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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목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348
한자 靈州牧官
영어음역 Yeongju-Mokgwa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시대

[정의]

고려시대 고령 지역의 지명.

[관련기록]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령 지역을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내용]

『경상도지리지』 고령현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다른 자료에는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자료가 없다. 아마 후삼국시대 태조 왕건이나 성종이 12목을 설치한 전후에 한때 영주목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고령 지역에 별다른 지방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또 이웃 성주 지역이 후삼국시대부터 고려에 귀부하자 태조 왕건이 경산부를 설치하여 고령 등 15개 읍을 속읍으로 거느리게 한 것으로 보아 고령 지역에 영주목이 설치되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다.

『고려사』 지리지 고령현조에 의하면, 고령은 고려 태조 때 경산부의 속읍이 된 이후 수령이 파견되지 않다가 1175년(명종 5)에 비로소 감무가 파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상도지리지』에서는 감무의 파견 시기를 알 수 없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경상도지리지』의 기록은 사료적 가치가 불분명하므로 영주목관이 설치되었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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