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서 권성두(權星斗) 장사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선 철종 때 사람으로 연곡면 퇴곡리에서 태어난 학암(鶴岩) 권성두는 힘이 세어서 호랑이를 잡았다는 일화이다. 강릉시 연곡면 삼산 3리 최찬규[남.72]씨로부터 1990년 11월 8일 채록하였다. 연곡의 권장사가 힘을 쓴 이야기와 양양의 탁장사와 힘겨루기 했다는 이야기이다....
강릉김씨 재실 관련 사항과 김시습(金時習)의 저술 등을 묶어서 편찬한 문중의 자료집. 강릉김씨는 신라 명주군왕 이래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씨족으로 시조인 김주원(金周元)과 관련된 재실 상량문을 비롯하여 중수기, 신도비문과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 등 관련내용을 모아서 강릉김씨대종회에서 편찬한 문집이다. 『명원산고』의 서문에...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88-11번지에 위치한 강릉김씨 종친들의 모임.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유덕(遺德)을 흠모하고 종친의 친목을 도모한다. 1565년(명종 20)에 숙간공 김첨경(金添慶)[1525~1583]이 명주군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 능소 앞에 재실을 지어 종중회의 장소로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재실 전체가 소실되자 1955...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위치한 마을. 조선 선조 때 강릉부사였던 김첨경(金添慶)[1561~1565]이 남대천이 자주 범람하여 들을 메워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넘치는 물을 막기 위해 남대천 제방을 쌓아서 마을을 잘살게 만들었다. 김공(金公)[김첨경 강릉부사를 높여 부른 말]이 만든 제방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공제라 하였다. 공제는 예전에 남대천 냇...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서 홍제동 앞에 이르는 도로. 공제로는 조선 시대에는 서울과 강릉을 잇는 관동 대로였다. 성산면 구산리에서 강릉 시내로 오는 관동 대로를 경강로가 대신하고, 금산리와 홍제동을 거쳐 시내로 지나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존속시켜 농로를 겸하면서 성산면 구산리에서 홍제동 공제까지 이어지도록 하였다. 이 도로는 강릉 시내 지역과 서쪽 지역인...
강릉 김씨 후손들이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의 능소에서 시조 군왕의 얼을 기리고 선양하는 행사. 신라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시중 겸 병부령인 김주원(金周元)은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쟁탈전에 패하여 785년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영동 지방의 9주를 다스리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불렸다....
강릉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묘. 신라 태종무열왕 5대 손으로 알려진 김주원이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封)해졌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이 후사(後嗣)없이 죽자, 신하들은 왕족 중에 김주원을 택하여 왕위에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침 경주에 내린 큰 비로 강을 건너지 못해 김주원은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 신하들...
본관을 같이 하는 성씨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밝혀 놓은 씨족의 역사책. ‘동조분파왈족(同祖分派曰族)’요 ‘소성고족왈보(昭姓考族曰譜)’라고 한다. 우리 역사에서 성씨(姓氏)가 보편화되는 시기는 고려 초기로 본다. 이 시기에 본관제(本貫制)가 시행되는 것에 근거한다고 보겠다. 이 시기에 그동안의 세거지(世居地)가 본관(本貫)이 되었고, 본관제의 시행은 중앙의 지방 통제책의 일환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