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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보 행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389
한자 徐命普 行狀
영어공식명칭 Seo Myeongbo's biography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27년 - 이의조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798년연표보기 - 「서명보 행장」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805년 - 이의조 사망
배경 지역 서명보 출생지 -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지도보기
배경 지역 서명보 효자각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7길 9[산격동 1134-1]지도보기
성격 전장류|행장
작가 이의조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출신인 조선 후기 효자 서명보를 위하여 이의조가 쓴 행장.

[개설]

「서명보 행장(徐命普 行狀)」을 쓴 이의조(李宜朝)[1727~1805]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맹종(孟宗)이며, 호는 경호(鏡湖)이다. 이재(李縡)와 송능상(宋能相)의 문인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심하였다. 자신의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방초정(芳草亭)을 교육장으로 활용하여 후진 양성에도 전력하였다. 아버지의 유명을 따라 『가례증해(家禮增解)』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공릉참봉(恭陵參奉)을 제수하였지만 사양하였고, 다시 첨중추오위장을 제수하였다.

서명보(徐命普)[1704~1778]는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가 화극(華極)이며, 호가 북곽(北郭)이다. 아버지는 서익지(徐翊祉)이고, 어머니는 오산김씨(鰲山金氏) 김억추(金億秋)의 딸이다. 서명보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효성스럽고 근신하였다. 7세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고,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 이후 평생을 병환을 돌보았다. 대구 지역 유생(儒生)과 암행어사, 관찰사가 계장(啟狀)을 지어 올리는 노력으로 1799년 통훈대부 공조좌랑(通訓大夫工曹佐郎)에 특별히 추증되었고, 1841년 정려(旌閭)를 하사받았다. 저서로 『북곽실기(北郭實記)』가 있다.

[구성]

「서명보 행장」은 서두에 성명, 자호, 관향, 세계(世系)를 차례대로 드러내고, 본문에서는 서명보의 효행을 알 수 있는 일화를 열거하였다. 결문에는 묘소의 위치와 자손록을 설명하고 아버지 봉양에 힘썼던 효자 서명보를 찬양하며 글을 마무리하였다.

[내용]

「서명보 행장」에는 서명보의 효행을 중심으로 글이 이루어져 있다. 서명보의 효성스런 마음과 언행을 확인할 수 있다. 이의조가 결문에 서명보를 찬한 내용이 행장의 내용 전체를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 공과 같은 효성은 참으로 하늘이 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빙어설순(氷魚雪笋)은 옛날에 그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반드시 서책에 기록하여 만세토록 권면하였으니 그 지극한 정성으로 귀신을 감동하게 하는 일은 세상에는 드물게 있던 일이다. 공이 비둘기를 구하면 비둘기가 이르고, 꿩을 생각하면 꿩이 오고, 물고기를 잡으려 하면 얼음 속에서 물고기가 나오는 것은 오직 뜻대로 구하려는 바에 하늘이 곧장 응한 것이니 참으로 왕상(王祥)과 맹종(孟宗)과 더불어 천고에 아름다움을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징]

「서명보 행장」 뒤에는 이의조와 우재악(禹載岳)이 지은 두 편의 간이 행장 「장후부록(狀後附錄)」이 이어진다.

[의의와 평가]

행장은 죽은 사람의 비지(碑誌), 명(銘), 전(傳) 등을 제작하기 위한 자료의 기능을 가진다. 그래서 내용이 매우 상세하고 양이 비대한데, 초기 자료로 활용되다 보니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 「서명보 행장」은 대체로 서명보의 효행에 초점이 맞추어 있고, 실제 언행을 제시하는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서명보 행장」에 나오는 빙어설순 고사와 같은 비둘기와 꿩의 일화는 과장된 면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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