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전라북도 김제시가 시민의 행복도를 높인 지방자치단체에게 수여하는 ‘행복한 도시 대상’을 수상한 일. 『이코노미 21』에서 주최하고 행복한도시대상 운영사무국과 한국미디어포스트 주관으로 추진했던 ‘2008 행복한 도시 대상’ 행사에서는 엠브레인 리서치가 실시한 시민 설문조사를 통해 자치단체의 주거와 교육, 안전, 교통 등의 기초생활 환경과 쾌적한 도시환경, 문화 등에 대한...
-
1919년 3월 2일부터 4월 4일까지 전라북도 김제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뒤 무단 통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인은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이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다양한 경로로 나타났다. 한편 국외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의 후손이다. 강수립(姜守立)은 임진왜란 당시 김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비승(丕承).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중호(姜仲虎)이다. 강종립(姜宗立)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공을 세워 정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따르면 지중추에 올랐다고 되어 있는데, 증직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인부(仁父), 호는 송재(松齋). 고조할아버지는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이며, 아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강종립이 있다. 강중호(姜仲虎)는 임진왜란 당시 김제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운 공이 있다. 호조참판이 추증되었다....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세운 후백제의 초대 왕. 본관은 전주(全州). 본성은 이(李)씨였으나, 뒤에 견씨(甄氏)라 하여 전주견씨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자개(阿慈介), 동생은 능애(能哀)·용개(龍蓋)·보개(寶蓋)·소개(小蓋), 누이는 대주도금(大主刀金),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전해진다. 아들로 신검(神劍)·양검(良劍)·용검(龍劍)·금강(金剛) 등이...
-
2006년 12월과 2008년 4월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한 사건. 20세기에 들어 중국·러시아 등 후발 산업국가들의 개발이 맹렬히 진행되면서 시베리아와 유라시아 등지를 오가는 철새의 주요 서식지인 하천과 습지가 지속적으로 파괴되었고, 이에 따라 터전을 잃어버린 철새들이 인간의 경작지나 주거지까지 날아와 먹이를 구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기르는...
-
조선 후기의 의병이자 성리학자. 고봉익(高鳳翼)은 광해군 재위 기간에는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에 몰두하였으며, 유집(柳楫), 조성립(趙成立)과 교유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과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군량을 모으고 의병을 모집하여 왕을 모셨다.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지음서원(芝陰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
1895~1914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행정구역 상 옛 명칭. 갑오·을미개혁기인 1895년(고종 32)에 조선 정부는 행정체계 근대화 추진의 일환으로 기존의 지방행정구역을 조정하였다. 1895년에 금구군과 만경군을 분할하여 전주부 금구군이 되었고,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금구군은 전라북도에 속한 26개 군 중 3등군에 포함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금구군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환곡 폐단의 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난. 삼정(三政)이 문란해지면서 1862년(철종 13) 2월 4일 경상도 단성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이 일련의 사건을 임술농민항쟁이라 하는데, 전라도에서는 3월 27일 익산 봉기를 시작으로 함평, 고산, 부안 지역에서 잇달아 일어났다. 전라도의 어수선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선무사 조구하(趙龜夏)...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영중(瑩中), 호는 묵재(默齋), 초명은 종동(終同). 아버지는 선천군사(宣川郡事)를 지낸 김숙보(金叔甫)이고, 어머니는 서씨(徐氏), 처는 금이(今伊)이다.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장사꾼의 비단을 절취한 사건에 연루되어 황해도 경천...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아버지는 고려 후기 예조판서를 역임한 김승로(金承露), 어머니는 상서(尙書) 이복득(李福得)의 딸이다. 아내는 원주원씨이다. 김방(金倣)은 1415년(태종 15) 지김제군사(知金堤軍事)로 있으면서 2만 명의 인부를 20여 일간 동원하여 벽골제를 보수 공사함으로써 방죽 아래 땅을 옥토로 만들어 군민(軍民)의 식량을...
