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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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栢會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섭 |
[정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있었던 민주화 운동 관련 여성 단체.
[설립 목적]
송백회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양심수에 대한 후원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78년 12월 중순 20여 명의 여성이 주축이 되어 광주YWCA 2층 이애신 총무 집무실에서 송백회를 결성하였다. 송백회 결성에 촉매재 역할을 한 것은 1978년 11월 함평 고구마 사건 피해 농민들을 중심으로 광주 계림동성당에서 열린 전국농민쌀생산자대회에 대한 후원이었다. 송백회 회원 20여 명은 양심수 석방 운동과 지원 활동을 주된 과제로 설정하고 1기 집행부로 회장 나혜영, 총무 홍희윤, 서기 김은경을 선출하였다.
이후 송백회 회원들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주로 녹두서점과 광주YWCA에서 활동하면서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1981년 7월 5.18민주화운동 자료를 수집하던 조봉훈이 구속되자 조봉훈을 후원하였던 회장 홍희윤이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고 송백회에 대한 공안당국의 수사가 진행되었다. 이에 8월 말 회원들은 홍희윤의 집에 모여 잠정적으로 송백회를 해체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송백회는 결성 직후부터 양심수 후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털양말을 짜서 보냈으며 영치금을 넣어 주거나 책을 보내기도 하였다. 동시에 송백회는 양심수 가족들과 함께 양심수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도 진행하였다.
1979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현대문화연구소를 개소하자 송백회 회원 다수는 회원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모임 역시 자연스럽게 광주YWCA에서 현대문화연구소에서 하게 되었다. 송백회의 공식적인 모임은 월례회였고, 사안에 따라 부정기적인 모임들이 있었으며, 대중 강연회와 학습 모임도 진행하였다. 같은 해 9월 활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광주YWCA에서 도자기 전시회를 열어 약 200만 원의 기금을 마련하였는데, 이 기금 중 일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사용하였다.
1980년 2월에는 회장 홍희윤, 총무 정현애, 서기 이윤정으로 2기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활동을 대중적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3월에 극회 ‘광대’가 농촌 문제를 다룬 마당굿 「돼지풀이」 공연을 하자 후원을 하였고, 광주YWCA에 농촌 문제와 사회 문제를 담당하는 간사 2인을 파견하였다. 1980년 5월 17일 밤 예비 검속으로 송백회 회원들의 가족이 연행되자 송백회 회원들은 녹두서점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면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같은 달 21일 계엄군이 퇴각한 이후에는 궐기 대회를 준비하고 지원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회원들 중 일부가 연행되어 구속되기도 하였다. 송백회는 1980년 5월 27일 이후에는 5.18민주화운동 관련 구속자와 수배자들을 지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송백회는 1978년 11월에 조직되어 1981년 해산하였지만 사회 운동을 표방한 여성 조직으로 광주·전라남도 지역의 여성 운동과 5.18민주화운동 및 오월 운동에 기여한 바가 크다. 독재 정권 시기에 구속자와 양심수를 후원하며 사회운동을 전개하였고 대중 강연과 학습 모임을 통해 여성 활동가들이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사회운동을 통해 역량과 네트워크를 확보한 송백회는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궐기 대회를 조직하고 정부와 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맞서 투사 회보 제작 및 홍보에 참여하였고, 항쟁 지도부에 참여하여 민주화운동에 중대한 기여를 하며 이후 오월 운동과 여성 운동의 주춧돌이 되었다.