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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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性麟 |
영어음역 | Jo Seongrin |
이칭/별칭 | 현서(玄瑞),소은(蘇隱)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창환 |
성격 | 효자|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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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856년 |
몰년 | 1935년 |
본관 | 함안 |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현서(玄瑞), 호는 소은(蘇隱). 아버지는 조후식(趙厚植)이다.
[활동사항]
조성린(趙性麟)[1856~1935]은 지금의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효성과 총명으로 이름이 자자하였다. 20세 때 어머니가 학질에 걸려 사경에 이르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게 한 후 쾌차하게 하였다. 그리고 1870년(고종 7) 경상북도 경주에서 개최된 백일장에서 특선하기도 하였다.
[묘소]
묘소는 고령군 개진면 구곡2리 일명 봉골[鳳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마을 사람들은 그의 효성을 추앙하여 존중하였으며, 이웃 마을에서는 성산면 오곡리 마을 어귀에 효자비를 세웠다. 그리고 정려각을 짓고 전의(全義) 이기로(李基魯)가 묘비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