-
1949년에서 1950년에 걸쳐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 1949년 봄부터 1950년 사이 김제에서 좌익 단체에서 활동한 임종연, 임종률, 윤성학 등 민간인이 전라북도 경찰국에 의해 이송되었다가 실종되거나 살해되었다. 이후 1950년 7월 25일부터 9월 28일 사이 인민군 치하 및 치안 공백기에 백산면·감곡면·금구면·봉남면·금산면·김제읍·만경면 등지에서 이석...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군 백구면 유강리에 있었던 치문학교 학생들이 벌인 항일 운동. 김제 치문학교 학생운동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전황은 날로 악화되었고, 그에 비례해 한국인들의 독립 열망이 커지고 있던 상황에서 발생했다. 1943년 2월 말 민속놀이의 하나로 지난해 액운을 쫓기 위한 ‘매굿’을 치는 날 밤에 지금의 백구면 유강리에 있던 치문학교 5학년 급장 박병화가 소란한...
-
1916년부터 1931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김제읍 지역의 행정구역상 옛 명칭. 일제는 기존 행정구역의 모호한 경계로 인한 행정상의 불편함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치기구를 붕괴시키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1914년부터 1916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지방행정구역을 폐합·축소 조정하였다. 1916년에 김제 지역의 읍내면과 입천면(立川面)을 합병하여 김제면으로 개칭되었다가...
-
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언양(彦陽). 할아버지는 금오위섭낭장(金吾衛攝郞將)을 지낸 김언련(金彦連)이고, 아버지는 예부시랑과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낸 김부(金富)이다. 외할아버지는 검교장군행랑장(檢校將軍行郞將)을 지낸 송세명(宋世明)이고, 어머니는 대부인 송씨(大夫人宋氏)이다. 아내는 복야(僕射) 조언통(趙彦通)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
고려 후기의 무신. 아들은 김홍기(金弘己)이고, 며느리는 상장군 조염경(趙廉卿)의 딸이며, 사위는 정통보(鄭通輔)의 아들인 정상(鄭相)이다. 본래 군산도(群山島)[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사람이었으나, 조상이 상선(商船)을 따라 개성에 정착하게 됨으로써 적(籍)을 개성으로 하였다. 처음에 감수직(監收直)으로 있다가 산원(散員)에 보직되고, 충청도안찰사(忠淸道按察使)...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입부(立夫), 호는 월곡(月谷). 장인은 충청수사(忠淸水使)를 역임한 최호(崔湖)이다. 아들로 나형(羅珩)이 있다. 나신도(羅伸道)[1568~?]는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6년(선조 29) 이몽학(李夢鶴)이 난을 일으키자 장인인 최호와 함께 홍산[지금의 부여]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159...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장원(章元), 호는 행정(杏亭). 아버지는 나안세(羅安世)이고, 동생은 나응삼(羅應參)이다. 김응상(金應商)의 딸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다시 이형집의 딸과 결혼하여 4남을 두었다. 1537년(중종 32) 사헌부감찰을 지낸 뒤, 청주목판관겸청주진병마절제도위(淸州牧判官兼淸州鎭兵馬節制都尉)에...
