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학자이자 역사학자. 김상기(金庠基)의 아호는 동빈(東濱)으로, 아버지는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김연익(金然翊)이다. 김연익은 백산면 일대에서 이름난 토박이로 학행(學行)과 행실이 남달랐으며, 덕망과 신의를 갖추었던 것으로 전한다. 김상기(金庠基)는 한국 동양사학의 기초를 세운 대표적인 동양사학자이자 한학자이다. 김상기는 최보열(崔輔烈)과 최병심(崔秉心)의 문...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학자이자 서예가. 호는 이운(怡雲)으로, 1885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나갑순(羅甲淳)은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의 문하생으로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과 교류했으며,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성리학 등을 강론하였다. 이정직은 호남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해학(海鶴) 이기(李沂), 매천(...
-
조선 후기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두릉(杜陵). 자는 경원(慶源), 호는 초당(草堂). 두만형은 1759년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시사천리에서 태어나, 34세 되던 1792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구미마을에 정착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향리 유생들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후 해박한 지식과 문장이 정조에게 알려져 어전시재(御前試才)를 하...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 송기면(宋基冕)의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군장(君章), 호는 유재(裕齋)이다. 1882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아버지 송응섭(宋應燮)과 어머니 전주최씨 사이에서 5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절의와 순국의 의리를 강조한 교육자이자 만인에게 사표(師表)가 되는 호남의 거유(巨儒)로서 숭앙받았다. 송기면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으며, 특...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실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백증(伯曾), 호는 해학(海鶴)·질재(質齋)·재곡(梓谷)·효산자(曉山子)이다. 이기(李綺)라고도 쓴다. 이기(李沂)[1848~1909]는 30대 중반부터 생활 근거지를 구하여 김제·대구·순창 등지를 전전하다, 44세에 황현(黃炫)의 주선으로 구례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학문과 세무에 뜻을 두었다. 1...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가헌(可獻), 호는 백천당(百千堂). 아버지는 공조참판을 역임한 조원우(趙元祐)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윤침(趙潤琛)[1476~1545]은 어려서부터 글을 즐겨 읽고, 효성 또한 극진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성(誠)과 예(禮)를 다했고, 생활은 한 치도 예의범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중종 때에 조...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복행(福行), 휘(諱)는 환복(煥福). 아버지는 조익성(趙翊成)이다. 조환용(趙煥容)은 1823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하던 조선 후기에는 지방의 납세 물품을 납세자들이 직접 지정된 창고가 있는 데까지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 배를 이용하여 물품을 운반하는 군현민은 그나마 고통이 덜하지만 김제와 금구, 만경,...
-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국명(國明), 호는 운정(篔亭)이다. 고려 충숙왕조에 평장사를 지낸 문성공(文成公) 완산군(完山君) 최아(崔阿)가 비조(鼻祖)이다. 고려조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특진함경감사겸병마수군절도사(特進咸鏡監司兼兵馬水軍節度使), 순찰사(巡察使), 함흥부윤(咸興府尹) 등을 지낸 최진손(崔震孫)이 그 현조(顯祖)이다. 아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