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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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渭川 金猿 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설립 시기/일시 | 1921년 - 위천 금원 청년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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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3년 9월 - 위천 금원 청년회 임시 총회 개최 |
최초 설립지 | 위천 금원 청년회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
성격 | 사회단체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서 설립된 청년 단체.
[개설]
1921년 창립된 위천 금원 청년회는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 세 면의 연합 청년회로, 1923년 정태균 등이 중심이 되어 임원을 개선하고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설립 목적]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 3면의 연합 청년회인 위천 금원 청년회는 설립 당시의 취지서가 전해지지 않아 그 설립 목적을 상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1920년대 초기 청년 운동은 개조론과 문화주의에 입각한 실력 양성 운동 차원이었으므로, 위천 금원 청년회 역시 이러한 성격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변천]
위천 금원 청년회는 1921년경 창립되었으나 뚜렷한 활동 없이 유야무야한 상태였다. 1923년 9월 여름 방학으로 귀향한 일본 교토[京都] 유학생과 유지들이 수승대에서 임시 총회를 개최하고, 이를 다시 부흥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위천 금원 청년회는 1923년 임시 총회에서 임원 개선, ‘서선 수재 구제 동정금(西鮮水災救濟同情金)’ 모집, 마리·위천·북상 세 면에 노동 야학을 설치하는 건을 결의하였다.
[현황]
1923년 임시 총회에서 선출된 임원은 회장 정태균(鄭泰均), 부회장 임종(林鍾), 총무 정호균(鄭鎬均), 지육 부장 정해균(鄭海均), 덕육 부장 임유량(林有樑), 사업 부장 이상만(李相滿), 체육 부장 정석균(鄭錫均), 경리 부장 신학성(愼學晟), 상무 간사 이관영(李寬榮), 전영표(全永杓), 임성희(林盛熙) 등이다.
[의의와 평가]
1923년 개선된 임원은 정태균 등 지역 유지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위천 등 면 단위에서도 청년 단체가 설립되어 사회 운동에 일조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