-
고려 후기 문신이자 나주나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낙천와(樂天窩). 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이고, 아버지는 금양군(錦陽君) 나석(羅碩)이다. 1362년(공민왕 11) 병과(丙科)에 16번째로 급제하였다. 전교시령겸춘추관편수관(典校寺令兼春秋館編修官)을 거쳐 예문관지제고(藝文館知製誥)에 이르렀다. 신돈 집권 후 공민왕이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대여(大汝), 호는 희음재(希音齋). 나중우(羅仲佑)의 12세손이다. 나처대(羅處大)는 윤봉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었으며, 일찍이 학문에 매진하여 대성하였다. 지역의 유학자들이 그의 인품과 학식을 들어 조정에 천거하여 정조 초년에 온릉참봉에 제수되었고, 이어 선공봉사...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숙거(叔擧), 호는 월암(月岩). 아버지는 나환(羅瓛)이고, 동생은 나구기(羅九紀)·나백기(羅百紀)이다. 나팔기(羅八紀)[1623~1676]는 1651년(효종 2)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을 지내다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얼마 후 조정에서 다시 불러 희...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진(士眞), 호는 계이당(繼怡堂). 아버지는 구산처사(龜山處士) 나응삼(羅應參)이고, 어머니는 양성기(梁成紀)의 딸이다. 나표(羅表)는 어려서부터 효행과 우애로 이름을 떨쳤다. 입신(立身)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성현의 가르침을 본받으며 늙을 때까지 경전을 암송하고 가르쳤다. 1588년(선조 21) 나라에서...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우(士遇), 호는 주은(酒隱). 나중우(羅仲佑)의 6세손이다. 나협(羅悏)은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아울러 김장생(金長生)으로부터 학문과 덕을 쌓았다. 1575년(선조 8) 성균관 생원(生員)에 급제한 뒤 여러 번 승진하여 1607년(선조 40) 남대(南臺)[학행(學行)이 높다고 인정되...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공보(共寶), 호는 월재(月齋). 아버지는 이몽학(李夢鶴)의 난과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나신도(羅伸道)[1568~?]이다. 나형(羅珩)은 지금의 김제시 신풍동에서 태어났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정략장군(定略將軍)으로 선전관청선전관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 김준룡(金...
-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보(中甫), 호는 상촌(桑村). 아버지는 감찰지평(監察持平) 노준경(盧俊卿),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노단(盧亶), 어머니는 비순위별장(備巡衛別將) 이천로(李天老)의 딸이고, 아내는 김극치(金克致)의 딸 및 김후(金厚)의 딸이다. 아들은 노상인(盧尙仁)·노상의(盧尙義)·노상례(盧尙禮)·노상지(盧尙...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외세에 반대하고 탐관오리를 축출하기 위해 동학 남접(南接)의 주도 하에 진행된 집회. 개항과 더불어 농촌 경제가 점점 파탄 지경에 달했고, 지방관과 토호들의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한편 동학의 교조인 최제우(崔濟愚)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명으로 처형당하고, 동학교도들은 정부의 탄압으로 매우 힘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최제우 사후 최시형이 교단을...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중시조. 아내는 상장군 문유보(文儒寶)의 딸이고, 사위는 장군 유삼백(柳森栢)이다. 두경승(杜景升)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과 청하면, 진봉면, 공덕면, 성덕면 일대의 고려 후기 행정구역인 만경현(萬頃縣) 사람이다. 고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으로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무신정...
-
1919년 4월 4일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던 만경공립보통학교 훈도와 생도들이 일으킨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경 만세운동은 3·1운동을 통해 조선 독립의 움직임이 거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때 만경면 지사들도 이에 동참하여 지역에서 조선 독립의 열망을 고...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었던 만경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벌인 동맹휴학. 만경공립학교 동맹휴학은 교원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성명 불상의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기 위해 일어났다. 만경공립보통학교 5학년 담임 교원이던 성명 불상의 일본인 교사가 성질이 패악하여 매사에 학생들에게 화를 내고 구타하였다. 게다가 학생들의 조선 역사를 가르쳐 달라는 요구에 일본인 교사는 “일본 국민이 일본 역사를 배우...
