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
-
경상남도 거창군에 속하였던 고려 시대 군현의 명칭. 감음현(感陰縣)은 현재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일대의 고려 시대 지명에 해당한다. 이곳은 신라 시기에는 남내현(南內縣), 여선현(餘善縣)으로 불렸다. 고려 초에 비로소 감음현으로 불리게 되었다. 1161년(의종 15) 10월 자화(子和)와 의장(義章) 등의 무고 사건으로 부곡(部曲)으로 강등된 바 있으며, 1...
-
남도 제일의 명승으로 꼽히는 거창군 원학동과 그 주변 풍광 및 선비들의 문화 이야기. 원학동은 조선 시대 안의현(安義縣)에 속한 동천(洞天)으로, 화림동(花林洞)·심진동(尋眞洞)과 함께 이른바 ‘안의 삼동(安義三洞)’으로 일컬어지던 곳이다. 안의 삼동은 백두 대간의 동남쪽 경사면에 형성된 계곡으로 산수가 빼어나 예로부터 영·호남 최고의 명승으로 알려졌다. 안의 삼동 가운...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의 소유권을 둘러싼 거창 신씨와 은진 임씨 문중 간 분쟁. 수승대(搜勝臺)는 조선 중종 때 요수(樂水) 신권(愼權)이 은거하며 강학하던 곳이다. 이황이 그 이름을 고쳐 준 이래 이황·신권·임훈의 시가 나란히 새겨져 탐승객에게 화제가 되었다. 이에 거창 신씨와 은진 임씨 간 수승대를 둘러싼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 한 차례 안의 현감...
-
조선 후기 거창군과 함양군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선 시대에 거창군의 마리면과 위천면, 북상면과 함양군의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안의군은 신라 때 마리현(馬利縣)과 남내현(南內縣) 지역이며 경덕왕 때 ‘이안’과 ‘여만’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여만현(餘萬縣)은 감음현(感陰縣)으로 바뀌었는데, 1390년 이안현(利安縣)을...
-
을사늑약 체결 이후 거창군 고제면을 근거지로 활약한 항일의병.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오 진사(吳進士) 부자에 의해 조직된 지역 의병이다. 을사늑약 체결 후 이에 반대하는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거창군 고제면은 거창 내에서도 의병 운동이 활발하였던 지역 중 하나로, 궁항리에서는 오 진사 부자를 중심으로 의병 부대가 결성되었다....
-
임성근을 시조로 하고 임천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임씨의 도시조(都始祖)[모든 임씨의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으로, 당나라 때에 귀화한 8학사의 한 사람이다. 신라에 귀화했으며 자손이 흥성해지면서 많은 파로 분관되었다. 은진 임씨(恩津林氏)는 1세조 임성근(林成槿)이 개성에 살다가 2세 임정(林挺) 때 금산군 안성으로 옮겼고, 3세 임...
-
고려 전기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 해당하는 거창현에 속하였던 감음현에서 자화와 의장이 일으킨 무고 사건. 고려 전기 자화(子和)와 의장(義章) 등이 정서(鄭叙)의 처 임씨(任氏)가 현리 인양(仁梁)과 더불어 국왕과 대신을 저주한다고 하여 왕이 임문분(林文賁)을 시켜 조사하게 하였다. 자화 등이 인양을 모함한 것이 밝혀져 무고한 자들은 벌을 받았으며 고려 전기 거창현에 속하였...
-
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존속했던 시기 거창군 지역의 역사.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은 조선 시대 거창현(居昌縣) 지역과 안음현(安陰縣)[안의현(安義縣)]·삼가현(三嘉縣) 일부가 합쳐진 것이다. 거창현은 지금의 거창읍·고제면·웅양면·주상면·남상면·남하면·가조면·가북면 일대를 영역으로 하였다. 지금의 마리면·위천면·북상면은 안음현 영역이었으며, 신원면은 삼가현 영역이었...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있는 효행과 유학의 본 고장으로 이름난 농촌 전통 테마 마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있는 갈계 마을은 1450년쯤에 은진 임씨(恩津 林氏) 임천년(林千年)이 인근의 경상남도 함양에서 옮겨와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열렸다. 갈계 마을은 600여 년의 역사적인 유래를 가진 은진 임씨의 집성촌이자 의령공파 종가가 있는 곳이다. 본래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