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김제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옛 무덤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이른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 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복원할...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에 있는 초기국가시대의 유구 유적. 유구(遺構)는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유적을 말한다. 그 방식에 따라 크게 수혈 유구(竪穴遺構)와 구상 유구(溝狀遺構)로 나누어진다. 수혈 유구는 둥그런 구덩이를 파서 집을 지은 것이고, 구상 유구는 길게 도랑을 파고 기둥을 세워 집을 지은 것이다. 대동리 유적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 소동...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대청리에 있는 고려시대 토광묘 유적. 토광묘(土壙墓)[널무덤]는 형태에 따라 정사각형·직사각형·원형·타원형 등이 있으며 길이 2~4m, 폭 0.8~1.5m, 깊이 1m의 구덩이를 파고 널을 안치한 후 널과 구덩 사이를 깬돌이 섞인 흙으로 세우는 단순한 구조이다. 널의 형태는 뽕나무를 세로로 쪼개서 나무를 구유같이 파내어 아래위로 결합한 통나무널과 판재의 나무...
-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에 있는 조선시대 일곱 개의 무덤군. 백학동 용자칠총에는 용녀(龍女)와 진표(陳表)의 신비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선인동마을에 진표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병에 걸리자 진표는 용하다는 의원을 모셔 왔지만 도무지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안타까움으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벽골제 제4수문.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저수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벽골제 제3수문.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저수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백자마을에서 일제강점기 옹기요지라고 전하는 터. 옹기는 전통적으로 발효 식품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인의 음식 문화에 가장 적합한 저장 용기이다. 일찍부터 우리 민족은 옹기를 조미료와 주식·부식물의 저장 용구, 주류 발효 도구, 음료수 저장 용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찰흙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그릇에 미세한 공기구멍을 만들고 이것...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자흥마을에서 일제강점기 옹기요지라고 전하는 터. 부교리 자흥마을 전 옹기요지는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자흥마을의 남측에 위치하는 구릉 말단부로, 맞은편 구릉의 곡간에 해당된다. 현재 부교리 자흥마을 전 옹기요지는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며, 주변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밭 주변으로 비닐하우스 3동이 위치하고 있다.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자흥마을 사람들에...
-
전라북도 김제시 신덕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벽골제 거수문(渠水門) 중 북쪽 제1수문. 벽골제(碧骨堤)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저수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330년(신라 흘해왕 21)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 8백 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나중에 연도를 고쳐서 신라가 만든 것처럼...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홍정리에서 조선시대 옹기요지라고 전하는 터. 신흥리 전 옹기요지는 김제시 황산면 홍정리 점촌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비닐하우스와 민가가 세워져 있어 정확한 형태는 파악할 수 없다. 70세의 마을 주민도 옹기 터가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나 근대에 사라진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신흥리 전 옹기요지 주변에는 수많은 옹기 조각과 소토...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쌍감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요지. 김제시 황산면 쌍감리는 천주교 신도들이 대부분으로, 쌍감리 옹기요지도 천주교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운영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의 옹기가마는 찾아볼 수 없다. 쌍감리 옹기요지는 김제시 황산면 쌍감리 마을에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쌍감리 옹기요지에서는 현재도 옹기가 제작되고 있다. 주민 이석...
-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쌍감리에 있는 삼국시대 석실묘 유적.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에 랴오둥 반도[遼東半島]에 있던 중국계 봉토분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석실분(石室墳)은 일반적으로 널방[玄室]을 만들고 그 위에 흙과 돌무지·진흙·숯·재 등을 깐 뒤 흙으로 봉토를 만드는 방식이다. 돌무지무덤[積石塚]의 전통을 가진 고구려가 낙랑이 멸망한 뒤부터 봉토(封土) 돌방무덤을 짓기 시작...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조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안위의 묘. 안위(安衛)[1563~1644]는 1592년(선조 2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거제현령이 되었다. 1594년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이 지휘한 제2차 당포해전 때 전부장(前部將)으로 공을 세웠다. 1597년에는 부산의 왜군 화약고에 불을 질러 폭파하였으며, 이후 전라우수사를 거쳐 전라도병마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 부창마을에 있는 구석기시대 분구묘 유적. 구석기시대의 문화층이 확인된 지점은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 부창마을을 감싸고 흘러내린 구릉의 정상부와 경사면을 따라 형성된 지역이다. 양청리 유적에서는 총 8곳의 퇴적층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 두 곳의 퇴적층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양청리 분구묘는 동-서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23m의 낮은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조선시대 방축지. 월승리 제주 방축지는 1415년(태종 15) 9월에 벽골제 대보수 공사 시 제주도 장정들만 일하던 곳이라는 설과, 교통이 불편했을 때라 제주도 주민들이 고생 끝에 김제에 도착했으나 이미 보수 공사가 끝나 허탈하여 방죽을 파놓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초승마을 뒤에 있는 명금산 아래의 논 일대에 위치...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장산리에서 일제강점기 옹기요지라고 전하는 터. 장산리 전 옹기요지는 김제시 청하면 장산리 신월마을의 신월교회 남측에 위치한 우사 일대에 해당된다. 신월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20여 년 전 옹기요지는 없어졌으며, 언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78세의 한 마을 주민의 아주 어렸을 때 있었다는 증언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강승의 유허지. 강승(姜昇)[1430~1500]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완휴재(玩休齋)이다.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강순(姜純)이며 어머니는 김제조씨(金堤趙氏)로 판서 조통원(趙通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 부자와 김시습(金時習)을 스승으로 받들면서 도의지교를 맺었다. 1447년(세종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