-
1914년부터 1995년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일제는 기존 행정구역의 모호한 경계로 인한 행정상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지역의 자치 기구를 붕괴시키며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1914년 지방 행정구역을 조정하였다. 이때 고려 대상이 된 것은 통폐합 대상 군·면의 규모와 인구 수 등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만경군의 관할 구역은 군내면, 남일면, 남이면,...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아버지는 박길중(朴吉中)이고, 어머니는 정랑(正郞) 최계진(崔季眞)의 딸이다. 동생으로 박헌(朴軒)과 박초(朴礎)가 있다. 동생인 박초가 김제시 입석동에서 태어난 것으로 미루어 박부(朴敷)도 김제 출신으로 보인다. 감무(監務)를 지냈다....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밀성(密城). 자허(子虛), 호는 정재(貞齋), 초명은 박실(朴實)이다. 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郞)인 박인기(朴仁杞)이다. 아들은 박경빈(朴景贇)·박경무(朴景武)·박경문(朴景文)이다. 박의중(朴宜中)[1337~1403]은 1362년(공민왕 11) 과거에서 장원에 뽑히고, 여러 차례 승진하여 헌납(獻納), 좌사의대부(左司...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허(子虛), 호는 토헌(土軒). 아버지는 박길중(朴吉中)이고, 어머니는 정랑(正郞) 최계진(崔季眞)의 딸이다. 형은 박부(朴敷)·박헌(朴軒)이다. 박초(朴礎)[1367~1454]는 어려서부터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좌헌납·이조정랑·사복시첨정·사헌부장령·교서관판교·우부승지·대사간·병조참의 등의 요...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출정하여 전사한 박석정(朴石精)의 손자이다. 박형(朴珩)은 중종 때 출사하여 참봉을 지냈으며, 고창현감이 되었다. 청백비(淸白碑)가 있다....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열녀. 마비(馬非)는 학생(學生) 서치명(徐致明)의 아내였는데, 30세에 남편을 여읜 후 21년간 상복을 벗지 않은 채 위판(位版)[위패]을 설치하고 장막을 쳐 놓았으며, 겨울과 여름으로 의복을 만들어 영전 앞에 가져다 놓았고 조석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시 전라도관찰사였던 유관(柳灌)에 의해 절의가 조정에까지 알려져 포상이 상신되었다. 1528년(중종...
-
견훤의 뒤를 이어 935~936년까지 재위한 전라북도 김제 지역 후백제의 왕. 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의 맏아들로, 동생은 양검(良劍)·용검(龍劍)·금강(金剛)이다. 신검(神劍)은 아버지인 견훤이 넷째 아들인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935년 3월에 이찬(伊飡) 능환(能奐) 및 동생인 양검·용검의 권유를 받아들여 반란을 일으켜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金...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 안대규(安大規)[1642~1711]는 본관이 순흥(順興)으로 지금의 김제시 용지면 용암리 도리실마을에서 태어났다. 함경북도 명천부사로 재임하면서 백성을 편히 다스렸다. 숙종이 안대규를 아껴 내직으로 불러들였는데,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놓아 주지 않아 상경하지 못하였다. 기다리던 조정에서 관원을 파견하여 원인을 조사하였는데, 조사자는 관민이 일치하여 태...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 찬성 안사종(安士宗)의 아들이고, 형은 안기(安起)이고, 동생은 안일(安逸)이다. 안지(安止)[1377~1464]는 조선시대인 1414년(태종 14)에 문과에 2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에 임명되었다가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냈...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신(汝信), 호는 퇴암(退庵). 오종손(吳從孫)의 현손으로, 동생은 오대익(吳大益)·오대진(吳大晋)이다. 조선 광해군 때 사옹원봉사로 있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인조가 충청도 공주로 파천하자 두 동생과 함께 왕을 호종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동생들과...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일대에 있는 광산. 모악산을 이루고 있는 엽리상 화강암에는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아 금구면 선암리 등지에 석금(石金)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다. 현재 채굴하고 있는 금광은 모두 사금광으로, 엽리상 화강암의 풍화물이 하천에 의해 이동·퇴적하면서 집적된 충적층 하부와 기반암 또는 플라이스토세 접촉부에 사금이 포함되어 있다. 모악산에...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으로 귀향 온 금구온씨의 시조. 본관은 금구(金溝). 호는 수신재(守愼齋)이다. 아버지는 고려 충목왕 때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낸 온수(溫粹)이고, 형은 온선(溫善)이다. 온신(溫信)은 1366년(공민왕 15) 12월에 당시 권신이었던 신돈(辛旽)의 전횡을 논죄하기 위해 이존오(李存吾)·정추(鄭樞)와 함께 신돈을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거야현(...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 금산사에서 출가한 승려. 1262년(원종 3) 완산주 함열군에서 태어나 1330년(충숙왕 17) 입적하였다. 주로 원나라에서 활동했던 유가종(瑜伽宗) 승려이다. 속성은 조(趙)씨로, 아버지는 검교감문위대호군(檢校監門衛大護軍) 조혁(趙奕)이고, 어머니는 완산군부인(完山郡夫人) 이씨(李氏)이다. 원명해원(圓明海圓)[1262~1330]은 12세에 금산사(金...
