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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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有漣開國原從功臣錄券 |
영어의미역 | Annual Stipend Certificate of Choe Yu-ryeon for the Minor Meritorious Subject for the State Found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1395년(태조 4) 공신도감에서 조선 건국에 공이 있는 최유련에게 발급한 녹권.
[개설]
조선왕조는 개국한 다음 달인 1392년 8월에 공신도감(功臣都監)을 설치하고 왕조 창업에 직접적으로 공을 세웠던 52명을 개국공신에 책록하였다. 뒤이어 건국의 거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잠저(潛邸) 때부터 이성계를 따르고 왕위에 오르는데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개국원종공신의 훈호(勳號)를 내렸다.
현재까지 학계에 알려진 조선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錄卷)은 모두 15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원래 작성된 그대로의 1차 자료는 모두 10종이고, 나머지 5종은 전사본으로 2차 자료이다. 이 시기의 녹권은 공신도감에서 작성하였으며 이를 수급한 자의 이름을 따라 녹권의 명칭이 결정되고 있다.
개국원종공신녹권의 기재 내용은 대체로 ① 녹권 발급관서, ② 공신호(功臣號), ③ 수급자(受給者)의 직함, ④ 성명, ⑤ 본관, ⑥ 「책봉기(冊封記)」, ⑦ 공신의 특전(特典)과 상전(賞典), ⑧ 수급 대상자의 직명단자(職名單子), ⑨ 공신도감 관여자의 직명단자 및 서압(署押) 순으로 되어 있다.
1998년 6월 29일 보물 제128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제작발급경위]
개국원종공신은 1392년(태조 1) 10월부터 4년 2월까지 13회에 걸쳐 포상을 받았다. 수차례에 걸쳐 포상 하교된 원종공신의 인원은 문헌상으로 1,698명에 달한다. 최유련이 녹권을 받을 때에는 105명이 공신녹권을 받았다.
1395년(태조 4) 3월 7일에 각 녹권에 등재할 공신을 확정하고 우승지(右承旨) 민여익(閔汝翼)이 왕지(王旨)를 받들어 발급하였다. 녹권의 끝 부분에는 공신도감의 관여자들이 각기 자신의 직명단자(職名單子)란에 서압(署押)하여 녹권을 사급(賜給)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공신도감 관여자 17명 가운데 16명이 서압(署押)하였다.
[구성과 형태]
사급자(賜給者)의 성명과 신분, 7회에 걸친 공신들의 공적 내용과 포상지시(褒賞指示) 및 처리 내용과 함께 녹권을 받은 105명의 공신 명단과 포상 내용, 녹권 발급에 관여한 담당 관원의 직함(職銜)과 성명 및 서압(署押)에 이르는 내용이 모두 208항에 걸쳐 필서(筆書)되어 있다. 녹권의 지질(紙質)은 저지(楮紙)이며, 보존 상태는 원문의 훼손이 거의 없고 양호한 편이다. 규격은 세로 31㎝×가로 635㎝이며, 매장의 길이는 44.3㎝~72.2㎝(끝장 24㎝)이다. 매장은 24행으로 16~18자씩 한문과 이두문으로 쓰여 있고, 매 행간은 2.8~3㎝이다. 9개소에 6.7㎝×6.5㎝의 ‘이조지인(吏曹之印)’이 찍혀 있다.
[내용]
1행으로부터 ① 공신도감, ② 공신, ③ 정헌대부(正憲大夫)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 치사(致仕), ④ 최유련(崔有漣), ⑤ 본관(本貫)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공신호 난에는 여타 개국원종공신녹권과 마찬가지로 ‘공신(功臣)’자(字)만 기재되어 있고, 본관 난에는 ‘본관(本貫)’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본관의 지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같은 해에 발급된 정진(鄭津), 한노개(韓奴介), 문계종(文係宗), 김회련(金懷練), 진충귀(陳忠貴), 장관(張寬) 등의 녹권과 동종(同種)이다. 그러나 이들 녹권에 수록되어 있는 공신수와 포상 내역, 숫자 표기 등을 비교해 보면 약간의 차이가 난다. 또 발급 관계자 가운데 정랑(正朗) 2명 중 1명만 표기되고 1명이 공란인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