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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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永叔 |
영어음역 | Go Yeongsuk |
이칭/별칭 | 고제중(高濟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문병학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개설]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본명은 제중(濟中)이다. 영숙(永叔)은 자이다. 186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고영숙이 동학에 언제 입교(入敎)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92년 8월에 일어난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강경중(姜敬重)·오지영(吳知泳)과 함께 주모자로 지목되어 체포된 뒤 동학 교도의 도움으로 탈출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어려서부터 동학에 가담한 것으로 짐작된다.
오지영이 쓴 『동학사』에 의하면, 고영숙은 1894년 3월 봉기 때 흥덕 접주로서 3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동학 농민 혁명에 참가하였고, 그 해 10월 제2차 봉기 때는 2,000명의 병력을 인솔하여 홍낙관(洪樂寬)과 함께 전라남도 나주·장성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손익중(孫益仲) 등과 함께 정읍에서 체포되어 같은 해 12월 26일 28세의 젊은 나이에 통위영(統衛營) 군(軍)에 의해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