-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일어난 동학농민군의 전투.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거한 뒤 조선 정부가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군을 끌어들이자 동학농민군은 척왜(斥倭)를 부르짖으면서 1894년 9월에 다시 일어나 북진하였다. 10월 하순에 주력부대는 논산에서 합세한 다음 공주를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농민군의 논산 집결 소식이 정부에 보고되자 관군과 일...
-
1919년 3월 20일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이 조선에서 무단 통치를 실시하여, 조선인은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이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다양한 경로로 나타났다. 한편 국외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원칙...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열녀. 박씨는 남편 유구연(柳九淵)이 죽자 3년 동안 여묘(廬墓)를 했다. 여묘를 마친 뒤에는 남편의 얼굴을 그려 벽에 걸어 두고 사철 의복을 지어 시렁에 달아 두면서 아침저녁 제사 지내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박씨의 절의를 높이 평가하여 나라에서 세역을 감면해 주었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희춘(柳喜春)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주부 유광복(柳光復)이며, 어머니는 승지 남치상(南致祥)의 딸이다. 유지화(柳志和)[1599~1680]는 1633년(인조 11)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叅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열녀. 윤사임 처 박씨는 25세이던 1510년(중종 5)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동안 소복을 벗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는 등 검소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였다. 또한 절일(節日)과 기제(忌祭) 때는 분묘 앞에 나아가 초상 때처럼 서럽게 울며 처음과 다름없이 애통해하였다. 이에 1526년(중종 21) 전라도관찰사 유관(柳灌)이 장계(狀啓)에 이와 같은...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묵암(墨巖)이다. 아버지는 이영(李穎)이고, 어머니는 생원 채소명(蔡紹明)의 딸이다. 이계맹(李繼孟)은 1483년(성종 14)에 진사·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89년(성종 20)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검교·정언·집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실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백증(伯曾), 호는 해학(海鶴)·질재(質齋)·재곡(梓谷)·효산자(曉山子)이다. 이기(李綺)라고도 쓴다. 이기(李沂)[1848~1909]는 30대 중반부터 생활 근거지를 구하여 김제·대구·순창 등지를 전전하다, 44세에 황현(黃炫)의 주선으로 구례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학문과 세무에 뜻을 두었다. 1...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열녀. 동질금(同叱今)은 남편인 향리(鄕吏) 이당(李堂)이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동안 상복을 벗지 않고, 안방에 흰 장막을 설치하여 신주를 그 안에 모셔 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렸다. 1512년(중종 7) 정려의 명이 내려져 정문(旌門)이 세워졌으며, 1517년(중종 12)에는 전라도관찰사 남곤이 장계를 올려서 세(稅)를 감면받았다....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열녀. 이씨는 남편 전시효(田時孝)가 도적에게 피살되자 남편을 따라 죽었다. 마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
1998년부터 10여 년간 전주 신공항 건설 추진에 반대한 전라북도 김제시민의 투쟁. 지역 정치인들과 도지사가 김제시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신공항 건설을 추진해 자신들의 업적을 쌓으려는 시도를 김제시민의 힘으로 저지하고자 하였다. 공항 건설 예정지에서 불과 27㎞ 떨어진 곳에 군산공항이 있고, 군산공항의 경제적 타당성 평가가 가장 높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신공항 건설 사업의 대안에...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복재(復齋). 증조부는 정인(鄭絪)이고, 조부는 정섬(鄭暹), 아버지는 정흥사(鄭興嗣)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 아내는 노숭(盧崇)의 딸이다. 정곤(鄭坤)은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고, 1386년(우왕 12)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조선 1414년(태종 14)에는 전주교수관(全州敎授官)으로 있으면...