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신복명의 시문집. 신복명(愼復明)[1734~1815]의 본관은 거창이며 할아버지는 신제(愼梯), 아버지는 신수침(愼守沉)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며 효도와 우애의 도리를 알았고, 재종숙인 황고(黃皐) 신수이(愼守彛)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위기지학에 열중하였으며 칠서 주해(七書註解)를 모두 스스로 초록하여...
-
조선 전기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출신 유학자 신권의 문집. 신권(愼權)[1501~1573]의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언중(彦仲), 호는 요수(樂水)이다. 선교랑(宣敎郞) 훈도(訓導)를 지냈다. 아버지는 승훈랑 신우맹(愼友孟)이며, 어머니는 팔계 정씨이다. 부인은 은진 임씨(恩津 林氏)로 지평에 증직된 진사 석천(石泉) 임득번(林得蕃)의 딸인데 갈천 임훈과 첨...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출신 조선 후기 학자 신필희의 문집. 신필희(愼必嬉)[1771~1835]는 어려서는 집안에서 가학(家學)으로 학문을 배웠고, 나이가 들어서는 오촌(鰲村) 송치규(宋穉圭)에게서 학문을 배워 이이, 김장생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성격이 소탈하고 분방하여 음식이나 의복에 구애받지 않았고 일생 동안 학문 탐구에 힘썼다. 특히 예서(禮書)에...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를 지나는 거창 위천에 형성된 기반암 하상 지형. 수승대(搜勝臺)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를 지나는 거창 위천이 오랜 시간 동안 기반암을 깎아 만든 하상 지형이다. 경관이 아름다워 명승 제53호로 지정되었으며 거창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한 곳이다. 기반암 하상의 규모는 폭 약 70m, 길이 약 500m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성령상 정상에 있는 임진왜란 때 쌓았다고 알려진 산성. 거창 황산리 용문 고성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성령산(城領山)[420m]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현재 산꼭대기에는 헬기장이 구축되어 있으며, 남쪽에는 위천 분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성 내부에서 와편과 토기편이 다소 발견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거창 신씨 집성촌인 황산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옛 담장. 거창 황산 마을 옛 담장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거창 신씨(居昌慎氏) 집성촌 돌담을 말한다. 16세기경 거창 신씨 후손들이 황산 마을에 정착한 이후에 대대로 번창하여 약 400여년 동안 마을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 전체에 25가구의 기와집과 옛 담장으로 이루어져...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거창 신씨 선현의 추모와 서원의 문생 교육을 위하여 건립한 구연 서원의 문루. 거창 구연 서원 관수루는 거창 신씨 요수공 후손과 고을 사림들이 힘을 모아 1740년(영조 16)에 건립하였다. 조선 전기 안음현 원학동의 석천(石泉) 임득번(林得蕃)[1478~1561]의 문하에는 아들 임훈(林薰)[1500~1584]...
-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의 역사적 특징을 담은 건축 문화재 및 거창을 대표하는 건축 구조물에 대한 개요. 경상남도 거창군에는 거창을 알리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축물이 많이 있다. 특히 조선 시대 건축 양식에 중요한 연구 자료로 사용되는 향교와 서당 등의 다양한 유형 문화재가 남아 있다. 이처럼 거창은 과거의 건축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온 지역으로 오늘...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거창 신씨 세거지인 조선 시대 반촌 한옥 마을. 황산(黃山) 마을은 덕유산 남쪽 원학동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마을이다. 그 품이 넓어 넉넉한 덕을 지녔다는 덕유산은 이르는 곳마다 비경을 만들어 냈거니와, 옛 사람들은 덕유산 자락이 남쪽으로 이어지면서 빚어 낸 아름다운 계곡을 “안의 삼동”이라고 불렀다. 안의현에 있는 세...
-
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이옹(頤翁), 호는 석곡(石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영해 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 성이건(成以乾)이며, 할아버지는 중훈대부(中訓大夫) 위원 군수(渭原郡守) 성윤동(成允仝)이고,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성한량(成漢良)이다. 어머니는 팔계 정씨(八溪 鄭氏)로 장사랑(將仕郞) 정형(鄭浻)의 딸이다. 부인...
-
조선 전기 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문인. 안빈낙도하며 학문과 교육에 힘썼으며 구연 서원(龜淵書院)에 배향된 거창 출신의 선비이다.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언중(彦中)이며, 호는 요수(樂水)이다.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신영수(愼榮壽)이며 아버지는 승훈랑(承訓郞) 신우맹(愼友孟)이다. 어머니는 팔계 정씨(八溪鄭氏)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창원 부사(昌原府使) 정옥형(鄭玉衡)의...
-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신복진(愼復振)[1536~1619]의 본관은 거창(居昌), 호는 야천(夜川)이다. 할아버지는 승훈랑(承訓郞) 신우맹(愼友孟)이며, 아버지는 요수(樂水) 신권(愼權)이다. 어머니는 진사(進士) 임득번(林得蕃)의 딸 은진 임씨(恩津林氏)이다. 부인은 이소백(李小白)의 딸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다. 신복진은 1536년(중종 31)에 경...
-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신복행(愼復行)[1533~1624]의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성지(盛之), 호는 청송당(聽松堂) 또는 청송(聽松)이다. 할아버지는 승훈랑(承訓郞) 신우맹(愼友孟)이며, 아버지는 요수(樂水) 신권(愼權)이다. 어머니는 진사(進士) 임득번(林得蕃)의 딸 은진 임씨(恩津林氏)이다. 부인은 홍순(洪純)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 출신 효자와 그의 부인. 조선 시대에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 마을에 살았던 신성렬(愼性烈)[1759~1800]은 친어머니 모친상 후 3년 동안 채식하였으며, 계모와 친부를 지극히 섬겼다. 부인 강씨(姜氏)는 남편이 천연두로 죽은 뒤 아이와 시부모 때문에 죽지 못하다가 3년 뒤 남편의 뒤를 따랐다. 신성렬의 자는 백승(伯承)이다...
-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신수이(慎守彛)[1688~1768]의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군서(君敍), 호는 취한당(就閑堂)이다. 황고(黃皐) 선생이라고도 한다. 할아버지는 신경호(慎景昈)이며, 아버지는 신부(慎桴)이다. 어머니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문송(文頌)의 딸 남평 문씨(南平文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광익(李光益)의 딸 증숙부인(贈叔夫人) 경주 이씨(慶州...
-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회숙(晦叔)이며 호는 운호(雲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수검(愼守儉)이다. 신수검에게는 아들이 없어, 신수이(慎守彛)의 둘째 아들인 노산(老山) 신도명(愼道明)을 양자로 삼았으며, 신도명이 신필희의 할아버지가 된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신성중(愼性中)이며, 어머니는 탐진 안씨(耽津 安氏)로 안세언(安世彦)의 딸이다....
-
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문신. 조숙(曺淑)[1504~1582]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선경(善卿), 호(號)는 죽헌(竹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판서(判書)를 지낸 조중인(曺仲仁), 할아버지는 전력부위(展力副尉) 조정(曺禎)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조승로(曺承老)이고, 어머니는 이계보(李季寶)의 딸 강양 이씨(江陽李氏)이다. 조숙의 첫 번째 부인은 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1921년에 세운 조선 전기의 문신 조중인을 기리는 신도비. 조중인(曺仲仁)[1451~1506]의 본관은 창녕이며, 자는 백연(伯淵)이다.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거창을 거쳐 안의현 황산에 입향하였다. 이조 판서 조문택(曺文澤)이 증조할아버지이며, 선조 때 회양 부사를 지낸 죽헌(竹軒) 조숙(曺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