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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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匪討錄 |
영어의미역 | A Record on the Subjugation of the Eastern Bandits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호민 |
성격 | 필사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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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최제우(崔濟愚)|차기석(車箕錫)|이원팔(李元八)|이회원(李會源) |
저술연도/일시 | 1895년 |
편찬연도/일시 | 1895년 |
필사연도/일시 | 1895년 |
권수 | 1권 |
책수 | 1책 |
지질 | 한지 |
소장처 |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선교장 |
소장처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운정동 431번지] |
[정의]
1894년 9월부터 1895년 3월까지 강원 영동지방 각 읍에서 펼쳐진 동학농민군 토벌과 관련된 사항을 정리·기록한 고서.
[서지적 사항]
저자는 미상이며, 필사본이다. 지질은 한지이고, 면수는 254면이다. 소장처는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선교장이다.
[편찬/필사경위]
『동비토록(東匪討錄)』의 ‘동비’는 관군의 입장에서 동학농민군을 지칭한 표현이다. 상급관청과 하급관청 그리고 각 군진(軍陣)과 주고받은 문서들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강릉대도호부사 겸 관동소모사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1894년 9월 초부터 1895년 3월 초까지 동학교도를 토벌하는 과정에서의 첩보, 전령, 훈령 등의 문서들이 날짜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비토록』에 의하면 강원도 지역에서는 1894년 9월 초에 동학교도들이 봉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94년 9월 4일 영월·평창·정선 등 3개 읍에 동학교도 수천 명이 몰래 들어 와 정탐하고, 삼정(三政)의 비용을 바르게 하여 백성을 구제해야한다고 하였다. 또 9월 초에는 강릉부 대화면 모로치를 넘어 진부면에서 무기와 군수품을 보충한 후 9월 3일 대관령을 넘었고 다음 날 강릉부로 진격하여 관아를 점령하였다.
이를 계기로 강원 영서 산간지역과 영동지역에서는 1895년 3월까지 동학교도들이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관아와 이 지역의 유력인사들은 협력하여 민보군을 편성하는 등 조직적으로 동비에 대응하였다.
[의의와 평가]
관군의 입장에서 동학교도를 어떻게 토벌하였고, 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방도는 어떠하였는지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더 나아가서는 1894년 9월 이후 강원 지역 동학교도들의 무장봉기 과정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관군과 민보군의 조직과 운영, 사후 포로의 처리 과정 그리고 물적·인적 비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