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군수를 지낸 무신. 본관은 영덕(盈德). 자는 언결(彦潔)이다. 아버지는 정창국(鄭昌國)이다. 정담(鄭湛)은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급제하여 니탕개(尼湯介)의 변에서 공을 세우고 여러 벼슬을 거쳐 1592년(선조 25)에 김제군수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 휘하의 일본군은 용담(龍潭)·진안(鎭安)을 공격하여 웅치(熊峙)[지...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의백(毅伯), 호는 풍천(楓川). 아버지는 예조판서 정가종(鄭可宗)이고, 어머니는 최철(崔哲)의 딸이다. 아내는 어중련(魚仲連)의 딸과 곽항(郭恒)의 딸이다. 정수홍(鄭守弘)은 1390년(공양왕 2)에 과거에 합격하고, 권근(權近)·하륜(河崙)·성석린(成石璘) 등과 교유하였다. 조선 1408년(태종 8)에는 사헌부집...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 아버지는 첨정(僉正)을 지낸 정희증(鄭希曾)이다.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1570년(선조 3)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각별한 후원과 촉망을 받았다.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이 되었고, 1585년 홍문관수찬이 되었다. 본래 서인이었으나 이이를 버리고 박순(朴淳)·성혼...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대천(大遷), 호는 외암(畏庵). 아버지는 정천배(鄭天培)이고, 큰아버지 정천기(鄭天基)의 양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주나씨(羅州羅氏)이다. 동생은 정윤준(鄭允俊)·정윤검(鄭允儉)이다. 정윤교(鄭允喬)[1733~1821]는 18세 되던 해에 윤씨 성을 가진 여인이 친아버지인 정천배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무고하여 친아버...
-
고려 후기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 할아버지는 정지형(鄭之衡)이고, 아버지는 정승보(鄭承甫)이다. 부인은 김제조씨 대호군 조기(趙岐)의 따님이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 대호군(大護軍)이 되고, 1356년(공민왕 5) 강릉교주도도지휘사(江陵交州道都指揮使)를 지냈다. 후에 김제로 낙향하여 벽골(碧骨) 호숫가에서 말년을 보냈다. 음률(音律)에 밝고 예...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효자. 정존후(鄭存厚)[1778~1843]는 1803년(순조 3) 아버지가 병석에 누웠는데, 소의 생간을 먹어야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소를 도살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관에 청하였다. 당시 개인의 집에서 소를 잡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지극한 효성에 군수가 감탄하여 도살을 허락하였고, 소의 생간을 먹은 아버지는 병이 나았다.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비거 발명가, 무신. 정평구(鄭平九)는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였다. 청년이 되어 문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여 다시 무과에 응시하였고, 이후 무관 말단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라우수사로 부임해온 당시의 명장 이억기(李億祺)가 정평구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중용함으로써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정평구와 비거(飛車)에...
-
2008년 전라북도 김제시가 신뢰 행정을 실현한 지방자치단체에게 수여한 상을 수상한 일. 현대사회에서는 개개인과의 신뢰, 시민과의 신뢰, 시장과 기관에 대한 신뢰가 공고히 형성되어야만 지속 발전 경영이 가능하고,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김제시는 최근 공공기관 신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시의 우수 신뢰 경영 사례를 널리 알...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다. 조간(趙簡)[1264~1325]은 1279년(충렬왕 5)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왕이 친시(親試)하였는데, 여기에서도 1위를 차지하여 황패(黃牌)를 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시묘를 3년간 하였는데, 왕의 칭찬을 받고 특례로 기거주(起居注) 벼슬을 받았...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희보(趙希甫)이고, 어머니는 대언(代言) 홍림(洪琳)의 딸이고, 동생은 조의(趙義)이다. 조달(趙達)은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했다. 묘소가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 있다....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고, 동생은 조간(趙簡)이다. 국자진사(國子進士)를 지냈고, 밀직부사(密直副使)·사헌부대사헌·부원수(副元帥)·승정원좌승지를 역임했다고도 한다....
