대구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어용 교사와 교수를 축출하기 위하여 펼친 학원민주화운동.

[개설]

어용교사 축출은 1960년대 2·28운동 이후 4·19혁명 시기에 대구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펼친 학원민주화 운동의 한 방법으로 전개되었다. 어용교사 축출은 이승만 정권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활동한 교사와 교수를 축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역사적 배경]

어용교사 축출은 학원이 정권에 예속된 상황에서 말과 행동으로 반공 이념을 강화하고,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을 찬양하여, 왜곡된 사회 현실을 구조화하는 데 일조하였던 교사와 학자에게 역사적 책임을 묻고자 한 것이었다. 학원에서의 어용학자와 교사의 축출은 ‘이승만 독재정권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맞물리는 사안이었다

[경과]

어용교사 축출 활동은 대구의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전개되었다. 어용교사 축출 내용을 보면 1960년 4월 26일 대학교수의 시위로 발단이 된 ‘4·26데모’의 지도부를 수사기관에 밀고한 교수의 축출, 대한반공청년단 서구 당부 단장을 지낸 현직 고등학교 교장에 대한 사퇴 요구, 3·15선거 당시 부정선거에 가담한 교장의 사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어용교사 축출 활동 중 ‘4·26데모’로 빚어진 사례는 경북대학교의 경우이다. 1960년 5월 2일 경북대학교 법학대학 학생들은 학생총회를 열고 해당 교수 여러 명을 어용교수로 지목하여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에도 불구하고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언문을 발표하고 동맹휴학 투쟁을 벌였다.

선언문에는 ‘어용학자 및 독직 직원을 축출한다’, ‘4·19 본대학 학생 데모반의 주동자를 밀고한 자를 색출해서 처벌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학생들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퇴학식을 거행하거나 어용교수로 지목된 해당 교수를 감금하는 일까지 벌였다.

[결과]

학생들의 어용교수 축출 활동에 따라 대상 인물을 학원에서 축출하거나 명예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의의와 평가]

어용교사 축출은 학원민주화운동의 범위에서 전개되는 것이자 이승만 독재정치를 청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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