-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아버지는 좌참찬 조계생(趙啓生)이고, 부인은 이적(李迹)의 딸이다. 조수량(趙遂良)은 1420년(세종 2),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고, 1429년(세종 11) 예조좌랑으로서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경상우도에 파견되었다. 그 뒤 장령·집의·강원도관찰사·형조참판·대사헌·충청도관찰사·병조참판·경창부윤(慶昌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4...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낸 조의(趙義)이다. 조선 세조 때 여산군수를 지내다가 1466년(세조 12)에 탐오(貪汚)하여 백성을 침학(侵虐)한 것이 문폐사(問弊使)에게 발각되어 해임되었다. 이듬해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을 때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여 거병하였는데 조석문(曺錫文) 등이 적을 토벌했다는 소식을 듣...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덕후(趙德厚)이다. 1620년(광해군 12)에 무과에 합격하여 해영중군(海營中軍)을 거쳐 회령부사를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큰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27명에 포함되었다. 이후 구성부사를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용지면에 있다.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워 진무공신 2등에 책록...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김제 조씨의 시조. 본관은 김제(金堤). 조기(趙岐)·조서(趙瑞)·조간(趙簡) 등 3남 2녀를 두었다. 조연벽(趙連璧)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김제조씨(金堤趙氏)의 시조이다. 무예가 뛰어나 이름을 떨쳤는데, 1232년(고종 19)에 몽고가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몽고 장수 살례탑(撒禮塔)을 처인성(處仁城)[지금의 경기도 용인시]에서 죽였다고...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고, 아버지는 조기(趙岐)이다. 아들은 조통원(趙通元)이다. 군부총랑직보문각(軍簿摠郞直寶文閣)을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백산면에 있다....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평고군(平皐君) 조숭지(趙崇智)이다. 조원윤(趙元倫)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병조판서에 올랐다.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4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마천군(馬川君)에 봉해졌다....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희보(趙希甫)이고, 어머니는 대언(代言) 홍림(洪琳)의 딸이며, 형은 조달(趙達)이다. 조의(趙義)는 현감,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냈다. 죽은 후에 예장(禮葬)[일정 품계 이상의 문·무신이 죽으면 나라에서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주는 일]이 치러졌다....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기(趙岐)이고, 아버지는 조영회(趙令誨)이다. 공조전서를 지냈다. 묘소는 김제시 백산면에 있다. 숭모사(崧慕祠)에 배향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행지(行之)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叅判)에 추증된 조사회(趙思誨)이며, 어머니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인 여산송씨(礪山宋氏) 송여급(宋礪伋)의 딸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다.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1624년(인조 2)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호위하였다. 선전관...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할아버지는 조영회(趙令誨)이고, 아버지는 공조전서를 지낸 조통원(趙通元)이다. 부인은 직문하(直門下) 홍림(洪琳)의 딸이다. 호조판서를 지냈다. 아버지 조통원과 함께 숭모사(崧慕祠)에 배향되어 있다....
-
조선 후기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성은 정씨(鄭氏), 호는 환성(喚惺), 자는 삼낙(三諾).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지안(志安)[1664~1729]은 1678년(숙종 4) 15세에 미지산 용문사(龍門寺)로 출가하였고, 정원(淨源)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680년 설제(雪霽)를 찾아 법맥을 이어받은 뒤, 침식을 잊고 경전 연구에 몰두하였다. 1690년(숙종 16...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승려.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는 1568년(선조 1)에 봉서사(鳳棲寺)에서 출가하였는데, 사미승(沙彌僧)일 때 신중단(神衆壇)의 향을 피우는 직책을 맡았다. 그날 밤 주지의 꿈에 부처가 향을 피우니 제천(諸天)은 받을 수 없노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진묵의 신이로움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뒤 일정한 주처 없이 천하를...
-
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승려. 성은 정씨(井氏)이고,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이다. 진표율사(眞表律師)는 12세에 출가하여 금산사(金山寺) 순제(順濟)에게 사미계법(沙彌戒法)을 받았다. 760년(경덕왕 19)에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서 미륵상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하다 762년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로부터 교법(敎法)을 전해 받고...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인데,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혈연이다. 삼국시대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17세기 이후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널리 퍼지면서 가부장제가 정착되고, 이에 따른 혈연의식이 강화된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농업경제를 바탕으...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일대에 있었던 광산. 모악산을 이루고 있는 엽리상 화강암에는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아 금구면 선암리 등에는 석금(石金)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다. 현재 채굴하고 있는 금광은 모두 사금광으로, 엽리상 화강암의 풍화물이 하천에 의해 이동·퇴적하면서 집적된 충적층 하부와 기반암 또는 플라이스토세 접촉부에 사금이 포함되어 있다. 김제...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열녀. 금이(今伊)[1473~?]는 37세인 1509년(중종 4) 자식도 없이 남편 갑사(甲士) 최치강(崔致江)을 여의었는데, 전라도관찰사 유관(柳灌)이 장계를 올린 1526년(중종 21)까지도 계속 흰옷을 입고 고기는 물론 양념한 반찬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평상과 장막을 갖추어 신주(神主)를 모신 뒤 향로와 꽃병을 놓고 조석으로 상식(上食)을 올...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속성은 오씨(吳氏)로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소요(逍遙)이다. 태능(太能)[1562~1649]은 13세 때 장성(長城) 백양사(白羊寺) 진대사(眞大師)에게 계를 받았다. 부휴당(浮休堂) 선수(善修)에게 경전을 배운 뒤 묘향산에 가서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수행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임진왜란 때 휴정과 유정(惟政)이 의병을 일...
-
2006~2007년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남북통일을 염원하여 민·관이 함께 시행한 대북 지원 사업.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약칭 민주평통] 김제시협의회가 2005년 지평선축제 기간에 시민을 대상으로 벌였던 ‘통일보리 보내기 모금운동’은 사회단체 및 시민들의 폭넓은 참여를 유도해 지역 사회의 커다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남북통일을 위해 남북한 당국자 간 회담이 벌어지고, 문화·체육 등...
-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 전라북도 김제시는 호남평야의 중심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큰 변화를 겪어왔다. 일제 때에는 미곡의 집산지로서 발전이 이뤄지면서 인구가 증가했으나, 해방 후에는 미곡 반출이 중지되면서 철도 교통의 요지로서의 기능이 쇠퇴하였다. 또 1960년대 후반부터한국의 산업 구조가 공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
-
고려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유가종(瑜伽宗) 승려. 본관은 경원(慶源). 아버지는 문하시중 이자연(李子淵)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이다. 혜덕왕사(慧德王師)[1038~1096]는 1048년(문종 2)에 출가하여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의 제자가 되었고, 이듬해 복흥사(復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61년(문종 15)에 승과에 합격하여 대덕(大德)의 법...
-
일제강점기 이리농림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화랑회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제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벌이려던 사건. 일제강점기 일본의 압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투쟁은 광주학생운동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나타났고, 일제 패망이 임박하여 조선인의 독립 투쟁에 대한 폭압적인 탄압이 계속되었음에도 학생들의 민족의식과 투쟁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에서 결성된 비...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우주(紆州)[오늘날의 전북 완주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경덕(敬德), 호는 사가(四佳). 아버지는 고려에서 문하평리를 지낸 황문용(黃文用)이며, 어머니는 덕수장씨(德水張氏)로 현령을 지낸 장핵(張翮)의 딸이다. 황거중(黃居中)은 어릴 때부터 글 짓는 데 능하고, 경서를 해석함에 남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이성계(李成桂)의 황산전투(荒山戰鬪)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